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이 12일 오후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기조발언을 통해 작심하고 소속 정당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고 하여 화제다.

12일 오후 박원순 시장은 서울 금천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지난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새정치연합 후보와의 야권후보단일화 경선을 거론하면서 "민주당은 차로 당원을 실어 날랐고 저는 무소속 후보로서 자발적 시민들이 (경선에) 참여했다. 그 결과는 어땠느냐"고 질문했다.
“한달 안에 당 지지율 10% 올릴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어서 '인터넷 정당', '직장인·시민·전문가 참여 정당', '삶의 현장정치' 등 자신의 3대 입당 원칙을 다시 거론하며 "누구나 일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터넷 정당을 통해 완전히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해야 한다"며 '인터넷 정당론'을 폈다.
박원순 시장은 '직장인·시민·전문가 참여 정당'과 관련해선 "얼마 전 정의당 사람을 만났더니 지난 (7·30)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 1천명이 넘는 당원들이 가입했다고 하더라. 그중 30%는 새정치연합이 싫어서 가입했다고 합니다. 이걸 정말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12일 서울 금천구청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당원 대토론회에 참석,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서 박원순 시장은 "과연 전문가나 지성인들이 오늘날 기꺼이 당원으로 가입하고 있는가. 국회의원과 시의원, 구의원, 골수당원 빼고 나면 몇 명이나 이 자리에 모였는가"라고 반문한 뒤, "(서울시당 토론회에) 서울시 인구의 1%인 10만명은 모여야 하는데,여기 얼마나 모였나, 청년들이 모여 있냐. 맨날 우리끼리 모이지 않느냐"라고 세태를 비판했다.
박원순 시장은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청조직은 인재들이 똘똘 뭉친 강력한 군단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게 있느냐"라고 반문한 후 "무너진 조직을 다시 세워야 한다. 새로운 비전의 모임이나 강좌들을 만들어 인재를 축적하면 큰 조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시장이 되기 전 열린 희망제작소의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예시로 들면서 “이 코스를 수료한 600~700명이 저의 강력한 자원봉사 조직이 됐다"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50명이 모이면 못할 일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박원순 시장은 '현장정치'와 관련해 "최근 서초구 내곡동에 다녀왔더니 민원이 산사태처럼 밀려오더라"며 "시장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과 시의원도 현장을 다녀야 하고, 당도 조직적으로 시민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새정치연합이 민생을 위한 정책을 끊임없이 발표해야 한다.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 연구원은 도대체 뭐하는 거냐. 정부 돈 받지 않느냐"라고 질타하면서, "현장의 해결과제들의 입법화 등 돈 받아서 할일이 엄청 많다"며 "그렇게 조직적으로 하면 한달 안에 당 지지율이 10%는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원순 ‘인터넷 정당’, 문재인 ‘네트워크 정당’과 흡사?
이러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장 및 구상에 대해 혹자들은 문재인 의원이 내세운 ‘네트워크 정당’과 흡사하다고 반응하기도 한다. 13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에 등장한 한 재선 의원의 반응도 그렇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 재선 의원은 “인터넷 정당은 문재인 의원 등 친노(친노무현) 진영이 주장하고 있는 시민 네트워크 정당과 비슷하고 모바일 투표를 전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내 권력 지형도를 볼 때 의아한 일이다. 흔히 박원순 서울시장은 ‘친노’의 대표적 인물 내지는 수장으로 여겨지는 문재인 의원과 차기 대권을 경쟁하는 사이이며, ‘비노’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처지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은 ‘모바일 투표’를 주장하는 친노의 제안과 일치하는 것일까. 박 시장 역시 그 방향으로의 정당개혁이 합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와는 상관없이 ‘인터넷 정당’을 지향하는 걸까?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지난 9월 25일 국회에서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란 주제로 열린 노무현 대통령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인터넷’과 ‘네트워크’란 단어에만 현혹되지 말고 두 사람의 발언을 차분하게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의원의 ‘네트워크 정당’에 대한 발언을 차분하게 복기해보자. 지난 9월 25일 문재인 의원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 정당은 출마자들의 ‘카르텔 정당’, 대중기반 없는 ‘불임 정당’, 정치 자영업자들의 ‘담합 정당’이다.” / “시민참여 네트워크 정당으로의 전환은 우리 당의 오랜 숙제다” / “온-오프라인을 결합하는 다양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당원 뿐 아니라 시민과 지지자를 광범위하게 결집시켜야 한다” / “바람직한 정치와 민주주의의 중심에는 언제나 ‘시민의 생활’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로 가려면 정당도 시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유권자와 시민은 네트워크로 존재하고 활동하는데, 당은 네트워크 밖의 섬으로 존재하고 있다” / “중앙당 지도부에 집중된 의사결정 구조와 국회의원 중심의 정당운영 방식은 민주적 소통과도 거리가 멀다” (지난 9월 26일자 <한겨레> 6면 기사에서 추린 문재인 의원의 발언들)
여기서 우리는 ‘인터넷’과 ‘네트워크’라는 단어의 유사성으로는 가릴 수 없는 커다란 강조점의 차이가 두 사람의 발언 사이에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당원’을 강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다.
