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이하 코바코) 후임사장에 곽성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재공모까지 거쳤지만, '낙하산'을 택하면서 언론계 안팎은 물론 대중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곽성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005년 6월 대구 지역 경제인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정치자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맥주병을 던지는 추태를 벌인 일이 가장 먼저 회자된다. 곽 전 의원은 해당 사건으로 당시 한나라당 홍보위원장과 대구시당 수석부위원장 직에서 물러나야했다. 그런데 지난 20일 토요일 곽 전 의원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곽 전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권 유지를 위해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인민혁명’으로 조작한 민청학련 사건에서 프락치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 이철 대표를 21일 오후6시30분 옥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미디어스
민청학련 사건으로 당시 180여명이 구속돼 고난을 겪었던 사건에서, 곽 전 의원은 학생들을 ‘빨갱이’로 팔아넘겼고 이후 중앙정보부의 배려로 MBC에 특채 기자로 입사해, 탄탄대로 승승장구의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이후 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이 보장되는 대구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곽전 의원이 코바코 사장직에 오를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계와 별로 상관 없는 민청학련계승사업회가 강력 반발한 이유다. 민청학련계승사업회는 긴급 성명을 통해 곽 전 의원에 대한 임명중단을 촉구했다.(▷관련기사 : 코바코 사장 ‘유력’ 곽성문…“유신시절 중앙정보부 프락치”)

<미디어스>는 21일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이철 대표를 옥수동에서 급히 만났다. 이 대표는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민청학련 의장으로 지목돼 군사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가, 2010년 12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장은 “30년 지나도록 잘못된 재판 바로잡지 못했다”고 대신 고개를 숙여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날 이철 대표는 곽성문 전 의원과 관련해 “‘학생회장이 되면서 유신정권 타도에 앞장서겠다’고 계획적으로 접근해왔다”며 “곽성문 씨가 만나자고 해서 나갔다가 연행되는 사례들이 많았다. 당시 주위의 ‘프락치’ 의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었는데, 군법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공산주의자’라고 거짓증언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 대표는 인터뷰 내내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듯 먼 곳을 응시하거나 자신으로 인해 동료들이 고초를 겪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철 대표는 “곽성문 씨가 MBC 기자를 하는 것을 보고는 개인적인 영면으로 봤기 때문에 그냥 뒀었다. 그런데, 이후 중앙정보부에 의해 특채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폭로했다. 이어, “국회의원 또한 당선 된 이후에 알게 돼 공개적으로 거론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들어 흠이 있는 인물을 발탁하는 게 다반사이고 곽 씨를 요직에 앉힌다는 것은 정권의 성격이 ‘제2의 유신’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문제를 설명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철 대표는 곽성문 전 의원에게도 “쥐구멍이라도 들어가야 할 심정이어야 그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쓴 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아래는 이철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곽성문, 유신정권 타도에 앞장서겠다고 나에게 접근했다”

- 조만간 곽성문 씨가 코바코 사장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움직임이 있다. 곽 씨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제보할 것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뵙게 됐다.

“저는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반대 투쟁을 하다가 구속돼 유치장에 있다가 1969년 곧바로 수갑을 찬 채로 군대로 강제징집됐었다. 72년 복학해 새로운 사람들과 같이 있다 보니 선배그룹과 후배 그룹을 연결하는 접점에 서게 됐다. 그런 가운데, 같은 해 10월 17일 박정희가 서울로 탱크를 몰고 들어와 유신쿠데타를 일으키는 사건이 벌어졌다. 국회는 해산됐고 국민의 기본권은 철저히 제한됐다. 보도에 대한 사전검열이 있었고, 3인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는 포고령이 발동됐었다. 이 같은 유신의 유일한 목적은 영구집권에 있었다. 박정희는 유신으로 인해 안심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 학생들은 등사기도 구할 수 없어 각자 집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손으로 직접 작성하는 일들을 했었다. 혹시, 걸리면 공부하는 모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어 공부나 책을 읽는 비밀모임도 가졌다.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합법적인 공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학생회’였다. 그리고 도종수라는 후보를 물색해 어렵사리 학생회장을 만들었는데, 유신 이후 최초의 학내시위로 기록된 73년 10.2데모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그렇게 안하겠다는 사람을 학생회장시켜 구속시킨 꼴이 됐으니 굉장히 미안했다. 문제는 그 다음 학생회장을 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학생회장=구속’이라고 생각이 되니 누구도 나서서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복학생 선배들은 ‘빨리 학생회장감을 물색하라’고 독촉을 해 ‘당신이 하라’고 되받기도 했었다. 그만큼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그때 한 놈이 나타났는데, 그게 바로 곽성문이었다”

- 곽성문은 어떤 사람이었나?

