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들어와 보니까 밖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 왜 석 달 동안 바깥에 있었을까.” 18일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에서 들린 이야기다. 이 노동자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씨앤앰이 간접고용한 비정규직이다. 이날 20층에 모인 노동자 67명은 대부분 해고자다. 이들은 109명 해고문제를 해결하라며 씨앤앰을 좌지우지하는 주주인 MBK파트너스를 찾아 면담을 요청했다. 이날 파이낸스센터 20층과 MBK파트너스는 딱 4시간 멈췄고, 노동자들은 경찰에 끌려나왔다.

복잡하지만 복기해보자. 씨앤앰은 가입자가 240만 명이 넘는 업계 3위 사업자다. 사모펀드운용사인 MBK파트너스는 2007년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와 손을 잡고 국민유선방송투자라는회사를 설립, 씨앤앰 지분을 매입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MBK는 재매각 차익을 얻는 게 목적이지만 2009년 IPTV 등장으로 케이블은 경쟁에서 밀렸다. 씨앤앰은 유령가입자를 만들어 가입자수를 뻥튀기하고, 하청을 쥐어짰지만 매번 매각에 실패했다.

▲ 18일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에서 연좌농성을 벌인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지부장 김영수) 소속 조합원들의 모습. 이들은 씨앤앰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면담이 성사될 때까지 무기한 대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사진=미디어스)

올해 다시 기회가 왔다. 정부는 케이블방송 점유율 규제를 완화했고, CJ헬로비전과 티브로드 등 1, 2위 사업자가 씨앤앰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문제는 가격이다. MBK파트너스는 씨앤앰을 인수하던 시기, 대만의 케이블업체를 사들였고 지난달 인수 7년 만에 재매각했고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차익으로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씨앤앰은 이게 불가능했다. 씨앤앰 원·하청에는 모두 노동조합이 있다. 사모펀드에게 ‘싸우는 노동조합’은 매각가 하락의 주범이다.

지난해 하도급업체 노동조합과 고용승계 관련 협약을 맺은 씨앤앰이 돌아선 것은 규제완화 시점이다. 씨앤앰은 지난해 영업이익 1349억 원, 당기순이익 755억 원(종속기업 연결기준)을 기록했다. 2012년에 비해 순이익은 130억 원이나 늘었다. 상황은 나쁘지 않았지만 씨앤앰은 하도급업체들이 자신을 불공정거래 혐의로 고소할 만큼 더 쥐어짰다. 하도급업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노동조합의 파업 선언 직후 직장폐쇄를 결정했다. 6월부터 총 109명이 해고됐다.

지난 7월 노동자들은 서울파이낸스센터 주변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하도급업체는 원청 탓을 하고 원청은 주주 탓을 하는 상황에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대주주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해결은커녕 오히려 일은 꼬여만 갔다. 노동조합은 지난달 말 파업을 끝내고 현장에 복귀하려 했지만 하도급업체 사장들은 노조에 “원청이 파업 포기 각서를 요구했다”며 “각서를 쓰지 않으면 우리도 망할 판”이라며 항복문서, 백기투항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와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의 압박이 있고서야 직장폐쇄가 풀렸다. 그러나 해고자 문제는 그대로였다. 최근 노동부는 원청 씨앤앰을 불러 전향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풀 것을 요청했으나, 씨앤앰은 대주주 핑계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단 결정 없이 원청이 움직일 수 없고, 해고 문제도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셈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18일 낮 12시 반께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까지 걸어 올랐다. 물론 MBK사무실은 닫혀 있었다.

▲ 18일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 MBK파트너스 사무실 앞. 노동자 60여 명은 이곳에서 윤종하 대표 면담을 요청했다. (사진=미디어스)

기자가 도착한 것은 20분 뒤인 12시50분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20층 앞에는 보안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한층을 내려갔다. 출입하는 사람에 끼어 운 좋게 19층과 비상계단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층 빨간조끼를 입고 복도에 앉아 있는 노동자들이 보였다. 노동조합 간부에게 현장 상황을 전해 들었고, MBK파트너스 사무실 앞에 앉아 취재를 시작했다. 경찰도 곧장 현장에 도착, MBK와 대화를 주선하겠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씨앤앰의 임원이 파이낸스센터 로비에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리고 점거 두 시간이 넘어가던 때, 만남을 주선해보겠다던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소득이 없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노동조합 간부들을 불러모아 “지금 안 나가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노동조합은 “대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노동자들은 연행과 벌금을 각오했다. 갈 곳은 이곳 아니면 저 밑바닥 거리뿐인 해고자 아닌가.

노동자들은 물 한 병조차 전달받지 못한 채 4시간 동안 구호를 외쳤다. 현장에는 물이 딱 한 병 있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자신들 틈에서 취재하던 매일노동뉴스 기자에게 물을 권했다. 우리 이야기를 잘 써 달라는 이야기였다. 지난 6월부터 씨앤앰 사태를 쭉 취재한 기자이지만 부끄러움을 느꼈다. “똑같은 상황이다. 답답하다”는 노동조합 이야기를 핑계 삼아 기사를 쓰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기자를 하는 게 아닌데.’

노동자들 사이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씨앤앰 성낙섭 전무, 한상진 상무, 홍명호 홍보팀장에 전화를 걸었다. 합쳐서 30여 차례가 지났을 때 한 상무가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든 씨앤앰 입장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홍보팀장이 연락하게끔 말해놓겠다”고만 했다. 성 전무도 같았다. 4시께야 연락이 닿은 홍명호 팀장은 “장영보 사장에게 보고하느라 연락이 늦었다”며 “공식입장은 협력업체 노사, 고용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경찰이 연행작전을 시작하자 노동자들은 스크럼을 짰다. (사진=미디어스)

4시 반께 갑자기 경찰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세 명씩 스크럼을 짰다. 4시40분께 경찰은 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작전에 방해가 된다”며 기자들을 밀어냈다. 경찰에 사지가 붙들려 끌려나온 노동자들은 서울파이낸스센터 로비에서 구호를 외쳤다. “MBK, 씨앤앰이 부당해고 해결하라!” 로비에 있던 한상진 상무는 기자와 만나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만 말했다. 사모펀드와 경찰은 단 4시간 만에 노동자들의 농성을 정리했다.

유독 씨앤앰 현장에는 기자들이 없다. 씨앤앰은 방송업계에서 ‘힘’ 있는 사업자다. 그리고 언론은 웬만해선 동종업계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더구나 노동현장에 오는 매체는 극소수다. 금융자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점거’ 했는데도 20층 현장을 찾은 언론은 매일노동뉴스, 경향신문, 노동과세계, 뉴시스, 시사인, 미디어오늘 그리고 미디어스 정도.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신문은 다음 날 이 소식을 원고지 1.6매 분량으로 단신 처리했다.

몇 달 동안 월급 한 푼 못 받고 거리에서 먹고 자던 해고자들, 마지막 남은 물 한 병을 건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원청도 하청도 해결 못한다고 해서 결국 대주주 사무실을 찾아왔지만 4시간 만에 쫓겨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결국 1단짜리 단신이 됐다. 100일이 넘은 파업, 두 달이 넘은 노숙농성, 그리고 서울 한복판 점거까지… 노동자들은 기자들을 불렀고, 기다렸다. 내가 현장에 과하게 몰입한 건가, 아니면 당신들이 과하게 현장을 피해다니는 건가.

▲ 사지가 붙들려 끌려나오는 노동자도 여럿 있었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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