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5년 예산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다음날인 19일 각 언론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한쪽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균형재정을 희생하고 적자예산을 편성했다고 평가하면서국회의 역할을 강조했고 또 한쪽에서는 그럼에도 복지예산을 30% 이상 책정해 대통령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와 증세 필요성 또한 제기됐다.

▲ 조선일보 19일자 지면.

<조선일보>는 19일 4면과 5면에 걸쳐 정부의 예산안에 대해 보도했다. 4면에는 <복지공약 모두 반영한 첫 예산…증세대신 국채 33조 발행>이란 제목으로 대통령의 공약이 대부분 반영된 예산안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5면에는 <최경환의 승부수…SOC 24조, 안전에 14조를 풀어 경기 띄운다>는 제목으로 내수를 살리기 위한 편성이라는 점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376조 내년 예산, 자동 통과 안 되게 꼼꼼히 심사해야>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국회선진화법으로 11월 30일까지 상임위나 예결위에서 심사가 끝나지 않더라도 해당 예산안이 12월 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돼 통과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치권이 예산심사에 제 때 응하지 않으면 정부가 작성한 비효율과 낭비가 섞여있는 예산이 그대로 통과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동아일보 19일자 사설.

<동아일보> 역시 이 날 <적자 폭 늘린 ‘슈퍼 예산’ 경제 못 살리면 빚더미 될 것>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정치권의 역할을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이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임기 내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결국 정권마다 국가 부채를 차기 정권으로 폭탄 돌리기를 하는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선 민간 경제의 활력을 얼마나 살리느냐가 관건임에도 국회는 열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제 역할을 잘 해야 재정확대, 경기활성화, 세수 확대의 선순환 구조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 중앙일보 19일자 지면.

<중앙일보>도 이들 신문과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중앙일보>는 <내년도 확장예산, 경제회생의 마중물 돼야>라는 사설을 통해 추가경정예산을 아예 본예산에 포함해 편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예산안이라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예산안의 실제 내용이 창조경제 관련 지출을 제외하면 종전부터 이어진 계속사업에 대한 지출을 부분적으로 확대하는데 그치고 있다며 오히려 보건, 복지, 노동 분야의 지출이 과다해 경기조절용으로 쓸 수 있는 재원을 늘릴 여지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늘어나는 복지비를 감당하면서 재정건전성 회복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재정 이외의 금융, 통화 정책 및 규제완화 등을 총동원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이 사설의 결론이다. <중앙일보>는 4면과 5면의 <최경환표 확장 예산…경기부양 위해 정부 지갑 확 연다>, <무상보육·돌봄교실 0원…교육 예산은 사실상 삭감> 제하의 기사를 통해 예산안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거의 일치하고 있는 보수언론들의 분석에 비해 나머지 언론들의 목소리는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강조점이 달랐다. <경향신문>은 5면 <“적자 나도 확장” 최경환의 도박…균형재정 1년 만에 포기> 제하의 기사를 통해 경기부양을 통한 세수확대라는 선순환은 장밋빛 전망에 불과하다면서 정부가 균형재정을 포기한 것에 대한 비판여론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 날 <나랏빚마저 폭탄을 돌릴 셈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2012년부터 3년째 세수가 펑크나는 전례없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건전 재정은 한국경제의 보루라고 평가했다. 결국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복지재원을 마련해야 하고 이는 법인세나 소득세의 인상을 통해 가능하다는 게 결론이다.

▲ 경향신문 19일자 5면.

<한겨레>는 3면 <복지예산비중 30% 돌파했다지만…대부분 ‘연금증가분’>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부 예산안에서 늘어난 복지예산비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기초연금 재원과 건강보험지원예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복지 대상을 확대한 결과가 아닌 법에 따라 늘어나는 자연증가분이 복지예산 증가의 원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대상 확대 등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한겨레>는 4면 <세수부족에 ‘확장재정’ 한계…경기 악화에도 대응 힘들어> 제하의 기사를 통해 재정건전성 문제에 발목이 잡힌 정부의 경기 대응 여력이 2016년 이후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며 증세를 통한 세수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 날 사설을 통해서도 이번 예산안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고교 무상교육이 사실상 폐기되는 등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 등 서민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정책을 추진하니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한겨레 19일자 지면.

여러 언론에서 지적하고 있는 재정건전성 문제는 사실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매년 재정균형을 맞춰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오히려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지출 축소로 인한 경기위축의 피해가 서민층에 그대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제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균형을 연단위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일부 경제관료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수가 부족한 상황은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다. 특히 세수 부족 문제가 복지정책 확대에 걸림돌이 된다면 더욱 그렇다. 어느 시점이 되면 일부 경제 관료들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증세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증세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다. <한겨레>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법인세나 소득세를 늘리는 것으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수의 정책들은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고 이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하거나 차라리 투자자의 이윤을 보장해주는데 중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증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의 핵심 논의는 소비세, 즉 부가가치세의 인상에 초점이 맞추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 국면에서 언론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재정건전성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증세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고 이를 위한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다.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의 보도는 다소 부족한 측면은 있지만 이러한 지속적인 시도의 연장선상이라는 데에서 평가해줄만한 데가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국회역할론을 내세우는 것은 현재 국면에서는 오히려 정략적인 것으로 비춰진다. 그간 이들 신문 보도의 맥락을 고려하면ㅅ 세월호특별법과 기타 법안을 연계해 국회를 공전시키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측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는 예산심의를 해야하는 중요한 역할을 지고 있다. 국회가 이러한 역할을 방기하면 안 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만, 국회의 역할은 이들 언론이 주장하고 있는 대로 정부의 경기활성화에 단지 들러리를 서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국회는 전문가적 식견을 활용해 정부정책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역할을 가진 일종의 자문기구가 아니다. 국회는 구체적인 정치행위를 통해 다수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이것이 정부정책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기 위한 기관이다. 그러므로 언론이 국회에 요구해야 할 것은 과연 정부가 내놓고 있는 경기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예산안의 구체적 내용이 국민들의 요구 및 필요와 일치하고 있는지를 판단해달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수언론의 예산안에 대한 19일 보도는 일정한 한계를 분명히 갖고 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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