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불구속 기소한 사건에 대한 국내외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8일 서울중앙지검에 의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전 서울지국장은 10일 자사 서울지국 사무실에서 일본 언론 매체 기자들과 만나 “잘 알려진 소문을 소문으로서 썼다. 대통령은 공인 중의 공인이고 기사에 충분한 공익성이 있다”고 밝혔다고 일본 매체들이 11일 보도했다.
또 가토 전 서울지국장은 “해당 기사를 쓸 당시엔 소문을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 기사에는 공익성이 있다. 최고권력자는 보도기관의 논평이나 비판을 수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며 박 대통령에 대해 “수인(受忍·어떠한 혜택을 받는 반면 거기에서 파생하는 불이익이나 불편을 참지 않으면 안되는 일) 한도가 좁다. 극히 특이한 국가원수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이 사건을 언론탄압으로 보도하고 있는데다, <요미우리>, <아사히> 등의 다른 언론이 이에 동조하고 NHK 방송 역시 이번 기소 결정에 이견이 있다고 지적하는 등 일본 내 여론은 악화되고 있다. 이 기소가 국제적 이슈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청와대와 검찰은 가토 전 서울지국장의 항변이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쓴 뒤 고발당해 지난 8월 18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일본 산케이 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이 점심 시간 휴식을 취한 뒤 검찰 건물로 다시 들어가고 있다. 가토 지국장은 지난 8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에서 증권가 관계자 등을 인용해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 등을 언급하며 사생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연합뉴스)
주말 내내 종편방송은 가토 전 서울지국장의 반발의 내용과 검찰의 반응을 몇 번에 걸쳐 리포트했다. 그러나 처음엔 ‘적반하장’ 등 가토 전 지국장의 발언의 부당함에 초점을 맞추던 언론도 시간이 지날수록 “논란이 예상된다”며 발을 빼고 있다.
바뀐 기류를 감안한 듯 13일자 신문보도에서는 보수언론인 <동아일보>조차 대기자칼럼에서 검찰 기소를 비판하고 나섰다. 13일에 34면에 게재된 <동아일보> 심규선 대기자칼럼의 제목은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 기소는 패착이다>로, 여기서 심규선 대기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기자는 그를 기소한 것은 패착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소 과정이 더 패착이다”라고 주장했다.
심규선 대기자는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의 문제가 된 기사에 대해 “법의 판단과는 별개로, 그의 기사는 분명 독신인 여성 대통령을 비하했다. 도를 넘는 혐한, 반한이 트레이드마크인 산케이 체질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사”라고 지적했다. 또, “산케이신문은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도 했다.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가토 전 지국장이 기소됐다고 해서 한국의 언론 환경이 달라질 일은 없다. 한국 언론은 일본 언론보다 훨씬 자유롭고 강하게(때로는 너무 심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권력과 권력자를 비판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심규선 대기자는 “대통령과 외신의 갈등이 수사로까지 번지는 일은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이번 일은 기소 사실만 남고 교훈은 없을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심 기자는 가토 전 지국장이 “핍박받는 영웅이 됐다”라면서, “대통령이 한 일본 기자를 너무 키워주고 자신은 너무 작아졌다”라고 비평했다.
▲ 13일자 동아일보 34면에 실린 심규선 대기자의 칼럼
심규선 대기자는 “만약 참모들이 진지하게 득실을 저울질하고 기소를 결정했다면 기자와는 생각이 다르더라도 평가하겠다. 그런데 그런 흔적이 없다. 결과의 패착보다 과정의 패착이 더 아쉽다”라고 주장했다. 심 기자는 “대통령의 분노가 기소에 영향을 준 것 같다는 기사는 비아냥 같아 아프다”라면서, “이번처럼 대통령의 분노와 진정한 국익이 충돌할 때, 어떻게 대통령을 설득할지를 고민하는 게 청와대가 할 일이다”라고 주문했다.
보수언론의 시선에서 보기에도 이번 기소가 실익이 없으며 대통령의 분노를 통제하거나 걸러내지 못한 청와대와 검찰의 ‘오버’라는 설명이다.
<한겨레>는 사설과 정치부장의 칼럼을 통해 검찰 기소를 정면비판했다. 13일자 <한겨레>는 <‘나라 망신’ 시킨 산케이 기소, 대통령이 접어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나라 안팎에서 비난과 반발이 거세다”라면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옥죈 일이니 비판은 당연하다”라고 규정했다.
