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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사면론인가… 총수 신변 담보로 대기업 ‘결단’ 요구?[분석]총수 마음대로 대기업…'계산서' 요구할 정부
김민하 기자 | 승인 2014.09.28 20:07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발언한 지 하루만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이 필요할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예외없는 법 적용’ 기조를 거스르는 것인 데다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인에 대한 정부의 사면 문제에는 예외없이 이런 논란이 달라붙는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특권’을 활용해 법을 피해간다는 식의 느낌을 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애초에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에 대한 가석방 조치 등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에도 이런 맥락이 반영됐다.

   
▲ 서울 종로구 SK 본사 빌딩 (연합뉴스)

정부가 이런 논란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늘 기업인(정확히는 재벌총수들)에 대한 사면을 주장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재벌이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기업인에 대한 사면론은 재벌의 정부에 대한 로비력과 실물경제에 재벌이 끼칠 수 있는 실제적인 영향력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SK그룹이나 CJ그룹 등은 언론을 통해 그룹 총수의 부재로 공격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부 입장에서 대기업의 공격적인 투자는 경기를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요소다. 반대로 말하면 대기업의 소극적 태도는 정부 입장에서는 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지난 정부에서 ‘동반성장’을 강조한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이명박 정부는 감세 정책 등을 추진하면서 대기업이 거두는 이익이 중소기업와 서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나눠질 것이라며 ‘낙수효과’를 장담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들이 바랐던 것과는 달리 대기업은 국내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오히려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한 ‘단가 후려치기’ 등의 행위를 일삼았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동반성장’이란 패러다임을 내세워 대기업들이 ‘알아서 성의를 보이도록’ 압박했다.

당시 ‘동반성장’ 정책이 대기업들에 대한 압박이었다면 현 정권의 기업인 사면론은 애원에 가깝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 상황이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기를 부양시켜야 하는데 여기에 대기업이 적극 호응해야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배가될 수 있을 거라는 취지의 주장을 기업인 사면론의 근거로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어떤 면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애초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때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언급한 바 있다. 기업이 가진 돈을 거의 반강제로 내놓도록 하자는 것인데 개념 자체를 비유적으로 설명한다면 ‘강제 낙수효과’에 가까운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이러한 언급은 이제 한국 경제가 고전적인 의미의 거시정책만으로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한국 경제의 위기는 부의 분배를 강화하는 것으로부터 극복이 가능해진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영업보호 및 고용안정 대책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최경환 경제팀이 실제 내놓은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이러한 기대는 과도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과거 정부에서 법인세를 깎아준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임금이나 배당을 늘려 사내유보금의 증가 규모를 일정 정도 이하로 할 경우 과세의 대상이 아닐 수 있는데, 이를 보면 기업이 임금을 늘리기보다는 배당을 통해 사내유보금을 줄일 거라는 추측을 쉽게 내놓을 수 있다. 배당은 당장 기업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의 양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부유층인 대주주들의 배를 불리게 되는 데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투자 유도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임금을 늘리는 것보다 배당을 강화하는 게 기업의 입장에서는 더 이득이다. 정부가 의도한 내수의 확대를 위해서는 임금을 늘리는 게 바람직하지만 정부 스스로 기업이 임금 상승을 위한 지출을 늘리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제시해준 것이다.

경기 침체의 고통 분담과 부의 분배 문제에 있어서 이렇게 거의 일방적으로 기업을 편들어주다시피 한 박근혜 정권이 기업인들의 사면까지 추진하는 것은 그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제는 보수세력 일각에서도 분배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음에도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굴종으로 일관하는 정부가 과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굴종’의 차원이 아니라 무슨 다른 ‘딜’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져볼 수도 있다. 재벌 총수들은 기업을 사유화하고 자신들의 거대한 권력을 활용해 제멋대로 기업의 자금을 운용해왔다. 어느 재벌 총수는 역술인의 주장에 따라 투자 방향을 결정해 결국 회사에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입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회사의 자금을 개인투자금으로 쓰기 위해 돈세탁을 한 정황도 있다. 재벌 총수가 대놓고 이런 일을 벌여도 대기업들은 그저 회장님의 말 잘 듣는 꼭두각시다.

뒤집어 말하면 정권 입장에서는 재벌 총수만 잘 구워삶으면 재계의 힘을 빌어 뭐라도 해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10조5천5백억 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한국전력의 삼성동 부지를 낙찰받은 것은 대표적인 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은 공기업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니 액수를 아끼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정몽구 회장의 이러한 비합리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에 계열사들까지 합치면 몇십 조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는 한국전력은 상당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정작 그 돈을 지불한 현대차그룹은 후진적인 경영문화라는 평가를 받게 돼 11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증발하는 사태를 겪어야 했다.

즉,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기업인 사면론을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총수의 신변을 담보로 대기업에 ‘결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는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독주하기를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라도 대기업의 역할을 유도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권 말이 되기 전에 대기업들은 또다시 ‘계산서’를 내밀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누군가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라고 말하기도 했잖은가?

김민하 기자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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