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한국경제신문이 경제성장의 동반자 50년을 맞은 오늘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우선 충분한 경제성장이야말로 사회발전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우리는 국민소득 5만달러 돌파를 시급한 사회적 과제로 제안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적지 않은 혼돈과 위기를, 2만달러 덫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정체성 증후군으로 본다. 경제적 자유와 창조경제의 확장이야말로 이 난관을 돌파하도록 해주는 올바른 길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하면서, 5만달러 선진사회, 부강한 통일국가를 이룩하는 그날까지, 기업이 뛰고 기업가들이 앞장서 노력하는 사회를 만든다. 규제를 혁파해 자유시장의 선진적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 노사협력을 바탕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한 안정성을 갖도록 힘쓴다. 경제 대도약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총결집되도록 노력한다.”

6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한국경제 창간 50주년 행사에서 울려퍼진 ‘대한민국 경제 대도약을 위한 선언’ 전문이다. 이날 행사에는 VIP가 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경제 청년 독자위원들의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크게 박수를 쳤다. 그는 앞선 축사에서 “지금 우리 경제는 ‘도약이냐, 정체냐’를 결정지을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우리 경제를 세계 10위권으로 이끌었던 기존의 추격형 성장 전략이 한계에 직면해 자칫 우리 경제는 긴 침체의 터널로 빠져들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경제를 창의와 혁신에 기반한 창조경제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성장엔진을 창출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골메뉴인 “공공부문 개혁”, “비정상의 정상화”, “규제개혁”, “서비스산업 육성”도 축사에 등장했다.

▲ 6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에서 열린 한국경제 창간 50주년 행사에서 축사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미디어스)

VIP의 방문은 ‘급하게’ 잡혔다. 애초 한국경제는 조촐하게(?) 행사를 치를 계획이었으나, 대통령이 직접 방문을 결정하면서 슬로건도 <대한민국 경제대도약을 선언합니다>로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경제에 “국내 대표 경제정론지인 한국경제신문의 50년 역사는 곧 대한민국 경제 발전사와 맥을 같이한다”며 “각 경제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경 창간 50년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반세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50년 미래 비전을 다 같이 설계해보자는 취지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4년 천막당사 시절 한나라당 대표로 창간 40주년 행사에 참석했고, 2012년 대선후보로 한국경제 주최 글로벌 인재 포럼에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경제를 아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경제는 191개 기업이 공동소유한 신문이다.

VIP 방문에 정·재계가 총출동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조윤선 정무수석 등 정부 핵심인사도 참석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도 자리를 채웠다. 김기웅 한국경제 대표이사 사장은 정규재 논설실장 등 사내 간부와 함께 행사장 입구에서 손님을 맞았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정계, 관계, 금융계, 재계·기업, 경제단체·재단, 노동계, 문화·관광·체육계, 외교사절, 학계·연구기관, 언론계 인사 1400여 명이 참석했다. 현장에서 신분을 확인하고 비표를 받는 사람도 끊이질 않았다. <미디어스>는 이날 오후 5시 반부터 6시 반까지 한 시간여 동안 김기웅 사장의 손님맞이를 관찰했다. 재계가 언론에 다가왔다면 유력 정치인과 청와대 인사들의 경우 언론이 먼저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인사 각도도 달랐다.

▲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의 인사 각도가 가장 컸다. 다음카카오 홍보팀은 <미디어스> 기사가 나간 직후, “이 대표는 평소에도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스타일”이라고 알려왔다. (사진=미디어스)

6시께부터 김기웅 사장은 수차례 시계를 쳐다봤다. 그리고 6시 반께 김기웅 사장 포함 한국경제 간부들은 1층으로 움직였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따라 내려갔다.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사회를 본 신영일씨가 “곧 행사를 시작한다”고 말한지 30분 정도 지난 시각,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는 경호 라인 안쪽으로 이동해 행사장에 입장했다.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회장, 문희상 비대위원장, 김무성 대표, 김기웅 사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최경환 부총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조준호 LG그룹 사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늘어선 줄의 한가운데 섰다.

