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의궤살인사건의 초반은 시선을 맹의로 이끌고 있다. 영조는 이 맹의를 없애기 위해 살인과 방화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의는 사라지지 않고 도화서 화원이자 세자의 절친인 신흥복(서준영)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그것을 안 노론의 영수 김택(김창완)의 명에 의해 신흥복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죽은 신흥복의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처음 시신을 발견한 이가 서지담(김유정)인 것이 흥미로운 대목이지만 그것보다 당장은 누가 신흥복의 시신을 가져갔느냐가 문제다. 신흥복의 시신이 사라진 것은 김택을 당황시켰다. 본디 시신을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는 곧바로 자살로 마무리 지으려던 계획이 뒤틀어졌기 때문이고, 누군가 맹의의 존재를 알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뒤따르는 상황인 탓이다. 그런 것을 보면 맹의의 존재는 비단 영조만이 아니라 노론에게도 불리한 내용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미스터리를 안고 사라진 화원 신흥복의 시신은 엉뚱하게도 경종의 능에서 발견이 됐다. 그것도 영조와 세자의 목전에서 말이다. 우물에서 두레박에 달려 올려진 신흥복의 시신에 영조는 당장이라도 모든 신하의 목을 베어버릴 듯 대노했다. 겉으로는 황형의 묘를 능욕한 행위라고 했지만, 진짜 영조를 당황시킨 것은 영조 자신을 끝없이 괴롭혀온 경종독살설에 트라우마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런 영조의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모를 리 없는 노론, 소론 대신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신흥복의 시신이 본래 살해 장소인 수포교에서 사라졌다가 경종의 묘인 의릉에서 발견된 것은 영조와 노론 모두를 충격과 분노에 떨게 했다. 영조는 대노하여 신하들에게 범인을 찾아 죽이라고 명을 하지만, 일단 신흥복을 죽인 범인은 노론이기에 이 사건은 결국 자살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 그렇게 사건을 은폐하는 것에 영조가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당시의 복잡한 정치상황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진짜 문제는 누가 신흥복의 시신을 수포교에서 의릉으로 옮겨 영조를, 아니 조선왕조를 심각하게 모욕했냐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외면적인 문제일 뿐이고, 영조와 노론을 당황시키는 진정한 이유는 그 범인은 맹의의 존재를 알고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있다. 도대체 누가 왜 신흥복의 시신을 옮겼을까? 일단 드라마의 인물 소개를 아무리 훑어봐도 제3의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미 등장했던 인물들 중 시신을 유기한 범인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본다면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은 영조 본인이었다. 이 사건이 영조에게 가장 충격적이고 불리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종의 묘에 가서 영조는 굳이 우물물을 떠오게 지시했다. 굳이 그러지 않았다면 적어도 영조와 세자가 우물의 시신이 두레박에 따라 올라오는 끔찍한 장면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영조의 지시대로 우물물을 뜨려다가 엄청난 사건을 모두가 목격하게 된 것이다.

영조 본인이 가장 큰 충격을 받고, 또한 가장 분노할 수밖에 없다는 조건이 영조를 의심케 한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신흥복의 사체가 발견되기 8시간 전 영조와 김택의 만남이었다. 이미 신흥복을 죽이고 맹의를 손에 쥔 김택은 거만한 태도로 영조를 마주했었다. 맹의를 없애고자 했지만 결국 노론의 손에 들어갔다면 영조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맹의를 노론이 당장은 쥐고 흔들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영조가 노론의 사건은폐에 손을 들어준 것도 이해가 된다. 탕평책의 대가 영조의 능란하고 한편으로는 치밀한 정치수완이 발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조와 노론도 미처 모르고 있는 사실은 화원 신흥복이 죽기 전에 맹의의 내용을 절묘하게 숨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향후 일파만파의 사건으로 번져갈 것이고, 김유정이 세자와의 인연을 만들며 드라마를 끌어가게 될 것이다. 역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전개이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석규의 명연기 감상은 그런 부족감을 메워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긴 효과를 보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보다 좀 더 촘촘한 대본의 위력이 발휘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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