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들은 일부 요금제에서 통화와 메시지를 무료로 풀었다. 그리고 데이터도 선심 쓰듯 늘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계통신비는 꾸준히 상승 중이다. 통신비가 가구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고, 절대금액은 매년 5%씩 늘고 있다. 2014년 8월 기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와 통신 3사가 관리하는 미납요금은 1조9800억 원이나 된다. 건수는 478만여 건이다.

많은 이용자들이 휴대전화 교체를 단말기유통법이 발효(10월1일) 전에 해야 하는지 후에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만 지금 바꾸나 10월에 바꾸나 ‘호갱님’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시장은 사업자와 정부가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이다. 전국민을 호갱님으로 만드는 첫 단계는 사업자의 ‘원가 부풀리기’다. 규제기관은 여기에 적극 협력한다.

28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실이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받은 ‘이동통신3사 원가보상률’ 자료를 보면 업계 1위 SK텔레콤의 원가보상률은 2010년 122.9%를 기록한 뒤 115.9%→111.5%→110.8%로 떨어졌다. KT는 111.6%→109.9%→99.6%→104.3%로 주춤하고, LG유플러스는 91.3%→83.7%→83.1%→88.3%로 바닥이다.

▲이동통신 3사의 원가보상률 및 매출, 영업이익 자료. (자료=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원가보상률은 영업수익을 총괄원가로 나눈 값으로 “이용자의 통신이용 요금 산정에 영향을 미치는 자료”다. 매년 3월 이동통신사는 자료를 제출하고, 미래부는 이 자료로 원가보상률을 계산한다. 원가보상률은 상호접속료(사업자간 통신비), 도매대가(알뜰폰 요금기준 등), 설비제공 비용 등을 산정하는데 활용된다. 정부의 요금인가심사에서도 참고자료로 활용되는 자료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원가보상률이 영업이익과 큰 차이가 있다. 사업자별로 보면 SK텔레콤의 원가보상률은 떨어졌고, KT는 답보상태이지만 2012년에 비해서는 조금 올랐고, LG유플러스는 여전히 100%가 안 되지만 2011년과 2012년에 비해서는 조금 올랐다. 그런데 SK텔레콤은 지난해 영업이익은 2012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고, LG유플러스도 창사 이래 최고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원가보상률이 소폭 떨어진 SK텔레콤의 2013년 영업이익은 2조111억 원이다. 전년 1조7300억 원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매출증가분(4607억 원)과 천 억 원 정도만 적은 수준이다. KT의 경우, 지난해 원가보상률은 전년대비 5% 가까이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3700억 원 정도 빠졌다. LG유플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421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이를 두고 전병헌 의원실은 “2010년부터 각 통신사의 IR자료와 원가보상률을 단순 비교하면, 원가보상률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며 “각 회사의 기본적인 매출이나 영업이익과는 달리 통신 원가보상률은 전혀 다른 회계기준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현실성이 결여된다”고 지적했다. “사업자가 원가를 부풀려 초과수익을 얻는다”는 것.

▲한겨레 2014년 9월26일자 1면 머리기사.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원가 부풀리기’는 감사원이 미래창조과학부를 감사한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한겨레는 26일 감사원의 미래부 감사결과, 이동통신 3사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법인세 비용 2조1500억 원, 투자에 따른 적정이윤인 투자보수 2조5700억 원을 ‘총괄원가’(적정이윤을 포함한 원가)에 적정 수준보다 과다하게 반영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과도한 마케팅비도 포함됐다.

한겨레는 “부풀려진 원가와 과다 사용된 마케팅비는 고스란히 소비자 요금에 반영됐는데, 3년 간 모두 22조7800억 원에 이른다”며 “연간 7조6000억 원꼴로, 국민 1인당 연평균 15만 원을 부담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제대로 검증이 안 됐다’는 이유로 이번 감사결과를 ‘불문’(문제삼지 않음)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통사 손을 들어준 셈이다.

결국 사업자의 꼼수와 규제기관의 감싸기로 높은 통신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통신원가를 공개해야만 근본적으로 ‘호갱님’이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정부와 사업자들은 영업비밀을 공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대선공약으로 ‘가계통신비 절감’이 나온 와중에도 정부와 사업자는 매년 3월 ‘호갱님 만들기’를 진행했다. 사실상 가계통신비 인상 프로젝트다.

가구당 통신비는 꾸준히 올랐다. 2001년부터 2년 단위로 보면 9만2124원→12만1815원→12만7442원→13만1258원→13만283원→14만228원→14만3236원(2013년)이다. 이동통신사들은 때때로 점유율 경쟁 탓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가격을 제시한다. 그러나 손해를 볼 장사꾼은 없다. 사업자는 원가를 부풀려 더 높은 요금제를 만들고, 이를 이용자에게 떠넘기면 된다.

▲한겨레 2014년 9월27일자 6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제도개선이 급하다. 전병헌 의원실은 “미래부는 향후 총괄원가[=사업비용(영업비용, 출연금, 보편적 역무손실보전금, 전기통신관련 유형자산 처분 손익 및 법인세비용)+투자보수(요금기저(연평균 유형자산등 장부가액+연평균 재고자산+적정운전자본)X투자보수율(사업자별8~10%)]를 계상하는데 있어서 보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계산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병헌 의원은 “미래부는 요금인가제를 통해 통신 요금을 직접 관리할뿐더러, 통신 원가보상률을 통해 각 통신사간 주고받아야 할 비용 등을 계상하는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권한 집행이 ‘공정한 경쟁환경’ 등을 이유로 소비자 통신비 인하 보다는 사업자 편의에 힘이 실리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원가보상률 계산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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