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media)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 ‘대중 매체’, ‘매개체(媒介體)’, ‘매체(媒體)’로 순화’로 정리되어 있다. 미디어 매체에 종사하면서 주경야독(晝耕夜讀)의 각오(?)로 더 깊은 공부를 하겠다고 대학원에 진학했음에도 여전히 ‘미디어’의 실체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미궁속의 존재같다. 한쪽 면을 알 듯하면 다른 한 쪽은 살짜기 숨어버리고 저 쪽 면을 건드리면 나머지는 또 다시 숨바꼭질 하듯 몸을 감추어버리는, 그래서 전부를 드러내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 어쩌면 미디어는 나에게 있어 평생 연마해야 할 영원한 화두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내게는 미디어에 몸담고 있으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그 해답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적잖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김훤주 기자가 <미디어스>에 연재하는 ‘김주환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칼럼을 통해 지역 언론의 실상과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활약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문기자로서의 올곧은 기자관, 특히 지역 언론인으로서 지역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대할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곤 한다.

▲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김사은 PD
최근에 마친 특집방송 <라디오 마당놀이 - 대한민국 촌놈> 제작 무렵, 경남 마산으로 출장을 가서 김주완 기자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산행이 처음이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그런지 가는 길이 한결 마음도 편하고, 같은 ‘지역 언론인’으로서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 시간 여 인터뷰 하는 동안 기대처럼 지역정체성 확립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명쾌한 제언이 인상적이었다. 경남권에는 3개의 일간지가 있다는데, 전라북도 도청소재지 전주에만 10여개의 지역 일간지가 난립하고 있는 현실과 대비되면서 매체는 다르지만 참다운 지역 신문의 위상 정립을 위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왕 경상도 땅에 발을 디딘 만큼 미디어 친구를 찾아 대구로 발길을 옮기기로 했다. 대구 역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방문 횟수가 손꼽을 정도. 마침 <대구평화방송> 우웅택 PD와 연락이 닿아 “꼭 다녀가시라”는 권유에 기분좋게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우 PD는 <미디어스>에 실린 <김사은 라디오 칼럼>을 읽고 ‘지역 종교방송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심경과 ‘좋은 방송을 위해 노력하자’는 메일을 보내와 용기를 주었다. 초면인 우 PD와는 마치 오랜 선후배처럼 대화가 잘 통해서 기분 좋았다. 깔끔하고 정결한 방송국도 인상적이었고 직원들의 밝은 표정도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원음방송은 종교협력방송을 주요 편성프로그램으로 시행하고 있을 만큼 타 종교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데, 대구평화방송의 우 PD역시 원불교 교무님을 초대해 특집방송을 한 적이 있다고 소개한다. 종교간 지역간 편견을 뛰어넘는 우 PD 같은 동료가 있어서 든든했다.

며칠 전, 취재차 전주를 방문한 친구를 만났다. 중앙일간지 A사의 여행전문기자인 K기자는 나를 보자마자 “김PD를 <미디어스- 라디오 칼럼>에서 자주 만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B사의 여행전문기자 L선배와 동행해서 취재를 마친 후 “막걸리 한 주전자에 안주로 상이 뒤덮인다는 환상의 전주 막걸리를 체험해 보고싶다”고 해서 관계자 두어분과 함께 전주 막걸리의 원조격인 용진집으로 안내했다.

