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보수중도’라는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이하 미디어연합)이 떴다. 과격불법촛불시위반대시민연대, 라이트애국연합, 실크로드CEO포럼 등 30여개 우파단체의 연합인 미디어연합은 지난 29일 출범식에서 “진보진영이 언론시장을 이념대결의 장으로 황폐화시켰다”고 비판하면서도, 스스로 ‘좌파’ ‘보수중도’ 등 이데올로기적 언어를 들고 나오며 언론시장에서의 이념대결을 벼르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KBS <미디어포커스> 폐지 △MBC <PD수첩> <100분토론> 집중 감시 △KBS 2TV, MBC 민영화 등은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바로 촛불정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열심히 옹호하며 미 쇠고기 시식회까지 열었던 ‘뉴라이트전국연합’ 쪽이 줄곧 이야기해오던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촛불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을 적대시하는 ‘과격불법촛불시위반대시민연대’나, 실체를 알 수 없는 ‘실크로드CEO포럼’ 등 미디어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단체들 면면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미디어스 역시 이들이 겨냥하는 좌파에 포함됐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을 ‘보수중도’라고 지칭한 이들의 좌우파 개념감각은 그다지 믿을 게 못되는 것 같다. 출범과 함께 발표한 10대 정책과제에서 견강부회식 논리를 펼치며 자신들이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을 뜻하는 신조어)임을 거리낌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30여개 우파단체 연합체인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이 2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출범했다.ⓒ미디어스

이들이 (왼쪽으로 치우친) ‘편파왜곡방송’으로 규정한 MBC <PD수첩>은 MBC노조 조합원 86.7%가 “공익적 목적에 부합했다”(22일자 <문화방송노보>)는 의견을 나타낸 바 있으며, 경영진의 사과방송으로 인한 MBC 내부 반발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다.

미디어연합 10대 정책과제 가운데 일부를 조금만 들춰보자.

이들은 주로 언론시장 파괴의 주범을 ‘무료신문’과 ‘포털’로 꼽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자본과 권력의 언론장악을 비판하겠다는 좌파언론단체가 언론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유료신문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인미협은 2007년 7월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의 도움으로 포털의 검색권력을 투명화하는 검색서비스사업자법, 포털의 언론권력 남용을 제한하는 신문법 개정안을 제출해놓았다”며 “이 두가지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노력해 인터넷경제와 언론시장을 살려내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이들의 힘찬 포부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두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언론시장이 살아날지는 알 수 없다. 잘못된 원인 진단에서 바른 처방이 나올 수 없는 탓이다. 과연 언론시장 파괴의 주범이 ‘무료신문’과 ‘포털’밖에 없는가? 포털과 무료신문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핵심주범’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뿐이다.

신문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독자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보도에 있어서는 왜곡과 거짓 선동을 일삼는 조중동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 몇달간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한순간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태도를 바꿔버린 조중동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조중동의 해악을 절절히 공감한 온라인의 언론개혁운동 카페는 촛불정국을 계기로 오프라인 언론운동 단체로 변모하기도 했다. 미디어연합은 지나가는 시민들을 붙잡고 물어보라. 조중동과 무료신문 중 과연 언론시장 파괴의 핵심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그 결과를 놓고 다시 얘기해봐야 되는 문제가 아닌가.

또, 이들은 KBS1TV의 100% 공영화를 위해 KBS2TV가 민영화돼야 한다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소리를 들고 나왔다. 이들은 “KBS1TV와 아리랑TV, EBS를 묶어 100% 공영화시키는 일은 방송시장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KBS2TV는 보다 특화된 민영 채널로 바꿔도 무리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국회가 쥐고 있는 수신료 인상 문제 등을 비롯해 KBS 예산에 관한 논의 과정을 건너뛰고 난데없이 ‘KBS2TV 민영화’를 들고 나오다니 그 발상이 매우 놀랍다.

미디어연합 정책과제에서 가장 골때리는 점은 바로 ‘미디어오늘 광고주 불매운동’ 부분이다. 이들은 “미 쇠고기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광고주의 영업이 불가능할 정도로까지 만드는 폭력적이고 자의적인 광고주 불매운동에 대해 보수시민사회는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부당성을 제기했으나 좌파언론은 이를 부추기며 예찬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며 “왜곡 음해보도를 지속해온 미디어오늘에 대해서는 ‘언론계 정화’라는 명분으로 얼마든지 광고주 불매운동을 해도 타당하다”고 말한다.

이들의 견강부회식 논리는 “시민들처럼 폭력적이지 않도록 1차적으로 광고주들에게 게재 거부만 요청할 것”이라는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과연 미디어연합이 말하는 ‘폭력’이란 무엇인가. 조용히 겁주는 건 폭력이 아니고 광고주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건 폭력인가? 미디어연합, 뉴라이트와 함께 어깨를 건 어느 단체 사람들이 촛불 1인 시위 여성에게 몽둥이 세례를 퍼부은 건 ‘사랑의 매’인가?

“좌파의 죄과에 대해 응징은 하되 어찌됐든 이들과의 대화와 소통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며 진보진영 언론단체와 적극적 대화하겠다고 선언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들은 출범 기자회견에서 “민언련과 언론연대 등 진보좌파단체는 포털 관련 토론회에서 우리를 부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논리 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번 끝장토론 역시 논리면에서 자신있다면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그동안 미디어연합에 속해있는 단체의 온갖 주장에도 많은 매체들이 이렇다할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진보 언론단체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은 굳이 그 주장에 대꾸해줘야 할 필요조차 못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많이 망설였지만, 한번쯤 정리를 해줘야 할 때가 됐다 싶어서 수고를 마다지 않고 있다.)

▲ 30일 오전 10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공정언론시민연대’ 출범식. ⓒ미디어스

29일 미디어연합 출범에 이어 30일에는 ‘공정언론시민연대’(공언련)라는 단체가 출범했다. 미디어연합이 적극적인 실무활동을 하는 곳이라면, 공언련은 학술적 연구·지속적 모니터링·감시활동 등에 주력하는 곳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단체 이름이나 표방하는 활동 목표에서 ‘공영방송발전을 위한 시민연대’와 언뜻 구분이 가지 않는 공언련은 김우룡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성병욱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교 자유주의연대 대표대행이 공동대표를 맡고, 류근일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고문 자리에 앉았다.

공정언론시민연대는 “공영방송이 한갓 선동꾼으로 전락해버린 것을 보며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을 느낀다”며 “편파방송을 바로잡는 일을 출발점이자 중심으로 설정하고 공정언론실현운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정언론을 실현하기 위해 ‘학술적’ 감시와 지속적 모니터링을 하겠다는 이들은 공영방송의 광우병 보도를 ‘촛불시위’ 대 ‘정부’라는 단순 이분법으로 나눈 뒤 절반 이상이 촛불시위에 유리한 보도였다며 ‘편파적’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앞뒤 맥락은 모두 날리고 “누가 우리 편이야?”라고 묻는 유치원생의 드라마 감상법과 별반 수준 차이가 나지 않는 이들의 활동이 과연 얼마나 ‘학술적’인지 의문이다.

비슷비슷한 이름에 고만고만한 지적 수준의 언론단체들이 잇따라 출현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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