“요약하면 곽성문을 나를 찾아와 ‘형님! 저 학생회장 시켜주십쇼. 제가 학생회장이 되면 이 유신정권 타도에 앞장서겠습니다. 형무소에도 제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저는 학생회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던 상황이라 곽성문이를 보는 순간 천우신조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눈이 삐었던 것이지. 하지만 당시에는 첫눈에 반하듯 했다. 그래서 서로 ‘잘해보자’라고 약속을 했다. 그만큼 그 친구에게 확신이 있었다. 당시 부문회(복학생들의 문학 관련 모임)에서는 ‘곽성문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일 수 있으니 의심해보라’라고 했지만, 난 기분이 나빴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앙정보부와 협의하고 의도적으로 나에게 접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곽성문이를 학생회장으로 세운 것은 터무니없는 나의 실수였다”

▲ 이철 대표ⓒ미디어스
- 곽성문 씨는 어떤 식으로 프락치 활동을 했나? 그런 행위를 모를 수 있나?

“곽성문이가 학생회장이 된 이후 중앙정보부 간부를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많았다. 주의에서 역시 ‘중정에 들어가는 걸 봤다’, ‘경찰들과 밥 먹고 있다’는 등의 제보도 쏟아졌다. 그때마다 나는 ‘같이 어려운데 의심하면 오히려 동지를 잃을 수 있다’고 방어해줬다. 그렇게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임 자체가 와해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두둔했던 것이다. 곽성문이가 만나자고 해서 나갔다가 체포되는 사례들도 많았다. 당시 곽성문이가 프락치라는 의심이 컸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럴 리 없다’, ‘감청이나 미행했겠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많은 피해를 가져오게 된 패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정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보고를 했던 것 같다. 당시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들은 거의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 그렇다면 이철 대표는 곽성문 씨가 언제 프락치라는 걸 확신했나?

“곽성문이가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섰고 학생운동 했던 사람들을 향해 ‘공산주의자와 같은 말을 했다’라고 발언을 했을 때였다. 중앙정보부가 원하는 진술 그대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저 역시 체포돼 취조를 받았는데 그 때 수사관이 ‘공산화폭력혁명을 하려 했다고 곽성문이 다 이야기했다’라고 들었다. 제가 공산화폭력혁명을 자신에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당시 느꼈던 좌절감과 낙담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정말 미쳤었구나’, ‘미쳐도 웬만큼 미쳤어야지’라고 체념했다.

“곽성문, MBC에 중앙정보부에 의해 특채로 들어가”

-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성명을 보면, 곽성문 씨가 중앙정보부의 도움으로 MBC 기자로 특채됐다고 하던데….

“맞다. 처음에는 소위 기자라고 하는 게 개인적인 영면으로 봤기 때문에, 이걸 망치게 해야하나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제가 국회에 있을 때 소속된 상임위가 문교위였다. 그때 제가 곽성문의 인사기록카드 사본을 보니 ‘공채’가 아니라 ‘특채’라고 기록돼 있었다. 그래서 질의했더니 ‘중정추천으로 특채했다’고 답하더라. 그때 곽성문이에게 해명을 요구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17대 총선 때에는 그 친구가 선거에 나가는지도 몰랐다. 저 역시 나름대로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곽성문이에 대해 거론할 기회조차 사실상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유독 곽성문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박근혜 정권 들어와 흠이 있는 인물을 발탁하는 게 다반사라는 점에서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박 정권을 보면 ‘제2의 유신정권이다’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고, 곽성문이를 기관장으로 앉힌다는 것은 그 대표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적어도 국민들에게 설명은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곽성문 씨는 그 이후, 사과나 해명은 없었나?

