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15년 만에 유엔총회에 참석했지만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이다. 29일 <조선일보> 5면 기사 제목은 심지어 <유엔서 따돌림당한 北 리수용 ‘빈손 귀국’>이었다. <동아일보>는 1면 기사와 3면 기사를 가져갔는데, 1면 기사 제목을 <김정은, 반기문에 “방북해달라”>로, 3면 기사 제목은 <人權 궁지 몰린 北 ‘반기문 카드’로 출구모색>로 달았다. 어떤 의미에선 조롱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이 동시에 게재한 사설을 보면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29일자 <동아일보>는 <북, 반기문 초청해도 핵 움켜쥐고는 고립 못 면한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이 반 총장을 미국의 퇴역 프로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처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라고 말하는 등 역시 조롱까지 담은 비판만으로 그치는 듯했다.
▲ 29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그러나 <동아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중요하지만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만큼 남북관계를 인도적 분야 등 쉬운 것부터 풀어나가는 선이후난(先易後難)의 정책적 융통성을 강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지금처럼 대화가 꽉 막힌 채 불신과 군사적 위기만 고조되는 것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남북이 직시해야 한다”라며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행동을 주문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전에도 남북대화의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北 외무상 빈손 귀국, 현실 똑바로 보고 南北대화 나와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리 외무상은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에 일주일가량 머물렀지만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끝까지 들은 것과 27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면담, 자신의 유엔 연설 정도를 빼곤 눈에 띄는 일정이 없다. 유엔을 찾은 각국 외교 사령탑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라며 북한의 고립과 외교적 실패를 비판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조선일보>는 “북은 리 외무상이 빈손으로 귀국하게 된 현실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북과 모든 대화가 막힌 지금의 국면(局面)을 타개할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로 사설을 마무리 지었다.
▲ 29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역시 여타 보수언론에 비해서는 좀더 전향적인 보도를 한 곳은 <중앙일보> 였다. 대북정책에 대해서 만큼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보다는 오히려 <한국일보>와 같은 중도언론과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중아일보>는 29일 지면 배치에서도 6면 기사 제목은 <북, 15년만에 유엔총회 연설… 반기문에게 김정은 친서>로 달고, 8면에서는 동북아시아 안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와 대담을 담은 기사를 실으면서 대북문제를 큰 틀에서의 한국의 외교 전략의 문제 안에 배치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제목부터가 <북핵 우선 해결의 딜레마에 발목잡히지 말자>로 여타 보수언론과 차별적인 자세를 보였다. <중앙일보> 사설은 “우리의 최대 안보 딜레마인 북핵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상황 변화에 걸맞은 정책이라야 북핵 해결의 전기도 마련할 수 있고, 북핵이 남북관계에 끼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전략적 인내’라면서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도 새로운 전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북한의 핵 능력은 크게 증가했다”라며 대북강경책이 오히려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폭주하는 차를 세우지 않고 바로 후진시킬 수는 없다”라면서, “북한의 핵 개발 진전 중지와 정보 공개는 한반도 평화 구축 작업의 기점이 될 수 있다. 북핵의 완전한 해결 시기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과 남북 간 공동 번영이 상당히 진전되는 시점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북핵문제 해결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 29일자 중앙일보 8면 기사
<중앙일보>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우리 정부의 주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편승해서는 곤란하다. 임기 2년여를 남긴 오바마 미 행정부가 11월 의회 선거 이후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낮다. 중국의 대북 압박도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들이다. 결국 북핵 문제의 최대 당사자인 우리가 새로운 접근을 주도해야 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동시에 남북 문제에서도 북핵 최우선 해결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관계 발전을 꾀해야 한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의 5·24 대북 제재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 대북 문제에서 우리만 뒤처지는 상황이 방치돼서는 안 된다”라고 제안하면서 사설을 마무리 지었다.
<중앙일보>는 한국 사회에서 자본과 기업의 이해를 가장 잘 대변하는 신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중앙일보>의 대북문제의 접근이 기업가의 탐욕 때문에 국가의 더 중요한 문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볼 수 없다. 결국 <중앙일보>의 대북문제에 대한 접근은 한국 사회가 안정을 꾀하기 위해선 북한 위협이 계속 존재해선 곤란하고, 더 나아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다각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판단이 진보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보수의 관점에서도 합리적이라면, <중앙일보>에 비해서도 훨씬 더 대북문제에 있어 경직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말하는 합리성은 무엇이 될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도 대화를 위해 뭔가 노력을 해보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요지부동인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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