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분위기가 심상찮다. 계파 갈등 자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는 상황이지만 의미심장한 발언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데다 ‘비박’의 잠룡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까지 정치권에 컴백해 민감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18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위원장을 맡는 보수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최고위원회에서 인준했다. 당내 위원으로는 김영우 대변인과 조해진, 김용태, 황영철, 강석훈, 민병주, 민현주, 서용교, 하태경 의원 등이 선정됐으며 원외에서는 안형환 전 의원이 발탁됐다. 인적 구성을 보면 아무래도 소위 ‘비박’계 인사들의 입김이 세게 작용할 전망이다.

▲ 새누리당 보수혁신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16일 대구시 수성구 희망로 KS택시에서 택시운전기사 체험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친박의 새로운 구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보수혁신위원회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김문수 전 지사 등을 두고 “당 혁신이 아닌 정치 혁신에 맞춰 (혁신 작업을)진행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국회의원들은 국민으로부터 ‘너나 잘해’라고 비판받는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모든 것을 떠나 기본적인 입법, 예산심의 등에 전념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국민들에게 혁신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김문수 전 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보수혁신위원회가 애매한 입지 때문에 진정성에 의심을 받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정치평론가 고성국씨는 “기득권 내려놓기 특권 내려놓기 이게 무슨 혁신인가? 그건 상식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고성국씨는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는 행동조차 못해서 질타를 받고 있는데, 그걸 넘어서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혁신위원회를 띄워놓고 별로 새로운 모습과 메카니즘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 또한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가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를 의식한 때문인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보수혁신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김무성 대표는 보수혁신위원회의 활동 내용에 대해 “정당 민주화를 포함해 모든 논의를 다 할 수 있다”면서 “정치권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의 90%가 잘못된 공천권 때문이고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부터)와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이완구 원내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무성 대표는 취임 당시부터 지도부의 의중에 따른 공천은 하지 않겠다고 수 차례 공언한 바 있다. 즉, 공천제도 개혁은 김무성 대표가 지금까지 내세워온 주요 공약이나 다름이 없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보수혁신위원회의 활동에서 공천제도 개혁이 최우선시 될 것이라는 점은 매우 분명해보인다. 이미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김문수 전 지사가 내놓은 바 있다. 김문수 전 지사는 16일 대구에서 택시를 운전하며 민생탐방을 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을 만나 “한국판 오픈 프라이머리제도를 완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표현하자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것으로서 앞서 언급한 김무성 대표의 공천을 안 한다는 입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같은 비박계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김태호 최고위원의 목소리에서도 이런 심상찮은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17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5년 단임제는 이제 그 수명을 다했고, 소지역주의의 고착화를 부추기는 소선거구제하에선 국회의원의 대부분은 50% 이하의 득표율로 당선된다”면서 국회의원의 2년 임기 단축을 포함한 나름의 정치개혁안을 제시했다. 말 자체는 단순해보이지만 결국 개헌과 선거제도를 포함하는 상당한 규모의 정치개혁을 언급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안들이 박근혜 정권과 소위 친박들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오픈 프라이머리 등 공천 개혁은 필연적으로 조직에 충성하는 인사들보다는 대중적 영향력을 갖춘 인사들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중적 영향력은 친박 인사들보다는 이들과 거리가 먼 인사들이 주로 갖추고 있다. 이런 상황은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집권 2년 차에 친박 인사들이 공천 경쟁에서 줄줄이 탈락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즉,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있고 김무성 대표 체제가 사실상 이를 통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천개혁’ 논의를 꺼내는 것은 당 내의 계파갈등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개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헌은 결국 권력구조의 변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지난 정부에서부터 주요 인사들이 수차례 개헌을 말했지만 결국 이에 손을 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개헌에 대한 논의가 계속 미뤄져온 탓에 누군가 개헌을 말하면 그것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군다나 2015년은 주요한 선거가 없는 해이기 때문에 개헌 논의의 최적기로 불리고 있다. 김문수 전 지사의 공천개혁안과 김태호 최고위원의 개헌론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측에서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의 역할이 나날이 비대해지는 것도 문제다. 김무성 대표는 취임 이후 사실상 당의 주요한 조직들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정치인으로서 가진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에 세월호특별법 국면에서 역시 몇 차례나 역할을 주문받기도 했다. 세월호특별법 협상의 주도권은 이완구 원내대표가 갖고 있었으나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새로 선출하게 됨에 따라 이제 상황은 변화의 가능성을 갖게 됐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더 이상 협상을 진전시키지 못하는 경우 ‘비박’ 김무성 대표와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가진 문희상 신임 비대위원장이 서로 결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세월호특별법 교착 정국 해소의 공은 김무성 대표가 가져갈 확률이 높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종합해보면 정치권 내외의 ‘무리수’라는 평가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내놓은 것에 어떤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씨는 위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번 대통령의 발언은 그 진의나 진정성과 별도로 정치적으로는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고성국씨는 “여야가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타협점이면 우리도 유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야당의 분위기”라면서 “대통령의 발언은 야당이 협상할 여지를 결과적으로 확 좁혀버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주호영 정책위의장,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등 지도부를 접견하며 인사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 평가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보자. 즉,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김무성 대표가 나서서 세월호특별법 정국을 풀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버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적극적으로 내놓은 상황에서 아무리 ‘비박’이라고 해도 여당 대표가 그것을 넘는 협상을 벌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나온 지난 16일 김무성 대표를 포함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줄줄이 청와대에 불려가 한 소리를 듣고 나온 것 역시 이런 상황과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볼만 하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기소권 수사권 문제는 사안마다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고, 의회 민주주의도 실종되는 아주 큰 문제를 야기한다”고 재차 강조한 바 있다. 그 앞에서 김무성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였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거 친이계의 맏형인 이재오 의원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출구는 못 열어줄망정 쪽박까지 깨면 안 된다”고 발언한 것이 과연 내홍에 빠진 야당을 배려한 발언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다른 불만을 표출이었는지도 섬세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어쨌든 여당 내 계파갈등은 현재로서도 진행 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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