행사는 단출했다. 김기웅 사장의 발언, 박근혜 대통령의 축사, 경제 대도약 선언이 메인행사였다. 박근혜 대통령 등 대한민국 일진 참석자들은 ‘이미 잘려진 떡’을 자르는 시늉을 했고, 대화를 나눴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무성 대표,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주로 이야기를 나눴다. 김무성 대표의 제안에 박근혜 대통령과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악수를 했고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 정면에는 청와대 기록단과 KBS의 카메라, 연합뉴스와 뉴시스 기자들이 있었다. 참석자들은 가깝게는 3미터 앞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촬영하기 바빴다. 김기웅 사장 명함가방을 들고 있던 한국경제 기자는 이때가 돼서야 쉴 수 있었다. 행사장 뒤편 대기업 홍보팀 직원들은 사장님께 현장 상황을 브리핑하기 바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대통령 축사에) 크게 신경 써야 할 메시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미디어스)

최연혜 코레일 사장부터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까지도 달려온 이날 행사는 ‘한국 0.1% 윗선들의 반상회’처럼 보였다. 이 안에서는 질서가 분명했다. 가장 밑바닥에는 한국경제 기자들이 있었다. 평기자부터 간부까지 대부분 참석한 것으로 보였다. 기업은 그런 언론에 머리를 조아렸다. 언론의 인사 각도는 기업, 관계, 정계, 청와대 순으로 커졌다. ‘낙하산’ 인사들은 유력 정치인에게 말 한마디 걸기 바빴다. 물론 가장 대접받은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오면서 스마트폰도 먹통이 됐다. ‘그들만의 반상회’는 이렇게 질서 있게 끝났다. 언론은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발언과 청와대-여당-야당의 악수를 기사로 만들었다. 사실 사골을 우려낸 듯 반복된 메시지였고, 윗선들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현장에서 두 시간 동안 찍은 309장의 사진은 ‘휴지통’에 갈 만한 것뿐이었다.

이날 한국경제가 참석자에게 나눠준 선물에는 책이 한 권 있었다.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 위대한 탈출>이다. 정말 시민들은 탈출하고 싶은 곳은 그런 그들이 지배하는 ‘한국’이 아닐까. 한국은 빈부격차와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피케티 식으로 계산하면 미국 다음이다. 자살률은 OECD 최고다. 비정규직을 탈출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다. 노동조합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다. 다른 나라는 원자력발전소를 줄이는데도 수명을 연장하는 나라다. 대통령 한 마디에 검찰이 움직이고, 모바일메신저 실시간 검열 논란으로 사이버 망명을 하는 시민들이 급증하는 나라다. 온갖 규제완화로 참사를 겪고도 ‘규제는 적폐’라는 나라다. 지금 시민들은 바로 이곳을 탈출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는 ‘그들만의 반상회’ 대화주제가 안 될 것이다. 버티다 못한 기자는 탈출했다. 차라리 만원버스가 편했다.

▲ 이날 오후 6시께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김기웅 한국경제 대표. (사진=미디어스)
▲ 김기웅 대표가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맞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 김기웅 대표가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끌어안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 박근혜 대통령이 행사장에 들어서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 창간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떡 커팅식이 있었다. (사진=미디어스)
▲ 떡 커팅식 이후 환담 시간. 박근혜 대통령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쪽으로 돌아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미디어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소개(?)했다. 이후 박 대통령과 문 비대위원장은 10분 넘게 대화를 나눴다. (사진=미디어스)
▲ 왼쪽부터 문희상 비대위원장, 김무성 대표, 김기웅 사장, 박근혜 대통령.
▲ 박근혜 대통령과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언론을 의식한 듯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돌렸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미디어스)
▲한국경제 창간 50주년 행사 모습.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날 행사에는 천여 명의 정, 관, 재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사진=미디어스)
▲ 이날 행사에는 천여 명의 정, 관, 재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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