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제조업 위기론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전통적인 중화학공업 등에 이어 첨단산업 분야까지 중국에 밀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면서 한국 산업구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30일 1면에 <중 특수에 웃던 한국제조업, 중 역풍에 울다>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과거 대중(對中)수출에 의존했던 한국 제조업이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중국 내 제조업의 발전에 밀려 오히려 뿌리채 흔들리는 신세가 됐다는 내용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삼성전자가 중국 내 중저가 토종브랜드인 샤오미(小米)에 밀려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량 2위를 기록해 중국 모바일 마케팅팀장을 교체한 사례 등을 이러한 상황의 대표적인 예로 꼽고 있다.

▲ 조선일보 30일자 1면.

<조선일보>는 4면과 5면 보도를 통해 소위 ‘굴뚝산업’으로 불리는 석유 완제품, 석유화학, 조선산업과 철강산업 등이 단기 실적주의와 연구개발 소홀로 중국 산업에 밀리고 있다고 보도했따. 또, <조선일보>는 삼성전자의 V낸드 반도체 등으로 대표되는 첨단산업의 경우도 주요 생산 기지 등이 중국에 위치해 한국 제조업의 강점인 제조, 공정 기술 등이 중국으로 고스란히 넘어가는 문제 역시 지적했다. 결국 단순히 중국 제조업의 성장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대비한 준비가 전혀 없는 한국 제조업의 문제 역시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제조업에 대해 말하자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중앙일보> 역시 제조업 위기론을 나름의 방식으로 반영한 1면 편집을 선보였다. <중앙일보>는 30일자 1면 톱에 <대졸 공채시장 삼성전자 쇼크>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하반기 대졸 공채 시장이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삼성전자가 채용 규모를 줄인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을 빌어 중국 시장과 애플의 아이폰6 출시 등으로 업황이 좋지 않아 최대 규모의 신규채용을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3면에 대졸자 등의 채용 현실에 대한 기사를 이어나갔는데 결국 제조업의 위기로 벌어진 상황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제조업 위기론에 대한 보도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중앙일보 30일자 1면.

<한국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한국 제조업이 상당히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30일 <다급한 대책 촉구한 ‘KDI 제조업 위기 보고서’>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경제 위기 이후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등 일부 대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됐으나 중국 제조업의 추격 때문에 결국 이마저도 어렵게 될 수 있다며 현재 한국 제조업의 구조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한국일보 30일자 사설.

목소리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말하는 언론의 이와 같은 보도들은 우리로하여금 이후 대안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언론들이 주로 주장하는 것은 규제완화로 요약되는 국내 제조업에 대한 범정부적 배려와 제조업 관련 업체들의 자기 혁신이다. 정치권이 협력해 규제 혁파에 나서야 한다거나 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들은 오히려 손쉽게 내릴 수 있는 것들인데다 찬반 양론에 휩싸일 수 있고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정부가 삼성전자 등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자본가들의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 대기업의 사정이 국민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제완화라는 제도개선으로 대기업의 사정이 나아진다고 해도 이러한 결과가 국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규제완화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그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들이 큰데다 이를 통해 대기업의 이익을 고수해주더라도 국민경제에 긍정적 영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가 성립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미 이명박 정부 때 ‘낙수효과’ 유도의 실패를 통해 그러한 효과를 확인한 바 있다.

참여정부의 경우 후발 주자와 선진국 사이에 끼어 제조업의 위기가 도래하리라는 ‘샌드위치 위기론’으로 요약할 만한 인식에 기초해 서비스업과 금융 중심의 경제 체제 개편을 시도한 바 있다. 이른바 ‘동북아금융허브론’으로 요약되는 이 청사진은 한미FTA 등 민감한 현안의 도화선이 됐으며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결정적으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당시 참여정부의 청사진이 세계 경제의 상황과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사실상 증명했다.

더군다나 인위적인 산업구조의 개편은 반드시 피해자를 양산한다. 한미FTA를 통해 제기된 문제도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농업인들의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는 점에서 극대화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어떤 충격적 수준의 산업구조 재편이 아닌 다른 방식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정권 초기 박근혜 정부가 내세웠던 ‘창조경제론’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나름의 대답으로도 볼 수 있는 비전이었다. 창조경제론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는 여론이 절대 다수이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지식경제 기반 컨텐츠 산업 등을 육성하자는 ‘산업구조 고도화’의 방법론에 나름대로는 충실한 모델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제기되고 있는 중국발 제조업 위기론은 상황이 좀 더 심각해지면 ‘창조경제론’마저도 현실에서 그 효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즉, 지금 필요한 제조업 위기에 대한 대안은 정권이 전체 경제구조에 대한 총체적 비전을 다시 한 번 내놓는 것이지 일부 규제완화 등을 통한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대응을 되풀이 하는 게 아닐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초이노믹스’는 오로지 지자체와 기업의 민원 들어주기식 경기부양에 집중하고 있다. 정권 말에 가까워질 수록 쓸 수 있는 카드는 줄어들고 대통령의 마음은 초조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위기는 바로 그 상황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정권의 기득권들이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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