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일부터 시행되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의 핵심조항으로 꼽혔던 ‘보조금 분리공시제’ 시행이 무산됐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의 요구에 따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존 안을 뒤집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국무총리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24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제정한 단통법 고시안을 심의하고 ‘보조금 분리공시제’를 이 안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보조금 분리공시제’란, 통칭 보조금으로 불리던 지원금에 대해 통신사업자(SK텔레콤·KT·LG유플러스 및 알뜰폰 업체)가 직접 부담하는 금액과 단말기 제조업자(삼성전자·LG전자)가 지급한 장려금을 분리해 소비자들에게 공시하는 것을 말한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제외된 ‘보조금 분리공시제’란?

‘보조금 분리공시제’는 통신요금 과다의 원인이 통신사에 있는지 아니면 제조사에 있는지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특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조금을 구성하는 내용(통신사와 제조업체의 지원금)을 정확하게 파악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국민들이 이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 (사진=연합뉴스)
통신3사 역시 일찌감치 보조금 분리공시제 도입을 찬성했다. 통신사들의 경우, 높은 가계통신비의 주범으로 지목돼왔던 점에서 이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분리공시제 시행으로 가계통신비의 책임을 제조업체들과 나눌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 같은 이유로 삼성 등 휴대폰 제조사들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를 들어 보조금 분리공시제를 통한 장려금 공개에 반대해왔다.

방통위는 이 같은 제조업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8일 ‘보조금 분리공시제’를 도입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해당 제도를 도입했을 때 소비자보호라는 이점이 더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대표적 휴대폰 단말기 제조업체 LG전자 측이 분리공시제 도입에 찬성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분리공시제의 경우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역시 손쉽게 통과할 것이라는 예측이 컸다. (▷관련기사 : 통신사·제조사 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 해야")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을 정리하면 ‘보조금 분리공시제’ 도입에 반대하는 쪽은 삼성전자뿐이었던 셈이다.

삼성전자만 반대하던 ‘분리공시제’, 어떻게 뒤집어졌나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부처이견 조율’이라는 이유로 단통법 고시와 관련한 규제개혁위원회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분리공시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 같은 논란이 커지자 방통위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기재부는 이 협의과정에서 관계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참여했다”며 “기존의 분리공시안을 뒤집으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조금 분리공시제’ 도입과 관련해 업계의 경우 당초에는 “통신업계와 소비자단체, 제조업체의 반쪽이라 할 수 있는 LG전자가 도입에 반대하지 않는데, 뒤집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었다. 방통위에서 여야 상임위원들 간 합의를 마쳤고 방통위 내 자체 규제심사까지 거쳤다는 점에서도 규제개혁위 등이 제동을 걸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아무리 기재부라고 하더라도 타 부처의 결정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특별한 사유 없이는 상황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특히, 방통위 수장인 최성준 위원장은 법관출신으로 누구보다 꼼꼼하게 법률위반에 대해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아무리 삼성전자라 하더라도 이번에는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 삼성로고와 최경환 경제부총리(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보조금 분리공시제’ 제외라는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삼성이 반대하고 최경환이 받아들이면 안되는 게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방통위는 오늘(24일) 오후 5시 30분 전체회의를 열어 규제개혁위원회가 심사를 마친 단통법 고시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보조금 분리공시제, ‘반쪽짜리’ 시행…누구를 위한 것인가

규제개혁위원회 이와 같은 결정은 <단통법>의 입법 목적을 오도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용자보호가 아닌, 기업의 이득이라는 관점에서 분리공시제 시행을 제외한 것은 입법취지를 위반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방통위 야당 추천 고삼석 상임위원은 <미디어스>와의 전화연결에서 “보조금 분리공시제는 10월 1일 시행예정인 단통법에 실효성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고 해서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라며 “이것을 규제위가 기업에 대한 규제로 생각해 기재부·산재부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고시안에서 제외시킨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또한 “단통법 입법 취지가 충분한 정보제공으로 이용자 권익 보호가 목적이다. 그런데 기재위는 이용자 보호보다는 기업의 관점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단통법> 제1조(목적)는 “이 법은 이동통신단말장치의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 질서를 확립해 이동통신 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이라고 규정돼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 또한 <미디어스>와의 전화연결에서 “최경환 장관은 전체 국민들의 통신비 절감보다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 보호에 앞장섰다”면서 “이 법의 핵심은 분리공시이다. 방통위 등 이와 관계된 모든 부처가 분리공시 시행에 대해 동의한 상황에서 최경환 장관이 이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막아섰다”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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