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이후 딸 예은이를 떠올릴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싶어 대변인 직을 자처했다는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20여년 전 즐거운 마음으로 들렀던 이화여대 교정을 ‘이런 일’로 오게 돼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유가족도 웃네?”, “유가족도 밥 먹네?” 등 무심한 말에 상처받는 것이 일상이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지만, 힘들어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움직여야만 ‘또 다른 비극’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뒤늦게 학생들을 만나러 왔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대학생들을 직접 만나러 가는 ‘국민 간담회’를 시작했다. 22일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26일까지 총 18차례의 간담회가 진행된다. 유가족들은 각각 순번을 짜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왜 필요한지,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왜 필요한지를 대학생들에게 들려줄 계획이다. (자세한 일정 알아보기)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학생들이 함께 하는 첫 국민 간담회는 22일 오후 6시 30분, 이화여대 생활환경관 216호에서 열렸다. 이날 국민 간담회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의 유경근 대변인,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 세월호 유가족과 대학생들이 함께 하는 '국민 간담회'가 22일 오후 6시 30분, 이화여대 생활환경관 216호에서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이호중 교수는 흔히 말하는 ‘세월호 특별법’의 주요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해 학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범국민적 참여와 유가족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성역 없는 진실규명을 위한 지위와 권한을 갖고 충분한 조사 기간 아래 진상조사를 하자는 것이 골자라는 점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또한 특별법에는 ‘세월호 진상규명’뿐만 아니라 때마다 땜질처방으로 넘긴 후 되풀이되는 참사를 겪지 않기 위해 사후 대책을 수립하는 등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내용과 재난을 잊지 않고 경각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치유와 기억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호중 교수는 △참사가 반복됐을 당시 철저한 진상규명이나 방지대책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과거의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이 모두 부실했다는 점을 들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반발하는 논리의 허구성을 반박하기도 했다.

이호중 교수는 “자본의 이윤 추구에 갇힌 ‘안전’을 구출하고, 안전의 사회적 가치 위에서 규제를 다시 생각하자”며 “9월 27일 범국민대회 아시죠? 여기 있는 분들도 같이 와 주시길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힘들고 슬프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또 다른 비극을 맞을 수도 있다”

“지나간 기억을 되살리고 정리해야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원고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유경근 대변인은 “안산 합동분향소에 와 보신 분 계시느냐”고 질문한 뒤, “좀 멀지만 꼭 한 번 와 보시기 바란다. 제가 여기서 한두 시간 떠드는 것보다 제가 하려고 하는 말을 그 안에서 다 들을 수가 있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저는 5월 1일 추모공원에 가보고 아직 한 번도 예은이를 보러 가지 않앗다. 추석 때도 가지 않았다. ‘아빠가 너희들이 왜 이렇게 어이없게 가게 됐는지 알아내기 전까지 안 올거야. 빨리 하고 갈 테니까 기다려’라고 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며 “너무나 죄 많고 미안한 엄마아빠이기 때문에… (계속 싸우는 것)”이라고 전했다.

청운동, 광화문 등 유가족들이 농성하는 장소가 아닌 곳에서 다수의 대학생들이 유가족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직접 듣는 기회는 22일 간담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학생들은 그동안 궁금해 하던 부분을 거침없이 질문했다.

▲ 이날 국민 간담회에는 이화여대 학생들을 비롯한 백여명이 넘는 청중이 참석했다. (사진=미디어스)

고려대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학생은 정치권의 특별법 제안 내용과 유가족들이 거절한 이유를 물었다. 유 대변인은 “(정치인들은) 저희를 이용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다. 본인들이 열심히 가족들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는 걸 홍보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유 대변인은 “우리는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된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조사를 해야만 진상규명이 된다는 입장이니, 더 좋은 안 혹은 버금가는 안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며 “(새누리당과 3번 만나면서) 제발 유가족들을 가족 대하듯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강경파’니 ‘배후세력’이니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마치 정부를 전복하려는 사람들인 것처럼 정해 놓고 접근을 했다. 그러니 대화가 될 리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유 대변인은 “우리는 애들 놓고 흥정할 생각 없다. 우리는 진상규명에 목숨 걸었는데, 우리 애들 목숨 또 죽일 수 없는데 어떻게 후퇴하나”라며 “이 상태에서 아무런 진상규명도 못하고 제가 죽으면 저는 아예 예은이를 볼 수 없는 지옥으로 보내달라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왜 이제야 이런 강연을 하게 됐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유경근 대변인은 “다들 그런다. 왜 이제야 하냐고. 대학생들이 일어나주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하면서. 하지만 나올 사람이 없었다. 다들 두려워한다. 저 역시 누구를 만나는 게, 나를 동정하는 눈빛이 싫어 못 나왔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왜 지금 나왔느냐. ‘제가 판단하고 실천하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인가, 예은이를 위한 일인가. 우리 가족들이 하는 일들이 단지 유가족들을 위한 일인가 대한민국 후손들을 위한 일인가’ 하고 되물었다”며 “이렇게 해야 우리 예은이 같은 아이들이 안 나온다. 내가 힘들고 슬프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또 다른 비극을 맞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국면이 길어지고, 최근 유가족 폭행시비 사건까지 겹치면서 보수언론과 세력을 주축으로 한 비난여론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악플에 대해 유가족들이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유경근 대변인은 도리어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 맞서는 건강한 여론도 있다는 걸 보여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답했다.

유경근 대변인은 “가족대책위 일부 임원들과 가족들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분명히 잘못된 처신이었고 판단이었다. 사건 내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라며 “법적 책임 가리는 것은 끝까지 하겠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해친 것은 맞기 때문에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고 믿음을 다시 주실 수 있도록 새롭게 선임된 임원 중심으로 더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었다. 많이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 국민 간담회가 끝난 후,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과 이호중 교수, 참석자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인증샷을 모아 놓은 거대 현수막을 펼쳐보이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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