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살던 동네의 대학 근처 새로 생긴 원룸촌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세를 든 학생들이 보증금을 떼어 먹히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집주인인 건물주에게 따지러 갔지만 주인은 한동안 연락이 안됐고, 겨우 만나 들은 말은 “나도 길바닥에 나 앉게 됐다. 너희들만 힘든게 아니다”라는 한탄이었다. 짐작이 가겠지만, 건물주는 건물과 보증금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원룸텔을 지었던 것이었고, 갑자기 오른 이자에 월세를 모두 모아도 원금은 커녕 이자도 갚지 못할 지경이 되었단다. 결국 건물에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포함하여 은행의 차압이 들어왔고, 아무 잘못도 없는 학생들은 하루 아침에 거금을 날리게 됐다.

꼭 대학생들이 아니었어도 세입자에게 이런 일은 부지기수다. 그런데 집 뿐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다. 지금 100일이 넘게 종로 인근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씨앤앰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당한 일이 바로 그렇다.

날아간 보증금과 빼앗긴 생계수단

문제의 발단은 2008년 씨앤앰을 맥쿼리와 MBK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가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인수 총액은 2조 1천억 여원이었는데 이중 1조 5천 억 가량이 그들 돈이 아니라 은행권에서 빌린 대출금이었다. 사모펀드는 씨앤앰이 다른 케이블 업체에 비해 수익성이 높은 수도권 다수 지역의 독점 사업자이고, 디지털 전환으로 더 높은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기대로 막대한 부채를 지면서 인수에 나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서 사그라들었다. 수익은 연간 1,000억 원에 가까운 이자를 감당하기에 모자랐고, 그 와중에 맥쿼리와 MBK 대주주들은 배당금을 챙겨갔다. 게다가 부담을 줄이자고 시도한 대출 갈아타기(리파이낸싱)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은행단은 대출 조건으로 부채 대비 연간 일정 비율 이상의 수익을 내라고 요구했다. 이런 조건은 결국 경영진에게 신규 투자나 사업을 벌일 자율권을 박탈했다. 오직 수익률 보전에만 몰두했던 씨앤앰은 그 부담을 협력업체에 전가했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급여는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 사태가 이러니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원청’인 씨앤앰 앞에서 농성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미 실질적인 경영권은 상실했고, 매각을 서둘러 부채를 갚으라는 은행단의 요구 앞에 무력한 경영진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결국 노동자들이 찾아 간 곳은 매각 차익만을 바라며 막대한 부채의 모험을 감행한 대주주 MBK 파트너스였다. 집주인이 경영진과 대주주로 바뀌었을 뿐, 어떤 책임도 없는 이들이 댓가를 치른다는 점에서는 떼먹힌 보증금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차라리 집 문제라면 일을 더 열심히 해 어떻게든 떼인 돈을 메우기라도 하겠지만, 씨앤앰의 경우는 집이 아니라 돈을 메울 생계 수단을 강탈당했다는 점에서 더 최악의 사태다.

▲ 지난18일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에서 연좌농성을 벌인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지부장 김영수) 소속 조합원들의 모습. 이들은 씨앤앰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면담이 성사될 때까지 무기한 대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사진=미디어스)

부채의 시대, 최후의 보증인은 누구인가?

어찌보면 이런 사태는 비단 씨앤앰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새 부를 쌓는 방법은 투자와 생산이 아니라 채권과 증권, 그리고 환차익으로 대표되는 금융에 집중됐다. 한 개인의 전세 보증금부터 높은 수익률의 기업까지, 심지어는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이 국가 전체가 부채의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씨앤앰 사태가 보여주듯, 현재의 파국에서 유일하게 이익을 얻는 이들은 인수자금을 대출해 준 은행권이다. 만일 씨앤앰의 대주주가 1조 원을 훌쩍 넘는 부채를 갚지 못하면, 은행권은 이를 유동화시켜 파생상품으로 수익을 낼 수도 있다. 2008년 미국의 금융공황은 세계가 이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넘어 채권자-채무자라는 또 다른 계급관계로 재편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지금의 씨앤앰 문제는 한 기업과 협력업체, 그리고 “강성” 노조의 문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세입자인 당신,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은 당신, 학자금 대출을 받은 당신의 문제, 바로 “우리”의 문제다.

이 촘촘한 금융 지배의 시대에 최후의 보증인은 누구였나? 2008년 미국을 떠올려보자. 리먼브라더스를 시작으로 숱한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했을 때, 결국 진화에 나선 것은 정부였다. 국민의 세금까지 동원하여 전무후무한 12조 달러(약 1경 3천 400조)를 퍼부었던 것이다. 씨앤앰 사태는 이보다 규모는 작을지언정 본질은 다르지 않다. 부채를 동원한 인수를 허가하고 그 조건인 “재무건전성 유지”를 충분히 감시하지 못한 방통위, 그리고 현재 씨앤앰을 비롯한 유료방송사업자들의 규제 업무를 인계받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최후의 보증인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국민의 세금으로 부채를 메우라는 말이 아니다. 씨앤앰은 미국의 금융 사태처럼 순수한 사기업도 아니고, 온갖 파생상품으로 수익을 올리는 투자은행도 아니다. 케이블 사업자는 현재의 유료방송사업자 중 유일하게 지역 독점을 허가 받은 공적 지위를 겸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번 씨앤앰 사태에서도 해당 지역의 가입자들이 케이블, 인터넷 설치 및 AS에서 불편을 겪었다. 이런 차이를 생각하면, 지금 정부의 개입은 부채를 떠안는 것이 아니라 채권단과 대주주, 그리고 경영진과 노동자들 간의 중재가 될 것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보증금을 날린 세입자들을 위해 정부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했듯, 지금의 씨앤앰 사태는 은행단과 대주주의 채권-채무 관계 틈새에서 생계수단을 잃게 된 노동자들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때다. 또한 지금의 사태는 지역 케이블 가입자들까지 연관된 문제다. 국경을 초월하는 채권 지배의 시대에 최후의 보루는 역시 국가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모습은 결코 낮설지 않다. 노동자와 경영진, 그리고 대주주까지 모두 타고 있는 씨앤앰이라는 배가 부채의 바다에 침몰하고 있다. 대주주는 실패한 투자라 후회하며 이 배에서 가장 먼저 내릴 것이다. 남은 이들은 여전히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부는 이 침몰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사고일 뿐이라며 책임자 처벌의 엄포만을 놓고 있다. 다시 묻는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김동원 _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미디어의 정책과 이슈에 대한 글쓰기로 밥벌이를 한다. 미디어에 대한 단순한 한 가지 관점만을 고수한다. Media “and” Society가 아니라 Media “in and through” Society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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