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은 조선,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용장이자 명장으로 추앙받는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성웅으로서, 전 세계적으로는 역대 해군 제독 중 가장 뛰어난 지략을 보유한 전설적인 제독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의 스토리는 어릴 적 위인전, 드라마 등을 통해 숱하게 접해서 알 수 있듯이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의 연속이었다. 요즘 시대에 과연 이순신 장군 같은 처세와 리더십 그리고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위인이 탄생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항상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쌓아놓은 위대한 업적에 비해 늘 이순신 장군의 존재감은 항상 우리들 마음 한편에 비껴나 있었다.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진 동상도 늘 무의미한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그러나 소설,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통해 이순신 장군이 조명되면 우리들은 마음 한 구석에 잠시 묻어두었던 잠재된 동경심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그 분의 위대함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항상 이순신이라는 성웅에 목말라 있지만 각박한 삶의 현실 속에서 그런 동경심을 끄집어내기란 어찌 보면 허황된 망상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명량'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상전투로 추앙받는 명량해전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였던 전투에서 12척의 배로 133척의 적함을 몰살시킨 위대한 전투가 스크린에 옮겨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렘을 안겨 주었다.

전작 '최종병기 활'에서 우리 전통 병기 활을 기가 막힌 묘사로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김한민 감독이 이번에는 누구나 다뤄보고 싶은, 하지만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또 다시 스펙터클 액션사극을 선보였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다뤄본 적이 없는 해상전투씬을 얼마나 스펙터클하게 담아낼 수 있는지가 영화의 관건이었는데, 전작에서 활을 통한 스릴 만점의 시각효과를 이끌어낸 김한민 감독이었기에 더 큰 기대감을 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과연 이순신 장군을 어떤 배우가 맡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개성파 배우이자 노련한 연기내공을 지닌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았다는 점도 또 다른 흥밋거리였다.

이에 덧붙여 김한민 감독은 전작 '최종병기 활'에서 청나라 적장 쥬신타 역을 인상 깊게 소화한 류승룡을 또 다시 불러들여 이번에는 일본 해군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구루지마 역을 맡겼다. 여기에 안정감 넘치는 조연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조진웅을 또 다른 해군장수 와키자카 역으로 투입하였다.

최민식, 류승룡 두 명의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들이 어떻게 스크린에서 불꽃 튀는 맞대결을 펼쳐낼지도 또 다른 관심거리였다. 영화는 초반 빠른 호흡으로 이순신의 고난과 인간적인 고뇌를 그려낸다. 명량 해전에 돌입하기 전까지 이순신이 어떻게 준비를 했는가에 대한 부분은 몇 가지 상징적인 장면으로 대신한다. 특히 마을에 오랜 기간 거주해서 누구보다도 해류와 지형을 잘 파악하고 있는 노인을 통해 울돌목을 활용한 전투법에 대한 영감을 얻는 장면은 이순신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열린 귀를 가진 리더십의 장수라는 점을 보여준다.

초반의 극적효과를 위한 설정이 끝나고 나면, 영화는 중반부부터 1시간 가까이 해상전투씬에 돌입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를 치열한 영상효과로 담아내는데 기존 역사수업을 통해 배웠던 부분과 다소 달랐던 점은 조선 수군의 피해는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일궈낸 대승으로 배웠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전함이 일본 수군과 백병전도 마다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영화의 극적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설정이었을 텐데, 해상 전투 장면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전작에서 활의 특성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며 경탄을 이끌어낸 김한민 감독의 기지가 이번 작품에서는 다소 미약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어떻게 전략적으로 해상에서 일본 수군을 격퇴하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영화는 우직하게 정공법을 택한다. 그리고 배우 최민식의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기대면서 영화를 끌고 간다. 그래도 칭찬해줄만한 장면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줄을 연결하여 이순신 장군의 전함을 복구해주는 장면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이순신 역을 맡은 최민식의 경탄스러울 정도의 카리스마가 빛을 발한다. 인간적인 고뇌와 때로는 나약해지기도 하지만 장수들과 백성들 앞에서는 끝까지 당당함을 놓지 않는 용맹함이 그의 눈빛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일본 적장역을 맡은 류승룡이나 조진웅 등의 매력이 드러나지 못했지만 그 부분은 실제 역사상으로 볼 때 이순신이라는 존재의 비범함이 상대 적장들을 압도했기 때문에 빚어진 어쩔 수 없는 결과이지 않나 싶다.

솔직히 이 영화가 역대 최다 흥행기록을 수립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영화의 흥행은 영화 속 이순신의 대사처럼 '천행'에 힘입었다고 볼 수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리더십이 보여준 실망스런 모습은 내가 살고 있는 국가에 대한 신뢰와 존엄성마저 무너지게 만들었다.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견할 수 없고 비상식이 상식으로 당연하게 치부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순신이라는 존재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한줄기 희망이지 않나 싶다.

조선 역사상 최악의 무능한 임금(선조) 밑에서 역사상 최고의 장수(이순신)가 조선을 함락 위기에서 구했다는 극적인 대비효과가 영화 '명량'을 지배하는 컨텍스트이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리더십의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의 대부분은 영화 개봉 후 한동안 이순신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지만 정작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128분의 위대한 회오리 속에 갇혀 있는 동안 마음 한 구석에 내재하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아쉬운 갈망에 조금이나마 카타르시스와 위안을 얻었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극장에서 영화 관람하면서 무려 20여년 만에 박수를 치고 나오게 만든 영화 '명량'이었다.


대중문화와 스포츠는 늙지 않습니다(不老).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맛깔나게 버무린 이야기들(句), 언제나 끄집어내도 풋풋한 추억들(不老句)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나루세의 不老句 http://dailybb.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