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반영하듯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에 따르면 이공계는 대졸 신입사원 위주로 선발하고, 인문계는 다른 기업에서 검증된 경력사원 중심으로 뽑고 있다고 한다. (...) 기업이 갈수록 인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는 마당에 왜 이렇게 인문계가 홀대받는 지경으로까지 내몰린 것인가.

우리는 이 모두 잘못된 인문학 교육이 빚어낸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인문학적 상상력은 고사하고 지독한 반기업 정서에 물든 인문계 졸업생들에게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한다. 반시장주의, 반자본주의를 인문학으로 위장하는 강남좌파식 교수들이 판을 치니 당연한 결과다. (...)

그나마 인문계 출신을 뽑는다는 곳은 영업 등 서비스업 분야에 국한돼 있다. 하지만 이런 분야도 갈수록 과학기술과의 융합이 가속화되고 있어 언제까지 인문계에 문을 열어 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인문학 교육의 과감한 변화 없이는 졸업자의 실업자 코스만 더욱 고착화될 뿐이다.“

- 23일자 <한국경제> 사설, <인문계 졸업생 홀대 이유 아직도 모르나> 중
<한국경제>의 사설의 내용은 과감하다. 단지 십 년 전과 비교해도 기업논리의 온상이 된 게 명백한 대학 교단의 절반 정도를 ‘강남좌파’가 판을 친다고 단정한다. 저성장도 ‘고용 없는 성장’도 ‘잘못된 인문학 교육’이 책임져야 할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 글의 내용을 단순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공박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우리는 경제신문의 담론적 가치에 주목하지 않지만, 보수언론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그들의 ‘날 것 그대로의 인식’이 기업의 시선이며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피케티의 어린 나이를 탓하는 그들에게 웃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이 피케티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사실만큼은 현실이다.
매우 안타깝지만,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한국경제> 사설의 내용에 맞서 ‘진정한 인문학 교육’이나 ‘비판적 지성인’의 가치를 역설하는 것도 부질없어 보인다. 현재의 대학과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이 ‘사회적 낭비’에 가깝다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낭비를 만들어내고 부추기는 것이 누구냐는 데에 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강남좌파’ 교수들은 그 낭비의 수혜자일지언정 생산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낭비를 만들어낸 것은 이전 시대의 질서를 참조하여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고자 했던 기성세대의 욕망과, 그 욕망을 관리하지 않고 그저 장사를 하려고 든 대학이며, 그것을 방조한 사회다. 인문사회계 졸업생이 넘쳐나게 된 까닭은 한국 사회가 제조업 일자리가 제일 많은 '제조업 국가'란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각 대학들이 ‘싼 비용으로’ 졸업장을 찍어내며 서민들에게 ‘비싼 부담’을 전가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과정에서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최근 고려대 총학생회로부터 촉발된 <중앙일보>의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을 떠올려 보자. 23일 아침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고려대 최종운 총학생회장은 언론사의 대학순위평가가 서열경쟁을 부추기고 국제화지수 같은 것들이 대학들이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도록 유도하며 언론사에 각 대학광고를 유치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 고려대 총학생회는 22일 "대학의 본질을 훼손하는 대학평가를 반대한다."라며 '대학평가 거부 운동'을 선언했다. 이들은 "마음도 받지 않겠다"며 "대학 순위평가가 대학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마음, 대학을 기업화해도 무방하다는 마음, 모든 대학을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해도 된다는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 움직임은 다른 학교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고려대 총학생회 제공) (연합뉴스)
말하자면 대학도 ‘장사’에 언론을 활용하고 언론도 대학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다. 대학재정의 근원이 등록금이며 등록금을 납부하는 것이 다수 서민들이라 생각하면 대학순위평가를 통해 대학이든 언론이든 서로 경쟁적으로 서민의 몫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경제>와 같은 경제신문의 몸과 마음을 지탱하는 곳이며 대다수 언론사와 기자들을 먹여살리는 곳, 기업이라고 사정은 다를까. 그들은 고등교육을 위해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대학이 예비노동자들을 위한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거드름을 핀다. 몇몇 재벌은 아예 대학교육 산업에 진입해서 온갖 폐단을 만들어냈지만 그 덕분에 취업률이 더 높아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하다. 대학 졸업생들의 인성이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지금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청년실업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수출대기업을 위해 환율도 조세도 조정되는 나라, 결국 그 부담은 서민들이 짊어지는 나라에서 ‘삥 뜯기’는 삶의 본질이자 이면일 수밖에 없다. 기업과 대학과 언론만 ‘삥을 뜯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생산성이 증대되지 않는 사회에서, 이제는 모두가 모두에게 삥을 뜯는다. 한국 사회는 내가 한 칸이라도 위에 있으면 아래칸에 있는 사람들을 착취해야 버틸 수 있는 구조로 가고 있다.
어제 인문교육을 질타한 <한국경제>는 오늘자 사설에서 경제민주화가 한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현재의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발악이다. 신문사 경영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삥 뜯을’ 것이 사라지면 이제는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한 가지 나쁜 소식. 지난 이십 년간 한국 사회를 어떻게든 유지시켜준 중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한국 기업의 중국 수출은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대책이 있을까? <한국경제>는 오늘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 ‘강남좌파를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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