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직이라는 만화가가 있다. 그리고 그는 1990년대 한국 만화를 이야기하는 것에 있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활동한 기간에 비하면 완결을 지은 작품의 수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작품들의 의의나 활동의 측면에서 그는 인상적인 족적을 남겨왔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널리 사랑받아온 만화 작법서 <무일푼 만화교실>을 몇 번씩 개정판을 만들면서 까지 제작했었고, 지금은 웹진으로 틀을 옮긴 서울문화사의 순정만화 잡지 <윙크>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일상에 대한 만화인줄 알았지만 서서히 진행될수록 점점 어둡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속내를 드러내어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TOON>이 있었다.

▲ 만화가 박무직의 한국에서의 대표작인 의 표지 사진.

이외에도 약 서너 개의 작품을 더 만들었지만 많은 이들이 기억화는 작품은 이 두 작품 정도다. 하지만 그는 작품의 수보다 더 인상에 남을 활동을 해온 운동가였다. 1990년대 말, 한창 청소년보호법 문제로 시끄러울 무렵 거리에 나섰던 작가 중 한 명인 동시에 '자유의 검은 리본'(자검댕)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주도해 청소년보호법, 그리고 그 이후에는 만화 대여점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인 전력이 있다. 하지만 그의 한국 활동 내역은 2000년대 중반에서 멈춰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그의 화풍과 매우 닮은 무명 작가 BOICHI가 성인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BOICHI가 자신을 박무직으로 지칭한 적은 없지만 그 작가의 소개나 이후 한국에서 '보이치'라는 닉네임을 박무직 작가가 사용하면서 둘이 동인인물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한동안 일본에서도 마이너한 위치에 서있는 성인 만화에서 주로 활동했던 박 작가는 완벽한 메이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헬싱>으로 조그마한 인지도가 있는 쇼넨가호샤(소년화보사)의 청년만화 잡지 <영 킹>에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선 켄 락>을 연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틈틈이 한국에는 자신이 일본 정착 사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퍼트리기에 바빴다. 한국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외제차를 뽑으면서도 어시스턴트에게 충분한 대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처럼 한국 만화가들이 일본에 진출해 성공하는 것이 진정으로 한국 만화가 살 수 있는 길이다. 그런 류의 주장을 시간만 되면 자신이 운영한 카페나 블로그에 개진했다. 아마 2010년대 일본 진출을 결심한 만화가 중 몇몇은 이러한 주장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그의 한국 이력은 도저히 2000년대 중반 이후 갱신될 기미가 없지만 여전히 그는 그가 지금까지 남겨왔던 각종 작품과 주장으로 인해 아우라를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송두리채 뒤집는 스캔들이 최근 발생했다.

시작은 지난 12일 만화나 일러스트를 그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네이버 카페 '방사'(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에 올라온 글이었다. '11개월만에 지옥에서 벗어났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어떤 한국 작가에 대한 폭로가 담겨있었다.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글쓴이는 11개월 동안 화실에서 어시스턴트를 했던 이로, 글에는 근무를 하는 동안 작가 자신은 명품이나 차를 사면서 정작 자신과 같은 어시스턴트들에게는 작가의 각종 핑계로 맨 처음에 약속받았던 돈보다 적은 돈을 받았다는 말부터 시작해 주 5일 근무는커녕 밤샘 근무가 일상이 된 과중한 작업시간, 조금만 실수를 해도 마구 욕을 하거나 폭력적으로 대하고 심지어는 앞으로 작가 데뷔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일삼는 작가의 행동에 대한 지적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다른 작가도 아니고 박무직 작가라는 점에 있었다. 처음 글에 그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일본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박 모 작가'라는 언급은 바로 그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현재 시점에서 일본에 살면서 작품을 그리는 한국 만화가는 박무직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글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동시에 박무직의 화실에서 어시스턴트로 활동하던 이들의 증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각자가 말하는 내용이나 상황 설명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의 증언에서는 최소한 박무직 작가가 몇 년전에 자기가 직접 밝힌대로 자신이 어시스턴트를 대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틀 뒤 작가가 직접 일본 활동 이후 한국에서 활용하던 닉네임 '보이치'로 카페에 해명의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의 해명은 이렇게 예전에 화실에서 어시스턴트로 활동하던 사람이 글을 남기게 된 것에는 자신의 실수가 있지만 자신에게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글을 쓴 사람은 평소에도 게으른 사람이었는데 자기가 특별히 구제한 사람이고, 한국 사람도 이렇게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한국에도 화실을 만들었는데 뒤통수를 친 것이다. 가뜩이나 아내를 위해 중고 외제차 2대를 구입해서 어려운 시기였는데 믿었던 어시스턴트들이 실력도 충분치 않으면서 앙심을 품고 이런 글을 남긴 것같다. 그나마도 처음 약속했던 어시스턴트 작업료는 대작가들도 주기 힘든 수준의 돈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한 짓은 실수이긴 하지만 책임의 소재는 이들에게 있다. 그는 이렇게 그가 그간 비판해오던 악덕 사장의 말을 매우 세련되고 감정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다.

