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업계 2, 3위인 티브로드와 씨앤앰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17일로 백일을 맞았다. 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이어지고 있는 노숙농성도 두 달이 훌쩍 넘었다. 티브로드는 원청이 ‘하도급업체 노사문제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면서 일이 꼬였다. 올해 들어 해고자가 109명이나 나온 씨앤앰은 경영진이 대주주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지난 7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관계기관이 합심해 방송·통신업계의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으나 미래부는 고용노동부와 킥오프 회의만 했다. 방통위는 조사를 시작조차 않았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최경환 경제팀도 더 이상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티브로드 하도급업체 노사는 최근 집중교섭을 벌이고 임금 및 산업안전 부분을 일부 합의했으나 징계위원회 노사동수 구성, 사회복지기금 규모, 노동자 생계비 지원(교섭 타결 위로금) 여부 등 쟁점에서는 의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도급업체는 ‘생계비 지원’ 요구에 대해 “비조합원과 차별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 17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은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맞은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씨앤앰과 티브로드 등 케이블 사태에 대한 정부와 청와대의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사진=미디어스)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이시우 지부장은 “두 달이 넘는 노숙, 세 달이 넘는 파업 기간 동안 조합원들은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상황이 됐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교섭에서 파업 장기화 원인을 제공한 원청에 ‘하도급업체 노사 교섭타결 위로금’을 요구하자고 협력사협의회에 제안했으나 협력사 대표들은 이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17일부터 집중교섭이 예정된 씨앤앰 하도급업체의 교섭 쟁점은 ‘해고자 109명 복직’이다. 노동조합은 해고가 여러 업체에 걸친 문제이기 때문에 원청이 정리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협력사협의회는 부정적인 입장으로 알려졌다.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김영수 지부장은 “업체들 입장은 ‘원청에서 얘기를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블 바닥에서 임금, 해고, 산업안전 문제 등 하도급업체 문제는 사실상 원청이 해결할 문제다. 그러나 그 동안 티브로드와 씨앤앰이 직장폐쇄와 파업대체인력과 관련해 하도급업체들과는 긴밀하게 소통하면서도 노동조합과 국회에 ‘노사문제 불개입’ 원칙을 내세운 점을 고려하면 지금 케이블 사태는 ‘원청이 하청 노동조합을 고사시키는 과정’으로 보인다.

티브로드와 씨앤앰은 파업 전부터 대체인력을 활용해 업무공백을 메웠고, 하도급업체 노동조합의 파업효과는 사실상 사라졌다.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닌 원청이 대체인력을 투입하면서 대체인력투입금지 조항은 무력화”됐다. 공공미디어연구소 김동원 연구팀장은 이 같은 원청의 파업 대응 전략에 대해 “순종적인 협력업체와 노동자 구성”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정부의 개입을 촉구했다. 17일 노동자 수백 명은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맞은편에 모여 청와대가 직접 나설 것을 촉구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와 티브로드지부는 “공정거래위원회 미래부 노동부 방통위에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했지만 수시근로감독을 제외한 어떠한 정부부처의 움직임도 없었다”고 전했다.

▲ 기자회견에 참석한 티브로드, 씨앤앰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희망연대노동조합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백일 간 파업하는 동안 122명(티브로드 해고자 13명 포함)이 원청의 업체 변경시 고용이 승계되지 않아 실업자로 길거리에 나앉게 됐을 때 정부는 어디에 있었는지, 문제해결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의 수수방관으로 사태가 악화돼 이제 청와대에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종탁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은 “기념하고 싶지 않은 백일”이라며 “노동자들이 백일 동안 파업을 했다는 것은 이 기간 동안 일터에 가지 않고 자기 요구를 하며 길거리에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다르게 보면 백일 동안 원청도 협력사도 정부도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 파업에 응답한 정부와 원청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탁 위원장은 “미래부 최양희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케이블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고, 최경환 부총리는 간접고용 문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그 동안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듣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이대로 노동자를 외면한다면 세월호 못지않은 분노로 세월호 못지않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김영수 지부장은 “이익과 매각밖에 모르는 먹튀자본이 비정규직과 노동조합을 와해하기 위해 파업·농성 장기화를 조장하고 있고,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3개월 동안 급여 없이 살고 있다. 생활이 가능하지 않다. 국민이 모두 신용불량자가 돼 길거리에 나앉아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것인가”라며 청와대의 개입을 촉구했다.

티브로드지부 이시우 지부장은 “원청이 협력업체 노사갈등을 조장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사회적으로 간접고용 문제가 중요해졌는데 정부는 약속을 지키고, 원청은 노동자들의 생계안정과 현장복귀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싸움에 모든 걸 걸었고, 모든 걸 버렸다”며 “죽음 앞에 놓인 노동자의 삶을 청와대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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