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원>은 공포영화로 유명한 영국의 '해머 필름'에서 제작하여 더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해머 필름은 <반지의 제왕>으로 널리 알려진 크리스토퍼 리의 <드라큘라>를 비롯해 수많은 B급 영화로 팬을 확보했습니다. 한때 사업이 크게 기울기도 했으나 <렛 미 인, 맨 인 블랙> 등의 영화로 재기에 성공하면서 현재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할지 어떨지 몰라서 미리 소개했던 것처럼 <콰이어트 원>은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자막으로 시작합니다. 근데 제가 알고 있던 실화와 많이 달라서 당황했습니다. 혹시 엉뚱한 실화를 오해했던 건지 재차 확인해도 '필립 실험'이 맞긴 하더군요. 그렇다면 <콰이어트 원>은 문자 그대로 "영감을 얻어(Inspired by)" 제작한 영화입니다. 둘 사이에 소재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지만 사건은 영화와 실화가 전혀 다릅니다.

필립 실험과 <콰이어트 원>의 실험 사이에 있는 공통점은 우리가 '초자연현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국 인간의 의식 또는 의지의 발현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굳게 믿거나 인위적으로 깊이 투영시키면 현실로 이끌어내 형상화시킬 수가 있다고 합니다. 필립 실험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건 굉장히 흥미로운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콰이어트 원>도 공포의 근원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다룰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물은 허망하기만 했습니다. 차라리 필립 실험을 있는 그대로 영화화했어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콰이어트 원>은 도입부를 성급하게 전개합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인 조셉이 학생들에게 하는 얘기가 첫 장면인데, 관객의 이해를 충분히 구해도 좋으련만 냅따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이어서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남길 브라이언이 합류합니다. 그의 시점에서 본 조셉 교수의 실험은 가학적이기만 하고 대체 뭘 위한 것인지 의문만 가득합니다. 그걸 보는 관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분명 초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푼다고 해서 흥미를 가졌는데, 그것이 무색할 만큼 <콰이어트 원>도 흔하디흔한 오컬트 무비의 노선을 고스란히 따라갑니다. 스트레스를 가하고 부정적인 기운을 이끌어내 초자연현상의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실험의 취지도 설득력 없는 광기에 지나지 않는 걸로 보일 따름이었습니다.

최근에 엇비슷한 형태의 소재를 다뤘던 <오큘러스>와 비교해도 <콰이어트 원>은 허무맹랑하고 부실한 영화의 수준에서 그쳤습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것으로 인한 피실험자의 반응도 선뜻 납득할 수 없고, 이것으로 촉발되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다분히 뜬금없이 터집니다. 각본도 각본이지만 연출이 계속해서 제 역할을 못한 바람에 전혀 임팩트를 주지 못합니다. 설상가상 가학적인 실험이 조셉 교수의 맹목적인 광기에서 온 것인지 진짜 근거가 있는 것인지를 두고 형성할 수 있었던 긴장의 끈도 쉽사리 놓치고 말았습니다. 얼렁뚱땅 황급하게 문을 닫는 결말은 압권입니다. 제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영화가 아니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서 <콰이어트 원>은 각본부터 촬영과 연출까지 어느 것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어쩜 이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무섭지도 않고 영리하지도 않은 영화를 만들었는지 의문입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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