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대확장으로 강제로 쫓겨난 이들이 있었던 평택 대추리, 송전탑 건설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던 밀양과 제주 강정마을, 공권력에 의한 비극이 탄생한 용산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갈등이 있던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SBS가 공동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사진작가로서는 최초로 수상한 노순택 작가다.

18일 오후 3시, <올해의 작가전 2014>가 전시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전시실에서 노순택 작가와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가장 먼저 수상소감을 들어 보자는 큐레이터의 말에 그는 “블로그에 써 놓은 수상소감을 보시면 될 것 같다”고 잠시 머뭇거리다가도, 그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해 왔는지를 차분히 설명했다.

“주변에서 수상한 시절에 수상을 하게 되었네, 라면서 축하를 해 주더라”라고 말문을 연 노순택 작가는 “많은 공간 안에서 카메라를 들고 섰던 많은 사람들은 사실 제 자신이기도 하다. 그런 공간에서 사진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담았다”고 말했다.

▲ 사진작가 최초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노순택 작가 (사진=미디어스)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인 <무능한 풍경을 다루는 젊은 뱀>은 뜨거운 대립과 갈등이 있었던 수많은 현장을 카메라로 찍는 이들을 중심소재로 한 작품이다. 노순택 작가는 “(작품에 담긴)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풍경들은 잔인했다. 그 잔인함이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잘 작동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그런 풍경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며 “이런 무능한 풍경 안에서 사진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중계하는가, 보다 궁극적으로는 오늘날 ‘사진’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며 작업해 왔다”고 밝혔다.

갈등의 현장은 늘 녹록치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호소하려는 이들과, 그들을 막는 공권력이 대립하는 것이 일상인 현장은 결코 안온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순택 작가는 “(거기서는) 저의 위험을 생각하기 참 어렵다”며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던 약자들이 훨씬 더 위험했다고 덤덤히 말했다.

노 작가는 “갈등과 충돌이 빈번한 공간이기 때문에 위험한 순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는 사실 카메라를 들고 그 뒤에 숨어있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 중 하나”라며 “그 공간 자체는 경찰, 기자, 자기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분들 모두에게 위험하겠지만, 밀양 할머니들,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용산참사 철거민들에게 가장 위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지 않은 현장을 늘 지키는 그의 동력은 ‘뜨거운 궁금증’에서 나왔다. 그는 늘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작품에도 의문을 담았다. 그래서 보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사진보다,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이 많다. <무능한 풍경을 다루는 젊은 뱀>의 첫 번째 작품이 대표적이다. 얼핏 보면 뿌연 연기가 분위기 있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2006년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정부가 주민들의 이주를 강제할 때 농민들과 소위 용역 직원들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농민들에게는 볏짚에 불을 붙여 시야 확보를 안 되게 함으로써 용역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필사의 순간’인 것이다.

▲ 노순택 작가가 '무능의 세월 #XIV051002'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물감을 뿌려놓은 듯 고운 하늘에 노란 풍선이 흩날리고 있는 <무능의 세월 #XIV051002>도 마찬가지다. 2014년 우리 사회의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의심을 품게 만들었던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안산에서 열린 행사 때의 모습이다. 하늘을 뒤덮은 노란 풍선은 분명 아름답지만, 참사 5개월째를 맞은 현재를 반추하면 참으로 서글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제가 늘 품고 있는 의문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무엇인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 자신이 대체 뭐지 하는 것들이다. 늘 궁금하다. 작업노트에도 써 놨지만 사실 작업을 하게 한 동력은 정의감이랄지, ‘뭔가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랄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궁금함이 가장 뜨거웠다.

이 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밀양에서 강정마을에서 용산참사 현장에서. 그런 일들은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도 있는 문제이긴 했는데. 사진 초기에 가지고 있는 의심이 있었다. ‘눈으로 본 현장과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본 현장은 왜 괴리가 생기나’. 그것이 늘 궁금했고 따라서 그 궁금증을 풀려면 현장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현장들을 다녔던 것이다”

고장나 버려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사회의 면면을 기록해 온 노순택 작가는 현재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현장을 돌고 있다. 계획해서 작업에 들어가는 편이 아니라고 밝힌 그는 자신의 움직임을 ‘사진작가로서의 작업’ 때문이 아닌 사회 일원으로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작가는 “(세월호 참사는) 대체 우리 사회가 무엇이고 개인은 무엇이며 국가는 무엇인지, 우리들이 대체 무슨 존재인지 전면적인 질문을 내리는 사건”이라며 “작업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생각하고 (타인에게) 생각을 촉구하는 것은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사회 일원으로서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사회적 갈등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온 만큼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망각되는 과정을 작가의 시선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4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노순택 작가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레이돔을 촬영한 <얄읏한 공>(2006년) 등 과거 작품도 함께 전시돼 있다.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구동회, 김신일, 장지아 작가의 작품 전시도 8월 5일부터 11월 9일까지 계속된다.

▲ '무능한 풍경을 다루는 젊은 뱀' 시리즈 일부.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의 모습이다. (사진=미디어스)

▲ '무능한 풍경을 다루는 젊은 뱀' 마지막 작품 (사진=미디어스)

▲ '무능한 풍경을 다루는 젊은 뱀' 시리즈 일부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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