‘당원 배가운동’과 ‘오픈프라이머리’의 대립
박원순 서울시장의 ‘인터넷 정당’ 발언을 ‘당원’에 중점을 두고 들어보자. 박 시장은 "얼마 전 정의당 사람을 만났더니 지난 (7·30) 재보궐 선거가 끝난 뒤 1천명이 넘는 당원들이 가입했다고 하더라. 그중 30%는 새정치연합이 싫어서 가입했다고 합니다. 이걸 정말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당원이 많이 가입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 박원순 시장은 "과연 전문가나 지성인들이 오늘날 기꺼이 당원으로 가입하고 있는가. 국회의원과 시의원, 구의원, 골수당원 빼고 나면 몇 명이나 이 자리에 모였는가"라고 말했다. 역시 당 외곽에 있는 지지층을 당원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느껴진다.
이에 반해 문재인 의원의 ‘네트워크 정당’의 방점은 ‘당원’이 아니다. “온-오프라인을 결합하는 다양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당원 뿐 아니라 시민과 지지자를 광범위하게 결집시켜야 한다” / “정당도 시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유권자와 시민은 네트워크로 존재하고 활동하는데, 당은 네트워크 밖의 섬으로 존재하고 있다”라는 발언에서 주안점은 ‘당원’이 아닌 당 바깥에 있는 시민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비대위원이 지난 9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박지원 비대위원은 "책임을 맡은 분들은 책임있는 발언을 해야 할 것"이라며 모바일투표에 대해 "문제없다"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던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연합뉴스)
모바일 투표가 문제가 된 것도 단지 핸드폰으로 투표하는 것이 문제라는 논의는 아니었다. 비당원 희망자의 투표를 전제로 하는 ‘오픈프라이머리’와 이를 실현하는 방식으로의 ‘모바일투표’가 문제였던 셈이다.
결국 여기서 대립하는 것은 ‘인터넷’이니 ‘네트워크’니 하는 뉴미디어 활용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당이 온라인에서도 접점을 넓히고 오프라인상에서도 지역 조직을 재건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이는 없다. 이를 전통적인 ‘당원 배가운동’의 틀로 가져갈 것이냐, ‘당원-지지자-시민’이 결합하는 형태로 갈 것이냐의 의견차이가 있는 셈이다.
‘비노’ 성향의 새정치민주연합 상황을 아는 관계자들은 ‘모바일투표’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우리는 모바일투표에 자주 참여하는 정도의 지지자들은 당원으로 흡수해서 어떻게든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놀랍게도 ‘친노’들이 뜨뜻미지근하다. 이는 모바일투표에 참여하는 시민들에 대한 정보를 외곽 친노 조직 차원에서 관리하고 싶어 할 뿐, 당에 합류시키는 것은 저어하는 모습으로 여겨진다”라고 설명한다. 어떤 이는 “죽어도 당권만 쥐고 있으면 문제가 끝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푸념하기도 한다.
수사를 넘어 정당 혁신으로
이런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에서 더 흥미로운 함의를 읽어낼 수 있다. 소개한 ‘비노’들의 푸념처럼, 그간 ‘친노’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새누리당과의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위기의식보다는 제1야당의 당권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더 강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 당이 새누리당에게 뒤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조중동 프레임’과 같은 핑계를 대면서 정당에 대한 내부비판에는 “당을 흔든다”는 식으로 대응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친노’의 좌장격인 문재인 의원이 강도 높은 언어로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비록 문 의원이 그러면서 내놓은 혁신 대안이 그간 ‘친노’들이 내세운 것과 큰 차이는 없었을지라도 말이다.
또한 소위 ‘비노’들은 ‘친노’의 당권 장악에 대한 탐욕을 비난하는데 치중한 나머지 ‘친노’들이 내세운 제안에서 정당혁신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들의 ‘꼼수’와 분리해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진성당원제가 제대로 정착한 적이 없는 역사를 가진 당에서 ‘당원’과 ‘비당원’을 구별하고 ‘당원 중심’을 고수하는 것이 상대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그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함께 찍은 사진(왼쪽 사진)을 지난 4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두 사람은 이날 함께 서울 한양도성길을 걸었다(오른쪽 사진).문 의원과 사법연수원 동기(12기)인 박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을 통해 "그 우정을 그대로 간직하며 서울 한양도성길을 함께 걸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그런 면에서 볼 때, 뉴미디어 전략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발언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당원’을, 그것도 ‘당원 배가’를 강조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어법은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정당혁신에 대한 논의를 받아 안으면서 정당 내부의 정치지형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형성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정당도 아니다”는 푸념을 넘어 “이건 계파연합당조차도 아니다”는 한탄을 듣게 된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이와 같이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면서도 지나치게 순진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에도 밝은 유형의 정치인이 요구된다.
문재인과 박원순이 이런 방향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에도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두 사람의 발언이 모두 방향은 맞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수사에 그치지 않고 현대 정당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자각한, 나아가 현대사회 국가운용의 방식에 대한 통큰 성찰에서 나온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정당개혁은 숙제를 마치듯 어느 순간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끝없는 혁신의 과정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단지 다음 전당대회 룰이 어느 계파에 도움이 될지에 골몰하는 계파정치를 벗어나기 위해선 두 사람의 정당개혁이 경쟁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최근 새누리당을 출입하는 정치부기자들은 “새누리당이 (차기 대권주자로) 그나마 무서워하는 건 박원순 정도인 것 같다”라고 말하곤 한다. 향후 두 사람의 경쟁의 결말이 어떻게 되느냐를 떠나, 당내 기반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박원순 시장의 발언이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박원순만이 대안”이라고 인물론적으로 섣불리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혁신에 대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만이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권자가 다시 기대나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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