원래 ‘비주류’인 나는 안주만 작살내고 별로 ‘주류’에 속하지 않을 듯한 일행들은 보기만 해도 황홀한 안주 세례에 매혹되어 벌써 몇 주전자 째 속을 비우고 있다. 전주 막걸리의 특징은 1만2천원하는 막걸리 주전자가 추가될 때마다 특별 안주가 코스별로 따라온다는 것. 다른 업소에서 한 장 당 최하 5천원인 파전은 기본안주에 속하고, 연하고 큼직한 소고기에 국산 고사리가 듬뿍 들어간 정통 육개장쯤 되어야 품위있는(?) 국물로 인정받으며 전주 막걸리 안주로 쳐준다. 막걸리 주전자를 두어개 비우고 싱싱한 게장에 김가루까지 뿌린 밥이 나온데 이어 급기야 막걸리 안주로 낙지회에 삼합이 딸려 나올 즈음, 일행들은 얼콰해진 기분에서 각자 전공영역과 사회현상과 추억을 넘나드는 풍만한 주제로 분위기 급상승하면서 술값을 서로 내겠다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K기자는 “술값을 기분좋게 낼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래 여행기자들의 직업특성상 크고 작은 업소나 자치단체, 연관성있는 곳에서 끊임없이 식사나 술자리 초대가 이어지는 법인데 K기자처럼 양심있는 기자들에게는 그렇게 마련된 식사자리가 편할 리 없을 것이다. 오랜 관행처럼 되풀이되어온 술자리 식사 초대를 거부하고 필요한 취재는 출장비나 취재비를 들여서 당당하게 취재한다는 것, 이것이 자신들의 취재 방식이라면서 친구인 나조차 술값 계산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초대에 일절 응하지 않으니 아이템 선정에서 자유롭고, 출장을 제외하곤 대부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후배 기자들도 이러한 취지를 살려나갈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K기자가 멋있었다. 일행은 이후로도 막걸리 주전자를 두어개쯤 더 비우며 사라진 미디어의 공익성을 회복하자고 결론맺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른 언론을 수행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믿었던 언론인이 어느 날 정계로 나가서 정권의 입이 될 때, 존경할 만한 선배 언론인을 꼽았다가 “혹시 그들도 정계로 가는 거 아냐?”라는 자조섞인 질문이 터져 나올 때, 기실 정치가 그릇되고 잘못된 것은 아닌데도 ‘정치’ 그 자체에 갖는 냉소적인 태도와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지역의 현실도 한심하다. 선거 때만 되면 언론인들이 후보 측에서 선거운동을 하다가 당선되면 자치단체에 고위직으로 입성하고, 후보가 탈락하면 다시 신문사로 복귀하는 이런 풍토 속에서 어떻게 신문사와 기자를 신뢰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뚜렷한 기자정신으로 뭉친 김주완 기자나 K기자는 신뢰할 만한 미디어 친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올곧은 기자정신으로 정론직필하는 미디어 친구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방송에서도 더 많은 미디어 친구들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방송, 종교방송은 더욱 그러하다. 정부가 추진 의지를 밝힌 ‘민영 미디어렙’과 관련해 언론·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은 “종교·지역방송의 생존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민영 미디어렙의 도입 계획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며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투쟁의지를 밝히고 있다. 종교방송, 지역방송 종사자들은 안으로 방송사와 방송인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밖으로 정권에 맞서 방송을 사수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지역과 종교를 넘나들며 ‘좋은 방송’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정성을 쏟는 대구평화방송의 우 PD같은 미디어 친구들이 많을 거라고 확신한다.

김주완 기자는 오는 11월13일 전북민언련 주최 시민언론학교 강사로 초대되어 전주를 방문할 계획이란다. 전주 막걸리 한 주전자 대접해야겠다. K기자와 L선배처럼 틀림없이 ‘뻑’ 갈 것이다. 미디어 친구 누구라도 전주를 방문한다면 언제든 전주 막걸리를 대접할 용의가 있다. 전주 막걸리의 맛, 안주의 풍성함도 특별하거니와 무엇보다 ‘그 곳’에서 나눈 대화가 사뭇 정직하고 올곧은 언론, 바른 언론 풍토를 세워가자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화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사뭇 미디어 친구들이 기다려진다. 미디어 친구, 이름 붙이고 보니 썩 괜찮은 느낌이다. 사족처럼 한줄 덧붙여 본다. “미디어 친구! 그러니까 <미디어스>인 거죠~”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전북여류문학회장을 맡았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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