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툼스톤>은 로렌스 블록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현재까지 17편이 나왔고 <툼스톤>은 1992년에 출판한 10번째 책이 원작입니다. <007>이나 <잭 리처>가 그렇듯이 이 소설도 맷 스커더라는 사립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연작으로 이어졌습니다. 1986년에 제프 브리지스가 맷 스커더를 연기한 <죽음의 백색 테러단>이란 영화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의 20년이 흘러서야 속편이 제작된 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하나만 강조하고 가야겠습니다. <테이큰> 이후로 리암 니슨의 영화를 보면 늘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툼스톤>은 절대 액션영화가 아닙니다. 총격전으로 문을 열긴 하지만 그게 전부고 내내 스릴러에 충실합니다. 원작과 얼마나 같은지 모르겠으나 <툼스톤>은 세기말을 목전에 둔 뉴욕이 배경입니다. 근래에는 <응답하라 1994>에서 봤을 'Y2K'가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당연히 영화가 품고 있는 정서는 이것과 매우 유관합니다. ​아니, 원작이 나오고 한참이 흘러서 굳이 이 에피소드를 영화로 제작한 이유 자체가 세기말의 불안과 혼돈을 2014년에 재현하고 싶었던 욕심이었을 것 같습니다. 종말이니 구원이니 하면서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겠다는 사이비마저 판을 쳤던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요?

에로틱하지만 실은 호러인 오프닝 타이틀을 보면 <툼스톤>은 기분 좋은 예감을 갖게 합니다. 얼마 전에 소개했듯이 요즘은 오프닝 타이틀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영화가 많은 데 반해 <툼스톤>은 미적으로 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이 예감이 그리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확실히 도입부는 음산한 기운을 깔고 가면서 스릴러의 구조를 따르고 있으나, 곧 한 명의 소년이 이야기에 참가하면서 긴장이 완화되고 맙니다. 결말까지 갈 것도 없이 이 소년의 의미와 역할은 영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맷을 비롯해서 연쇄살인범과 피해자 가족 등의 관련 인물들은 모두 죄악을 갖고 있는 자들입니다.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맷에게 의뢰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반면 소년은 한 마리의 길 잃은 양과 같습니다.

<말리와 나, 피닉스,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의 각본가였으며 <툼스톤>의 연출을 맡은 스콧 프랭크는 스릴러 장르의 공식을 조금 등한시하면서라도 세기말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걸맞은 영화로 살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범인의 윤곽을 이른 시간 내에 밝히는 바람에 긴장을 더 느슨하게 만들면서까지도 맷과 소년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걸 선택했습니다. 마지막에 맷이 소년에게 부탁하여 갖고 오는 것과 중독에서 벗어나는 12단계를 내레이션으로 깔고 완성하는 시퀀스까지, 스콧 프랭크는 <툼스톤>을 맷 스커더의 개과천선 내지는 트라우마 탈출기로 완성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세기말이라는 시점과 한데 어우러지기에는 좋은 선택이었으나 아무래도 스릴러로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작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라거나 과정은 서둘러서 지나치고 있으니 <툼스톤>은 스릴러보다 스릴러의 기운을 빌린 드라마에 더 가깝습니다. 지금도 아주 나쁜 정도는 아니지만 둘 사이에서 적당하게 균형을 이룰 수 있었더라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됐을 것 같습니다.

★★★

덧 1) 리암 니슨의 나이만 아니라면 원작 소설처럼 시리즈로 이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른 배우가 이어받아도 되겠네요.

덧 2) 액션연기도 불사하는 리암 니슨의 활약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테이큰 3> 다음에는 <언노운, 논스톱>에 이어 또 한번 하우메 콜렛 세라와 작업하더군요. 아, 그리고 <툼스톤>에 <테이큰>을 좋아하는 관객을 위한 장면도 있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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