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계의 핫이슈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방송사의 위탁을 받아 광고주에게 광고를 판매해주고 판매대행 수수료를 받는 회사) 민영화’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 미디어렙 역할을 도맡아온 ‘KOBACO(한국방송광고공사, 이하 ‘코바코’)’의 업무를 민간 미디어렙을 신설해 넘기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미디어렙 민영화’ 논란은 지난 9월4일 방통위원회(위원장 최시중)의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본격적으로 달아올랐다. 방통위가 보고에서 “2009년 말까지 방송광고판매 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며 시한까지 못박았기 때문이다. 이어, 지난 22일 한나라당과 정부가 ‘3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코바코 해체와 미디어렙 민영화를 넣으려 하자 언론계의 반발이 터져나왔다.

▲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열린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 해체와 미디어렙 도입반대 언론인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미디어렙 반대’, ‘언론공공성 사수’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여의도통신
이에 CBS 등 4개 종교방송사 사장단이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어 한 목소리로 “민영 미디어렙 도입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고 하는가 하면,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은 한나라당사 앞에 몰려가 ‘코바코 해체반대와 미디어렙 도입반대 결의대회’를 열었다.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 27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정병국 한나라당 미디어발전특위 위원장 등 정부와 한나라당의 미디어렙 정책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해 종교방송 사장단과 만나 “정해진 시기와 방침이 전혀 없다”며 무마에 나섰다.

그러나 이날 자리도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이 그동안 조금씩 말을 바꿔가면서도 일관되게 미디어렙 민영화 수순을 밟아온 것의 연장선에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코바코 해체와 미디어렙 민영화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만, 정작 조직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코바코 내부 구성원들은 이렇다할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함현호 전국언론노동조합 코바코 지부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 함현호 언론노조 KOBACO 지부장 ⓒ미디어스
숫기 없는 성격의 함현호 지부장은 지난 22일 한나라당사 앞 결의대회 얘기를 꺼내자 “요즘 코바코가 크게 부각되는 바람에 집회에서 자꾸 발언 요청을 받게 된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무대에 나가 너무 떨었던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는 그는, 코바코 노조 창립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위원장을 맡아 ‘가장 고생하는 위원장’으로 불리고 있다.

- 그날 집회에서 “노조 창립 이래 첫 장외투쟁”이라는 발언도 나오더라.
= 그건 아니고, 내가 입사한 95년 쯤에 세종로에서 ‘코바코 해체’ 반대 집회를 크게 한번 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3년만에 처음’이다. 본사 조합원 26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참석했다. 그만큼 지금 내부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가 이렇게 대책없이 시한을 박아서 강하게 몰아부친 적은 없었다.

- 민영 미디어렙 도입이나 코바코 해체 문제가 나올 때마다 언론단체 등은 강하게 반발해왔지만, 정작 당사자인 코바코 내부는 잠잠하다는 얘기도 들려왔는데.
= 과거 정권에서나 대선공약에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 얘기가 종종 나오긴 했다. 그렇지만 민영화론자들도 코바코의 순기능을 대체할 방도를 내놓지 못했고, 결국 쉽게 추진할 사안이 아니라는 컨센서스가 이뤄져 왔다. 논의가 수면에 부상했다가 금세 가라앉는 과정이 되풀이돼왔다. 그러니 내부에서는 민영 미디어렙 논의가 나오면 ‘또 이 얘기 나왔구나’ 하면서 ‘만성’이 된 측면도 있었다.

▲ 함현호 언론노조 KOBACO 지부장 ⓒ미디어스
- 현재가 위기상황이라고 하나, 역시 맹렬한 외부의 반발에 비해 내부는 상대적으로 잠잠한 것 같다.
= 아무래도 공사라는 틀이 투쟁에서 한계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최근 방송과 관련한 정부의 행보를 보면서 내부의 동요가 상당한 수준이다. 이제는 이 정권이 드러내놓고 우리를 해체하겠다고 나섰으니, 우리도 당연히 안 싸울 수가 없다. 코바코노조는 언론노조와의 강한 연대의 틀 안에서 가능한 모든 투쟁을 해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이다.

