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산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의 파워가 심상찮다. 카카오톡에 대한 사찰 논란으로 시작된 ‘사이버 망명’ 덕분이다. 텔레그램 측에 따르면 지난 주에만 150만 명 이상의 한국 사용자가 등록했다고 한다. 아예 공식 한국어판도 등장했다. 이번 달 초 트위터 공고를 통해 한국어 번역 전문가를 채용한 덕이다.

메신저 망명, 카카오톡은 정말 망하게 생긴 것일까?

일부 네티즌들은 “이제 카카오톡은 망하게 생겼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의 말을 잘 듣는 수사기관의 요구에 “부르면 가야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다음카카오측의 태도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용자들이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을 직접 스마트폰 등에 설치해보면 이런 흐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텔레그램은 자신의 연락처에 등록된 이용자가 가입할 경우 이를 알려주는데 이 알림이 끊임없이 울린다는 체험담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이용이 그렇게 활발한 것 같지는 않다. 가입을 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이를 통해 메시지를 활발히 주고 받고 있다는 경험담은 생각보다 많이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의 텔레그램 가입은 텔레그램을 이용자로부터 메시지를 받기 위한 ‘만약의 수단’ 정도로 생각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

다음카카오 측에서 뒤늦게라도 자신들에게 집중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고 일각에서 텔레그램 역시 보안문제에 있어서 마냥 안심할 수준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전문적 지적 역시 내놓고 있는 것도 텔레그램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이 주춤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7일 아이폰5s에서 텔레그램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한 모습. (연합뉴스)

사용자수에 비례할 수밖에 없는 메신저의 위력, 카카오톡은 건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메신저의 위력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인구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카카오톡은 스마트폰을 구입할 경우 가장 먼저 설치하는 어플리케이션의 하나로 꼽힐 정도다. 국내에서 돈 드는 문자메시지의 공짜 대용품 역할을 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결국 이런 세태가 계속 유지되는 한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인구는 다른 메신저를 이용하는 인구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고 이들 모두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는 어떤 ‘범용성’에 있어서는 카카오톡이 다른 메신저를 압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용자의 우위가 일정 규모 이상 유지되는 한 카카오톡 중심의 모바일 메신저 시장 구도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게다가 텔레그램과 카카오톡의 이용은 반드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문제조차 아니기 때문에 카카오톡 이용자들과의 메시지 교환을 모두 포기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소수에 불과한 이상 텔레그램의 가입자 증가가 카카오톡의 시장규모를 축소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는 없다. 다만, 텔레그램의 가입자 증가 수가 일정 규모를 넘어 카카오톡에 필적하는 ‘범용성’을 획득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된다면 자신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 목록에서 카카오톡을 부담없이 삭제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는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그램 망명이 '사이버 혁명'일 수 있다면...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텔레그램의 이용자 증가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건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인터넷을 통한 시민적 권리가 침해당한 사건으로 다수의 언론 및 네티즌들이 지적하고 있는대로 같은 사건이 반복해서 벌어질 경우 카카오톡을 향한 일종의 ‘사이버 혁명’이 벌어질만한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또 필요한 것은 이를 넘어서는 깊이있는 생각을 거듭해봄으로써 인터넷 등 가상공간을 둘러싼 상황 자체를 조망해보는 것이다.

카카오톡 중심의 모바일 소통 체계를 더욱 단단하게 지지하도록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이용자들이 그것 중심의 일상에 지나치게 익숙하다는 점이다. 카카오톡의 빠른 메시지 전파력은 일부 정치적 의도를 가진 세력이 이를 적극 활용할만큼 대단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PC버전이 출시된 이후로는 업무에도 종종 활용되는 등 한국 업체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중에서는 가장 활용도가 높은 상태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즉, 상황을 조금 더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카카오톡을 이용한 이러한 다양한 활동은 과거 PC통신의 채팅이나 인터넷 게시판, 최근의 페이스북 및 트위터 등 SNS로 이어지는 하나의 ‘인터넷 유행’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행이 최근 들어 인터넷의 장점 중 하나로 꼽혔던 ‘익명성’을 해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물론 인터넷 게시판 등의 경우에도 수사기관이 영장 등 일정 수준 이상의 권한만 획득하면 누구나 자신의 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또, 수사기관이 ‘패킷감청’ 등의 수단으로 익명성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보장되는 인터넷 활동을 충분히 사찰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카카오톡 등의 경우 대부분 ‘전화번호’를 통한 신원확인이 가능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익명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인터넷을 활용한 소통 방식에서 한 발짝 후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어떤 점에서 이러한 서비스들은 ‘안티-인터넷’으로 부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이용에 있어서도 트위터의 퇴조세가 두드러지고 페이스북의 우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점도 이런 조류를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터넷 특유의 속성인 ‘익명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형식인 트위터에 비해 페이스북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를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과거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성 보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시대에는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들에 대한 반감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익명성에 기반한 기존 인터넷 질서 붕괴 시점에 등장한 텔레그램

다시 말하자면 카카오톡 사찰 의혹과 텔레그램 망명 등의 사건은 모바일 디바이스 등의 발달로 인해 익명성 보장으로 대표되는 기존 인터넷 질서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사건이라고 평가할만한 지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한대로 국가기관의 작용이 인터넷이 보장해주는 익명성을 돌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사건에서 보여지고 있으며, 인터넷의 익명성이 시민사회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시민사회의 권리를 침해하는 국가기관의 활동을 은폐하는 데에 쓰이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정원의 댓글 의혹은 대표적인 예다.

그런 점에서 국가기관을 상대로 당장의 시민적 권리를 침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우리는 이런 물음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인터넷의 시대는 끝난 것인가? 모바일 디바이스와 ‘사물인터넷’으로 표현되는 고전적 인터넷 이후의 시대에 시민적 권리는 어떤 플랫폼과 체제를 통해 지켜질 수 있는가?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을 둘러싼 사건은 훨씬 더 복잡한 성격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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