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소리를 듣고 면 종류를 알아맞힌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것이고, 하더라도 심드렁한 반응일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식신 정준하라면 이야기가 좀 다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왠지 정말 라면, 우동, 냉면 등 면 종류에 따라 먹는 후루룩 소리가 다를 거라는 괜한 믿음이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맞추기는 정말 어려웠다. 그래도 그 코너는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심지어 정형돈은 정답을 맞히기도 했으니 전혀 터무니없는 코너도 아니었다.

20일 방영된 라디오스타 두 번째 이야기의 갑은 정준하였다. 이른 아침 굿모닝FM의 박명수로부터 두 시의 데이트 노홍철이 있었지만 정오의 희망곡 정준하의 활약이 가장 주목받았다. 정준하는 식신답게 특별 코너도, 선곡도 모두 음식과 관련된 것으로 꾸몄다. 앞서 먹는 소리로 면 종류를 알아맞히는 코너가 애교였다면, 뒤에 준비된 점심배달 코너는 유재석, 정형돈, 하하가 배달 리포터로 기용되어 요즘 보기 드문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다. 요즘 예능은 관찰 아니면 여행으로 갈리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라졌다. 물론 감동은 여전했지만 감동의 종류가 다르다. 아이들이 주는 애틋한 감동도 좋고, 연예인들의 깜짝 놀랄만한 관조적 감동도 물론 좋지만 라디오스타 정준하가 기획한 점심배달 서비스에는 연예인도 아니고, 연예인들의 아이들도 아닌 요즘 예능이 전혀 시선을 주지 못하고 있는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의 사연, 그 이야기를 담아낸 감동이 있었다.

유능한 재원이지만 권고사직을 당해 백수가 된 젊은 여성, 슈퍼를 하느라 늘 점심을 대충 때워야 하는 중년의 아버지, 신혼부부에 전업주부라서 임신 27주의 몸으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작은 쓸쓸함 등이 무한도전 점심배달 리포터들이 찾아간 이야기들이다. 사실 어떤 사연도 새삼스럽지 않은 우리 주변의 흔한 모습들이다. 굳이 일부로 알려고 하지는 않지만 막상 대하면 자신도 모르게 짠해지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설혹 소개된 사연이 아닐지라도 1인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서울에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은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식당들은 그 흐름을 인정하지 않고 2인 이상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메뉴들을 많이 고수하고 있다. 간만에 고기를 먹고 싶다거나 혹은 얼큰한 전골이 심하게 당겨도 혼자 식당을 찾았다면 포기하고 말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이처럼 음식만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서비스가 생겨날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요즘은 예능도, 드라마도 심지어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작지만 조금은 서글픈 도시의 모습들을 외면하고 있다. 방송 트렌드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정준하가 이 모든 전반의 사실들을 염두에 둔 기획을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식신이 아니라 정준하가 따뜻한 마음을 가져서 가능했을 거라 믿고 싶다.

다음 주 유재석 시간 때에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레이디스 코드 전 멤버 리세와 은비를 추모하는 따뜻한 멘트를 보낼 것이다. 그것도 분명히 울컥하는 감동을 줄 것이 틀림없다. 그것과 함께 정준하의 점심배달 서비스는 이번 라디오스타의 백미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라디오는 티비보다 분명히 더 따뜻하고, 더 인간적인 매체이며 그것을 정준하와 유재석이 보여주었다. 또한 한 멤버가 디제이가 되어 생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은 편히 쉬지 않고 리포터로 동료를 돕는 모습 또한 당연하지만 무한도전의 끈끈한 동료애를 확인시켜주는 훈훈한 모습이었다. 늘 그래서 식상할 수도 있지만 무한도전은 칭찬을 아낄 수가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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