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지난해 7월 3부작 특집 다큐멘터리 <스마트교육이 몰려온다>를 편성해 큰 호평을 받았다. 해당 다큐는 정부의 스마트교육 정책을 토대로 태블릿PC를 학교 수업에 도입한 독일의 사례를 소개하고 우리나라 교실에서도 활용되고 있는 모습,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익적인 내용이었다. 그리고 방송 말미에는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습니다’라는 자막이 나갔다. 그 후, KBS 해당 다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협찬금으로 제작됐으며, 광고효과 또한 톡톡히 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22일 ‘KBS에 협찬한 기업과 기관(2010년부터 2013년 8월까지)’ 집계 발표를 통해 이를 폭로했다.

▲ KBS의 협찬 현황(자료=최민희 의원실)

삼성 협찬받아 삼성 홍보…버젓이 ‘수신료로 제작됐다’ 자막

‘KBS에 협찬한 기업과 기관’ 통계를 보면, KBS에 가장 많은 금액을 협찬한 곳은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총 38억 원을 넘는 협찬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뒤로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30억6000만원, 중소기업청 30억 원, 삼성 29억5000만원 순이었다. KBS는 수신료와 광고매출 외에 협찬매출이 매년 700억 원에서 900억 원 정도 차지했다. 이는 광고매출액의 1/10 수준으로 KBS 재정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KBS '스마트교육이 몰려온다' 화면 캡처
해당 자료를 보면 KBS <스마트교육이 몰려온다> 다큐는 삼성전자로부터 2억6000만원의 협찬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KBS는 이 가운데 1억7600만원을 제작비로 쓰고 8800만원을 수익으로 남겼다는 게 최 의원의 설명이다. KBS <스마트교육이 몰려온다>는 공익적 내용이었지만 삼성전자 스마트기기들의 노출빈도가 높았다.

최민희 의원은 “방송심의규정상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안 된다”며 “또, 상품의 명칭이나 로고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해서도 안되도록 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 의원은 “프로그램 내내 삼성의 스마트기기들을 광고해준 프로그램임에도 마치 시청자의 수신료로만 제작된 100% 공익적 프로그램으로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KBS, ‘수익을 남기는’ 과도한 협찬 문제는?

같은 기간 ‘KBS의 외주제작 교양·다큐 프로그램 협찬 내역’을 분석한 결과, 교양·다큐 장르의 KBS 외주제작 프로그램 중 107개의 프로그램이 제작비를 초과하는 협찬비를 받아 62억 원이 넘는 수익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10년에는 20편에서 2011년에는 28편, 2012년에는 32편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 (자료=최민희 의원실)
▲ (자료=최민희 의원실)
최민희 의원은 “제작비를 초과하는 협찬비를 받는다는 것은 KBS가 협찬비로 외주제작비를 100% 충당하고도 가만히 앉아서 수익을 남긴다는 의미와 같다”며 “즉, 공익성과 공영성을 추구해야 할 교양·다큐 프로그램을 협찬 수익을 남기는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제작비의 범위를 초과해 협찬주로부터 지급받는 협찬비는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경비가 아니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협찬’이라 정의하기 힘들 것”이라며 “그럼에도 공영방송 KBS는 협찬을 사실상 ‘광고’의 대체수단으로 삼아 돈벌이에 치중했고, 결과적으로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주는 교양프로그램들을 방송했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

앞서 지적했듯 과도한 협찬비는 협찬주 및 제품에 대한 간접광고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 KBS <힐링투어 야생의 발견>은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네파로부터 4억5000만원의 협찬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프로그램은 자연 명소와 여러 명사들이 함께 레저 활동을 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지만 협찬 받은 기능성 의류와 장비, 캠핌용품 등이 자주 노출됐다. KBS는 해당 프로그램 제작비로 2억8900만원을 사용해 수익을 남겼다.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KBS는 정부기관으로부터 협찬을 받아 정부정책을 홍보하고 그로 인해 수익을 남기는 사례도 있었다. 2011년 국가브랜드위원회로부터 6300만원의 협찬을 받아 제작된 <특별기획, 코리아 세계를 매혹시키다>는 대표적이다. 해당 방송프로그램에서는 국가브랜드위원장의 인터뷰 등이 배치되는 등 홍보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KBS는 외주제작사에 5000만원을 지급해 1300만원의 수익을 남겼다.

이 밖에도 KBS는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특집프로그램을 한국원전연료와 한국수력원자력, 한전KPS, 두산중공업,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기술로부터 협찬을 받아 제작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홍보’하는 데에 집중됐다는 게 최 의원실의 설명이다.

최민희 의원은 “질 높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제작비가 뒷받침돼야 하고 이를 위해 협찬을 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과도한 협찬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보전달 기능과 시사성이 있는 교양·다큐 프로그램에서 과도한 협찬을 받게 될 경우 프로그램이 상업적으로 변질될 수 있고, 협찬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신뢰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KBS 측은 “방송법 시행령도 협찬 수입을 KBS 재원으로 명시하고 있는 만큼 협찬을 통해 수익을 남기는 것은 법령 위반이 아니다”라면서 “수신료 이외의 수입을 늘려 부족한 제작비를 뒷받침하는 것은 오히려 수신료 부담을 줄리면서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순기능적 측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또, “KBS의 경우, 협찬을 유치할 때 적합성 등을 철저히 검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 협찬 프로그램에 대한 수신료 제작 자막 고지’에 대해서도 KBS는 “공영방송 KBS가 수신료를 주 재원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것과 소중한 수신료를 내준 시청자들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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