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헌은 <완전보험주식회사>에서 1인 3역을 소화한다. 극 중 차민준은 사내연애 금지령이 떨어졌음에도 전지현(김현진, 홍지민 분)과 몰래 연애를 하는 연하남이다. 항상 활발한 적극남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그다지 실속이 없는 남자다.

차민준만 연기하는 건 아니다. 오정석은 세울대 연구원이다. 오정석은 극 중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박사에게 사기를 당한다. 한데 오정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인공에게 사기를 쳐서 이혼보험을 만드는 데 있어 걸림돌 역할을 한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사는 남자 역할도 맡는다.

1인 3역의 멀티 연기를 맡는 셈.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국정원 요원이나 테러리스트처럼 강렬한 연기를 펼쳤던 정재헌이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완전보험주식회사>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 TV나 영화에서는 선이 굵은 연기가 많았지 웃기는 역할은 처음이다.

▲ 배우 정재헌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기분 좋은 기운을 불어넣고 재미있게 만들어 드리고자 하는 욕심을 갖고 있던 차에 코믹한 연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애로점이 있다. 웃기는 연기는 순발력이 뛰어나야 한다.

임기홍 형이나 정상훈 형, 백주희 누나를 보면 농담 하나로 재미있게 만드는 게 아니다. 배우가 농담을 할 수 있기까지 분위기를 쌓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코미디를 위한 계산이 철저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즐거우면서도 어려운 작업이 남을 웃기는 역할이다.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배운 것 중 하나는 배우가 하는 액션보다 리액션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상대 배우와의 연기 호흡에서 제가 어떻게 연기적으로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완전보험주식회사>는 원톱으로 하는 뮤지컬이 아니다. 6명의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톱니바퀴처럼 주고받아야 한다. 평소 상대 배우의 리액션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하는 연기 호흡이 지금 공연하는 데 있어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 멀티 역할도 처음 연기한다.

“멀티 역할이 제일로 어렵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웃음) 드레스 리허설 때 처음으로 의상을 바꿔 입고 연기할 수 있었다. 연습실에서는 몰랐다. 장면 연기를 하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급하게 다른 연기를 해야만 한다. 이 과정을 매번 반복하면서 옷을 갈아입는 것인지 연기를 하는 것인지 처음에는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셋이다. 한데 세 캐릭터를 번갈아 연기하는 도중에 경계가 느슨해지는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연기적으로 캐릭터를 나누고 재미있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 하는 가운데서, 정말로 세 명의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보셨으면 하는 게 제 연기 욕심이다.”

- 정재헌 씨가 연기하는 차민준은 전지현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필 꽂히는가.

“생물학적 나이를 넘어서서 차민준의 첫사랑이다.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차민준이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

- 무대 연기는 처음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연기적인 에너지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 하지만 무대는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연기가 끊어지지 않고 한 번에 이어갈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제 연기가 객석에 전달될 뿐만 아니라 객석의 호흡이 배우인 저에게도 와 닿는 걸 느낄 수 있다.”

▲ 뮤지컬 ‘완전보험주식회사’
-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연기가 즐거워서 무작정 연기를 시작했다. 어느 때에는 제가 접하지 않은 경험을 연기로 이끌어야 한다. 100% 감정을 이끌어낼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 극 중 차민준처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차민준이 된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그동안 맡았던 연기 가운데 인상적인 역할이 있었다면?

“영화 <신세계>에서 황정민 선배님의 운전사 역을 한 적이 있다. 조폭이라 몸집도 불리고 인상도 팍팍 쓰려고 생각했다. 전형적인 조폭을 생각하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촬영 첫날 정민 선배님이 생각하는 조폭은 이런 게 아니라고 가르쳐주셨다.

‘어떤 사람도 평생 인상 쓰고 사는 사람 없고 평생 웃는 사람도 없다. 조폭에게도 희로애락이 있다. 한데 너는 조폭을 연기해서 인상 쓰는 조폭만 연기하려고만 한다. 직업만 조폭이지 너는 그 안에서 사람이 보여야 한다. 조폭이 허구한 날 무게 잡는 건 아니다’라고 가르쳐주신 조언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극 중에서 정민 형님이 크게 다쳤을 때에는 실제 형이 다친 것처럼 슬퍼할 수 있었다.”

- 선 굵은 마스크 때문에 본의 아니게 차갑게 보이는 역할을 많이 연기했다.

“부모님이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세계에서는 성공하려면 악역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왜 이렇게 센 캐릭터만 연기해야 하지? 하는 생각보다는 연기할 수 있다는 감사함이 더 컸다. 어느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지금부터 해야 할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이전과는 다른 정재헌만의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 기존에 보여드린 차갑고 선 굵은 남자의 연기뿐만이 아니라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 형처럼 내면적인 성숙함에 대해 보여드리고 싶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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