- 코바코도 그렇고, 언론노조나 언론단체들은 코바코 해체와 민영 미디어렙 도입에 대해 ‘언론장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 논의가 진행돼온 과정을 보면 정상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코바코의 업무는 크게 △광고 판매영업(미디어렙) △광고 진흥사업이다. 애초 정부의 3차 공기업 선진화방안에는 논란이 많은 민영 미디어렙 도입은 추후과제로 넘기고, 광고 진흥사업 부문만 대폭 축소하는 내용을 담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무부처도 아닌 방통위가 대통령 보고에서 ‘2009년까지 도입한다’고 밝힌 것이다. 주무부처인 문화부와 조율된 얘기도 아닌데, 이렇게 방통위를 필두로 여당과 정부가 무리수를 두는 것은 최근 정부가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방송구조 개편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결국 공영방송 장악과 해체 의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 공영방송 해체가 코바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 일단 미디어렙이 민영화되면 광고 의존도가 높으면서도 매체력이 취약한 지역의 지상파 방송사들과 종교방송사들부터 급격한 매출 감소 사태를 맞아, 결국 존폐위기로까지 내몰리게 된다. 그러면 지역에서는 케이블 등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상업방송만 살아남게 된다. 한마디로 지역에서 공영방송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동안의 광고 연계 판매 부분은 당연히 중앙방송 3사에게 배분될 테고.
더욱이 민영 미디어렙은 거의 자사영업이나 마찬가지고, 광고가 주 수입원인 상황에서 중앙방송 3사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수단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그러면 공영방송 KBS·MBC나 상업방송 SBS를 가릴 것 없이, 시청률 잘 나오고 광고 잘 붙는 오락이나 드라마 프로그램 생산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광고 잘 안 붙는 <PD수첩>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현 정권이 지향하는 1공영 다(多)민영 체제 아니겠나.

▲ 지난 22일 결의대회에서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의 면담 요청이 거부되자, 집회 참가자들이 결의문을 말아 한나라당사 쪽을 향해 던지고 있다. ⓒ미디어스 정영은
- 코바코 문제가 KBS 등 공영방송에 대한 사안 만큼이나 중요하지만 용어도 낯설고 내용도 어려워서 사회적 관심을 덜 받고 있는 것 같다.
= 지난 23일 KBS 앞 촛불집회에 갔었는데, 사회자분이 발언을 시키셨다. 사실 시민들 대다수는 미디어렙이 뭔지 잘 모르신다. 그래서 한참이나 길게 설명해야 했다. 앞에 나가면 잘 떠는 스타일인데.(웃음)
코바코는 81년 설립 당시 방송사의 안정적인 재원 조달, 그리고 방송광고 연관 산업의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주요 기능은 △광고요금 단가의 조정 기능 △방송에 대한 자본이나 광고주들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막기 위한 영업과 편성제작권 분리 보장 기능 △EBS, 종교방송, 지역방송 등에 대한 공익적 연계판매와 이를 통한 방송의 다양성·공공성 유지다. 이러한 핵심적인 순기능은 미디어렙이 민영화되면 대체할 방도가 없다. 코바코 해체는 연계판매 중단과 동일시되는 거니까 최대 피해자들은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등이 된다는 거다.

- 앞으로의 대응 계획을 밝혀달라.
=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다음주쯤 발표될 것 같다.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등과 함께 싸울 계획이다. 다음주에 모임을 갖고 구체적인 투쟁 시기와 방안을 확정할 것이다.

- 언론에 한 마디 한다면.
= 코바코 문제가 코바코 내부 조직원들이나 지역방송, 종교방송 종사자들의 생존권과도 직결되어 있지만, 크게 보면 정권의 방송구조 개편 의도가 저변에 깔려 있는 움직임이다. 코바코가 해체되고 미디어렙이 민영화되면, 방송환경이 상업방송 중심으로 너무도 급격히 변하게 된다. 동지와 친구들의 문제이자, 전국민의 관심이 필요한 사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인터뷰 말미에 노조 사무실로 조합원들이 들어오면서 “지부장이 너무 암울한 표정으로 인터뷰하는 것 같다”며 한마디씩 건넨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상당히 피곤하고 힘들다는 함현호 지부장. 기자가 ‘코바코 역대 가장 피곤한 위원장’으로 기사제목을 달겠다니까 그는 “요즘 언론관련 노조위원장 중에 안 피곤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친다. 함 지부장을 가장 힘 나게 하는 것은 바로 ‘조합원들의 칭찬과 격려’라고 한다. 너무나 모범답안 같지만, 코바코 노조 조합원들은 꼭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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