“한번 만난 적은 있는데, 당시 다른 기자들이 많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리고 곽성문이는 반 유신 투쟁을 했던 사람들을 만나면 빙빙 주위를 돌기만 한 것 같다. 이신범 의원, 그 친구도 반유신 투쟁, 인권운동을 했던 친구이다. 근데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워싱턴에서 곽성문이라는 자가 자신을 피했다는 것을 역력하게 느꼈다고 한다. 당시에는 왜 그럴까 생각했었는데, 지난 성명을 보고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곽성문이가 반유신 투쟁을 했던 사람들을 피했던 것은 마지막 양심이 아니었나 싶다”

- 최근 들어 ‘반민주’ 인사들이 박근혜 정권에서 요직에 앉고 있다. 지난 6·10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따로 열리기도 했다. 앞서 ‘제2의 유신’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왜 그렇게 보고 있나?

“기가 막힌다. 그렇게 밖에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최고의 한도는 ‘역사는 제대로 기록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적어도 개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양해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선택지여야한다. 유럽에서 나치 부역자들에 대해 몇 천 명을 처형했다. 그런 식으로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문제에 대해 굉장히 관대하다. 그래서 이제는 역사를 바로 잡고 그들의 행적으로 하나하나 밝히자는 그 이야기이다. 그래야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권이건 초기에는 개혁을 한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건 아니건 노태우와 김영삼 정권 때에도 그랬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다못해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개혁을 하려고는 햇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는 거구로 가고 있다. 민주화라던가 국민들과의 소통은 없이 역주행하고 있다. 1차로 문을 걸어 닫고 있고, 측근들 역시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연락조차 잘 안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불행하게 끝나지 않을까 배우 걱정된다. 그건 절대 저 뿐 아니라 국민들도 바라는 게 아니다”

곽성문에게 하고 싶은 말…“양심선언할 기회 있다”

▲ 이철 대표ⓒ미디어스
- 중앙정보부가 곽성문 씨를 프락치로 세워고 사건을 조작해 사형을 선고, 이런 문제들을 생각했을 때 최근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이 떠올랐다. 반유신투쟁을 공산혁명으로 조작했던 게 아니냐. 이철 대표는 해당 사건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을 것 같은데….

“결국, 한 개인을 이용해 그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곽성문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국정원 조작사건 또한 그 찌꺼기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아마 국정원이 했던 여러 가지 부정적 일들의 몇만분, 몇십만분의 일에 불과할 것이다. 국정원 존재 자체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그 기관을 그렇게 둬선 안된다. 직원들이 자긍심과 조국을 바르게 지키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나라의 정보기관이 국정원과 같은 오명을 쓰고 있나. 없다. 이스라엘 또한 적어도 자국에서만큼은 자국민들에게는 기둥으로 느낄 것이다. 문제는 국정원이라는 것이 뿌리가 잘못됐다는 점이다. 박정희가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목적은 국가가 아닌 정권보위를 위해 만든 사설 경호부대, 공작부대였다. 그것이 씨앗이고 아직도 국정원은 정보수집권만이 아닌 수사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사건을 조작하고 고문하고 사람을 죽이고 하는 그런 기관으로 남게 된 것이다”

- 곽성문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곽성문을 코바코 사장으로 앉힌다는 것은 정권차원에서도 절대 유리하지 않다. 또, 곽성문 개인에게도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박근혜 정부는 곽성문에게 구체적으로 언론을 장악하라는 지시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알아서 기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과연, 곽성문의 잘못된 직무 수행으로 코바코가 언론자유 창달에 도움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권의 앞날에도 어떠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곽성문 개인에게도 코바코 사장으로 가고자 하면서 ‘중앙정보부의 프락치활동을 했다’는 것이 영원한 낙인으로 남을 것 아닌가. 그의 후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사정이 있다면 코바코 사장을 100번 할 수 있다고 해도 못할 것 같다. 쥐구멍이 있으면 아마 찾아 들어가야 할 마음이 생겨야 그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나. 어느 누구도 곽성문의 행위를 잘했다고 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국민 앞에 양심선언을 한다면 그의 인생에 반전드마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 자신에게도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