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미드 자막에 대한 고소사태는 한국 내 미드마니아들을 일순간에 움츠려들게 했다. 누리집에 차고 넘치던 미드 자막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누구한테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 자막 제작자들로서는 위험부담을 안고 굳이 자막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한국이 영어 공부를 무척 많이 시키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미드를 자막 없이 이해할 사람은 매우 드물다. 당연히 미드의 열기도 빙점 이하로 떨어져버렸다.

그럴 때 한국 드라마가 그런 미드마니아들의 취향을 충족시켜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과거도, 현재도 막장 아니면 연애에 볼모잡힌 한국 드라마는 변함이 없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전부터 케이블에서는 지상파 드라마들이 손도 대지 않거나 혹은 시도했다가 실패한 장르드라마에 대한 점진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케이블이라는 특성과 한계가 동시에 작용하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그래도 지상파 드라마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도피처가 될 만 했다.

이번 OCN에서 시작된 <나쁜 녀석들>은 노골적으로 미드마니아들을 겨냥했다. 아니 본래 케이블 드라마들은 미드의 골격에 의존했으니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나쁜 녀석들>에 미리부터 관심이 갔던 것은 김상중, 마동석, 박해진, 조동혁 등 만만치 않은 배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케이블 드라마치고는 캐스팅이 꽤나 화려하다. 게다가 미친개 형사로 등장하는 김상중의 메소드 연기는 호기심과 흥분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미끼였다.

<나쁜 녀석들>은 한 마디로 나쁜 놈으로 더 나쁜 놈을 잡는 형사물이다. 미드에서 흔한 포맷이다. 대표적으로 시즌4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기물 <슈츠>가 있다. 뉴욕의 유명한 사기꾼에게 교도소 생활 대신에 FBI를 도와 풀기 어려운 화이트컬러 사건을 함께 해결해나가는 이야기들이다. 범죄자 사기꾼이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이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가끔씩 범죄자 본능을 억지로라도 삽입해야 할 지경이다. 다만 그의 발목에는 행동반경을 엄격히 제한하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다. 그보다 더 비슷한 미드로서는 <브레이킹아웃킹즈>가 있다. 자세한 설명은 누리집을 검색해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나쁜 녀석들>에도 그 발찌가 등장한다. 서울을 28일 만에 평정한 조폭두목 박웅철(마동석), 살인기술자 정태수(조동혁) 그리고 최연소 연쇄살인범 이정문(박해진)을 감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지만 실제로 그 발찌의 기능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미드에서 왔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으려는 고백의 도구처럼 보일 뿐이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 오구탁(김상중)은 이들을 이끄는 형사다. 말이 형사일 뿐 하는 짓은 범죄자 이상이다. 그것은 오직 나쁜 놈들에게만 그렇다. 다만 이 거친 짐승들을 다뤄야 하는 여자 경찰 유미영 역의 강예원은 다소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옥에 티이자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어쨌거나 4일 만난 <나쁜 녀석들> 첫 회는 시종 강렬한 화면과 전개로 시선을 끌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믿고 보는 배우 김상중의 연기변신은 단연 화면을 압도했고, 곱디고운 얼굴로 싸이코패스를 연기하는 박해진의 모습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강예원의 어색한 연기가 내내 눈에 거슬렸지만 다른 네 명의 배우들이 뿜어내는 묵직하고 강렬한 아우라로 어떻게든 덮을 수 있었다.

첫 방의 소감은 이렇다. 총 11부작인 것이 벌써 아쉽다는 것이다. 미드의 갈증을 풀어주기에는 충분한 소재와 연기. 한정훈 작가의 히트작인 <뱀파이어 검사> 시리즈보다 한결 더 탄탄해졌다. 보통의 경우라면 미드와 너무 유사해서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미드 금지의 시절이라 오히려 더 친숙하게 다가온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설정이 너무 거친 것도 없지 않지만 드라마는 어차피 드라마일 뿐이다. 이들의 거친 모습에 어떤 카타르시스마저 기대케 된다. 미드 금지의 시대, 미드가 아니면 케드로 버틸 수 있겠다는 강력한 기대를 심어준 <나쁜 녀석들> 다음 회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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