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석사논문을 마치고 첫 해외여행으로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다. 파리 시민들이 보여준 여유 있는 생활이 매우 인상 깊었다. 그런데 프랑스에 대해 실망하는 한국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 이유는 ‘관광객에게 불친절하다’, ‘무단횡단을 한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너무 핀다’, ‘거리가 지저분하다’ 등이었다. 이런 모습에 실망한 이들은 프랑스가 ‘선진국’임을 의심했다.

그런 도덕적인 기준들이 ‘선진국’임을 판단하는 핵심적인 기준일까? 그게 기준이라면 관광객에게 굉장히 친절하고 공중도덕도 잘 지키는 한국이야말로 ‘선진국’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삶은 프랑스만큼 행복할 것이고, 프랑스를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의 삶은 팍팍하다. 쉴 새 없이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일삼는다. 파리 시민들처럼 카페에서 점심을 즐기기는커녕, 퇴근시간에 퇴근을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행복하지 않다. 이 차이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파리 시민들이 우리와 다른 ‘사회’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유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노동조건과 사회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집단적인 노력을 펼쳐왔다. 개개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곧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임을 인식하고 행동한 것이다. 조심스럽게 써야 할 말이지만, 프랑스가 괜히 ‘선진국’이 아니란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무수히 듣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알지 못한다. 이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정부와 그 지지자들은 이 사건을 몇몇 개인의 잘못으로 ‘갑자기’ 발생한 우연적인 일로 축소하려고 한다. 또 국가가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안전 문제를 오히려 기업에게 맡겨 ‘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심지어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을 ‘이기주의’로 매도한다. 그들의 시선은 단편적인 모습만 갖고 프랑스를 싫어하는 한국 관광객들처럼 ‘개인’에게만 맞춰져 있다.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박상은, 2014, 사회운동)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사회’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성찰하게 해준다. 저자의 핵심적인 문제인식은 세월호가 단순히 개인의 우연적인 실수로 ‘갑자기’ 침몰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서 ‘천천히’ 침몰했다는 것이다(1장). 만약 정부가 여객선의 연령을 20년으로 계속 규제했다면? 만약 청해진 해운이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하지 않았더라면? 화물을 과적하지 않고 제대로 결박했다면? 안전을 관리할 인력이 충분하고 안전교육을 제대로 했다면? 출항 전 인력부족과 과적에 대한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였다면? 이를 점검하는 운항관리업무가 청해진 해운과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한국해운조합에 맡기지 않았다면?

저자는 이런 다양한 요인들이 하나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수렴됨을 밝힌다. 그것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정부와 기업에 의해서 강화된 ‘수익 극대화’ 원리다. 기업의 소유주와 경영자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안전에 꼭 필요한 규제 철폐를 요구하고, 안전비용을 삭감하고, 과적과 과승을 일삼고, 노동환경을 열악하게 만들어 사고위험을 높였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은 여기에 호응하여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안전을 등한시하고 기업의 수익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는 사이 사고 위험은 나날이 높아만 갔고 결국 발생한 참사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인 비용이 발생했다.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된 것이다.

2장과 3장에서는 각각 국내사례와 해외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저자의 분석을 경험적으로 보강하고 참사의 교훈을 이끌어낸다. 대형참사가 벌어진 시간과 장소는 달라도 그 핵심적인 원인들은 모두 기업의 ‘수익 극대화’였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는 부실공사를 조장한 최저가 낙찰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는 사고 위험을 높인 인력감축과 1인 승무제가,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비용을 아끼기 위한 무리한 출항이 사건을 야기한 구조적인 원인들이었다. 1911년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화재, 1968년 파밍튼 탄광 폭발, 1989년 액슨 발데즈 원유유출 사고(이상 미국), 1984년 보팔 가스누출 사고(인도), 1987년 프리 엔터프라이즈 침몰(영국), 2005년 후추치야마선 탈선 사고(일본), 2013년 라나플라자 붕괴(방글라데시)와 같은 해외사례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 탓으로만 축소하려고 했다. 참사를 막기 위한 충분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실수를 유발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해외사례에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것은 시민들의 대응과 그 성과였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의 시민들은 참사를 커다란 ‘사회적 손실’로 인식하고, 철저한 원인조사,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제반 사회적 조치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유족들, 현장의 노동조합, 사회단체들은 그 원인이 개인보다는 ‘안전을 무시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의 일반화된 경제적·정치적 전략’에 있음을 깨닫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업과 정부에 대항하여 끈질긴 싸움을 벌였다. 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민들의 노력은 안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기업의 책임성을 높이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강력한 사회운동이 제도를 강제한 것이다.

저자는 안전한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섯 가지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꼭 필요한 규제까지도 완화하는 민영화를 막아야 한다. 둘째, 실질적 단속과 표준운임제를 통해 화물과적을 막아야 한다. 셋째,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신장해야 한다. 넷째, 안전을 지킬 충분한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다섯째, 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여섯째, 사고를 낸 기업을 처벌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이지웅 고려대 사회학과 석사. (사진=본인제공)

이 책은 기업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정부와 보수언론이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쟁점들을 소수의 기업과 개인의 일탈, 보상금 인상의 문제, 배후세력에 의한 정권 흔들기, 사법체계에 대한 위협 등으로 축소·은폐하려는 이 때, 사건의 본질을 명확하게 해준다. 우리는 저들의 비열한 정치적 전략에 맞서 사고의 재발을 최소화하는 제대로 된 정치적 행동을 벌여야 한다. 그래야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선진국’은 바로 그런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다음 피해자는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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