<한겨레> 사설은 “그로 인한 외교적 손실도 만만찮다. 이번 일로 일본은 한국을 공격할 좋은 소재를 얻게 됐다. 군대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관계의 현안은 한쪽으로 밀쳐지게 됐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데서도 일본이 우월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은 이 기회에 한-일 관계의 난항 책임을 한국에 돌리려 할 것이다. 정부가 이런 결과를 염두에 두기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며 상황을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한겨레> 사설은 “이번 일이 정치적 기소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사정들 때문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국제적 망신이다.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죄다. 박 대통령은 나라 망신만 시킬 이번 일을 이쯤에서 접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 13일자 한겨레 31면에 실린 [편집국에서] 칼럼
권태호 정치부장의 칼럼에선 검찰 기소에 대한 황당한 감정이 좀더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언어에 드러났다. 권태호 정치부장은 <‘산케이’를 언론자유 기수로 만든 청와대>란 제목의 칼럼에서 문제의 <산케이신문>의 칼럼 형식의 기사를 분석한 후 “이게 문제의 글 전부다. 시답잖다. 국회 상황, 조선일보, 증권가 찌라시 등 3개를 적당히 버무려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빈정대는 게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유쾌할 리 없다”라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권태호 정치부장은 “그런데 청와대의 강경발언과 한국 검찰의 ‘오버’가 현지 신문을 베끼고 거기에 주석 몇 문장 붙여놓은 특파원을 졸지에 언론자유의 기수로 만들어줬다”라면서 개탄한다. 권 부장은 “현대사회에서 참모에는 3가지 유형이 있는 듯하다. 공익(국익, 사회)을 먼저 생각하는 부류가 있을 것이고, 다음으로 모시는 주군에게 무엇이 진정 도움이 될지 생각하는 부류가 있을 것이고, 그리고 하지하(下之下)로 그냥 주군이 시키는 대로 하는 부류가 있을 것이다”라며 기소를 대통령의 의중의 반영으로 간주하고 이를 말리지 못한 청와대 참모들을 비판했다.
13일 <경향신문>은 유신모 정치부기자의 ‘기자메모’를 통해 정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중잣대를 꼬집었다. 유신모 정치부기자는 <표현의 자유, 대북전단은 되고 비판언론은 안돼?>란 제목의 기자메모에서 “정부가 ‘표현의 자유’ 때문에 전단살포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너무도 존중하기 때문에 국가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마저도 감수하는 고도의 민주주의 인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기소 사건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자들의 ‘사이버 망명’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툭하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라고 꼬집었다.
▲ 13일자 경향신문 6면에 실린 기자메모
또 유신모 기자는 “북한에 대한 막말 비난과 유언비어가 담긴 전단을 북한 지역으로 날려보내 북한을 자극하고 안보위기를 초래하는 행위는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대통령 직무와 관련된 ‘7시간의 미스터리’를 다룬 외국 언론의 기사는 저열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이 된다”라고 비판했다. 유 기자는 이어서 “대통령 비난 발언을 적발하기 위해 국민들 메신저를 공권력이 들여다보는 것도 허용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서는 안될 사안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재갈을 물리고, 정작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전단 살포에 대해서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양 방관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전단살포를 막을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지적했다.
유신모 정치부기자는 마지막으로 대북 삐라 살포 문제에 대해 “이 문제는 ‘표현의 자유’를 핑계로 방치할 사안이 아니다. 국가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안보위기를 방치하는 것을 이해해줄 국민은 없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고 최종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정부는 전단살포를 방관하지 말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당장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정부 대응을 주문했다.
한국 사회가 ‘민주정부 10년’을 지나 보수정부로 교체된 후 언론자유가, 더 나아가서는 민주주의가 역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고 그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그런데 <산케이신문>사 기자에 대한 검찰 기소 문제는 이 논란을 국제적인 이슈로 만들고 있다.
몇몇 기자는 “일본 언론인들이 한국의 언론운동가들을 접촉하고 있다. 무슨 기사가 어떻게 나올지 챙피할 따름이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항변처럼 한국 언론은 일본 언론에 비했을 때도 그리 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명예를 국제적으로 실추시킨 정부에 대해 그들이 어떤 날선 비판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해볼 일이다. 별로 기대가 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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