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흔 한 살 먹은 우리 엄마는 영화보기를 좋아한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집에 가면 눈을 반짝반짝하면서 영화 보러 가자고 한다. 최근에 엄마와 함께 본 영화를 나열해보면, <끝까지 간다>, 그 다음에는 <군도>, 그리고 그 다음에는 <명량>, <루시>, 그 다음에는 <타짜2>였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영화들은 나나 우리 엄마의 취향과는 무관하다. 내가 집에 가는 토요일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볼 수 있는 영화는 오직, 이 영화들이었다. 물론, 뭐 우리 집에서 멀고도 먼 어느 극장에서 다른 영화가 상영할 수는 있었겠다. 하지만 노모를 모시고 행차를 하기에 적절한 극장에서는 그렇단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본 이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한 영화들이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있는 영화는 매우 제한적이며, 우연치 않게 얻어걸리는 ‘이상하고 신기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없다. 단연코.

꼭 내가 그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극장에 많은 영화가 걸려있으면 한번쯤이라도 제목을 보게 된다. 혹여라도 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영화를 찾아서 볼 수도 있다. 제목이 특이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영화라서, 신기한 줄거리에 끌려서 등의 이유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하다못해 보려고 했던 영화의 시간이 안 맞아서 시간 때우기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우연적인 관람이 가능하기를 희망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20분 간격으로 쭉 같은 영화가 나열되어 있는 속에서 적절한 시간대를 선택하는 정도이다.

이렇게 내가 특정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명백한 권리의 침해이다. 특별히 억울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이 상황은 오히려 그래서 더욱 절망적이다. 선택의 폭은 제한적이며, 볼 수 있는 영화는 당연히 적다.

몇 가지 수치를 보자. 영화진흥위원회의 2013년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의하면, 2013년 한국영화 관객점유율이 60%, 미국영화가 35%이다. 극장의 수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세 개 멀티플렉스 극장이 전체 극장 수의 81%(좌석수의 93.6%!)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중에서 CJ가 35%(좌석수 기준 42%)이다.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 세 개의 기업은 배급업도 겸하고 있는데, 배급사별 전체 영화 시장점유율은 CJ, NEW, 롯데, 쇼박스의 순이며 이들 네 개의 배급사가 68%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다양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높고, 천만관객 이상이 본 영화가 그 수를 늘려가고 있지만 이 시장이 나에게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영화산업의 구조는 철저하게 소수의 사업자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는 비단, 영화시장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IPTV와 디지털케이블 가입자가 1300만을 상회하고 있는 이때 부가판권시장으로서의 VOD시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장흥행은 그대로 TV VOD시장으로 연결된다. 극장의 흥행은 VOD시장에서의 흥행과 비례한다. 돈을 버는 사업자는 극장이 아닌 TV 플랫폼에서도 돈을 버는 구조이다. (CJ는 이 사업도 하고 있다.)

양적인 성장은 이루어졌지만, 그 수익은 일부 대기업에 의해 독식되고 있고 소비자인 내가 볼 수 있는 영화는 오직 그들이 ‘보여주는’ 영화이다. 내가 볼 수 있는 영화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다양성이라고는 없는 시장이 건강할리 없다. 소수사업자들만이 수익을 독차지하면서 중소사업자들의 제작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사례들도 보고되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흔한 퐁당퐁당(아침이나 밤에만 상영하는 교차상영) 이라고 하는 변칙적인 상영방식은 극히 일부이다.

수직계열화로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스스로 투자·배급한 영화를 과다 상영했다는 의심 등을 가지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조사에 착수해, 이달 안에 영화산업불공정행위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 3대 멀티플렉스는 영화뿐 아니라 팝콘가격도 매우 유사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어 담합여부를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스크린독과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영화시장의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그 어떤 대안이나 해결책이 제시된 적은 없다. 지난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영화시장 독과점 현황과 개선을 위한 세미나에서는 지난 1948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대한 반독점 소송에서 메이저 스튜디오들에게 극장매각을 명한 <파라마운트 판례>가 다시금 부각되었다고 한다. 이 판결은 극장과 배급의 겸업을 금지했던 판례로 일부에서는 이 방법을 우리 영화계에 적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강제적인 규제만이 능사가 아닐 수는 있다. 바라건대,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일회적인 토론회를 떠나 사회적인 공론의 장에서 펼쳐지기를 바란다.

독과점 시장에 고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호갱님’이 있을 뿐. 여기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다른 데로 가면 좋은데 ‘다른 데’가 없기 때문에.

덧. 2008년 이후 모든 대형영화관의 외부음식 반입이 가능해졌다. 물론 어느 극장도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극장 앞에서 팝콘전문점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가격은 극장 판매가의 절반 정도면 이래저래 수지가 맞을 듯도 싶은데.

정미정 / 성균관대학교 언론학박사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특별위원회 위원
현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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