일을 내가 보기에 잘 못하는 것같으니 월급을 깎아서 주는 것도, 함부로 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얼핏 보기엔 이러한 해명이 옳아보이지만 동시에 이와 같은 수사들은 노동권 침해로 문제가 된 기업의 사장들이 주로 쓰는 변명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박 작가에 대한 비판을 내뱉었고 곧 어시스턴트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여러 번 상호 반박이 계속된 끝에 박무직 작가는 자신의 행동이 모두 어시스턴트를 위한 것이었다는 내용의 마지막 글을 남긴채 떠났고 그에 대해서 폭로한 예전 어시스턴트 중 처음 글을 남겼던 이는 재차 그의 주장에 반박을 하면서 마지막 글을, 또다른 한명은 박 작가와 연락을 통해 박 작가가 그간 폭로글에 담겨있던 모든 문제 행위에 대해 인정하며 사과를 했다는 글을 남겼다. 애초에 박무직 작가의 해명문만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글까지 사실이라면 아무리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그는 어시스턴트에게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해왔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일본 진출 이후 펼쳐왔던 주장 중 하나인 '일본에 진출해 어시스턴트를 인간적으로 대우한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 되었다. 믾??이들이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않았다.

▲ 박무직 작가는 2000년대 중반 한국에서의 활동을 사실상 끝내고 그 이후로는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연재 중인 일본 활동에서의 대표작인 <선 켄 락>의 표지.

이렇게 작가가 간접적으로나마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인정을 했으니 사건은 끝난 것인가. 물론 표면적인 사건은 끝이 났지만 살펴봐야 할 것이 아직 남아있다. 한국에서 각종 작품과 주장으로 명성을 쌓아오던 작가는 왜 자신의 호언장담과 다르게 그러한 문제를 저지르고 말았는가. 그리고 그간 해왔던 호언장담이 먹혀왔던 것에는 어떠한 환경과 배경이 있는가. 이에 대해서 충분히 살펴보지 않을 경우, 노동 3권이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운 한국에서도 가장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는 업종 중 하나인 만화계에서 이러한 일은 언제든지 다시 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활동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이후 박무직이 펼쳤던 각종 주장에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던 부분은 일본이 한국보다 고료를 월등히 많이 지급하고, 고로 차를 사는 등으로 자신을 위해 고료를 사용하는 동시에 어시스턴트에게 충분히 대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분명 일본이 한국의 출판만화보다 고료를 많이 주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판만화는 2000년대 이후로 고료가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작가 본인이 살기 어려운 마당에 어시스턴트에게 충분한 대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아니, 그 전에 경제적 문제로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이미 현재는 사실상 폐간된 만화비평웹진 <두고보자>가 2003년 발행한 8호에서 어시스턴트, 또는 문하생으로 호칭되는 '보조 인력'들이 자신의 노동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한채 '가족적인 분위기'로 똘똘 뭉쳐있지만 작가의 보호가 사라지는 순간 많은 것들을 잃고마는 그들의 처지와 모순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다. (http://dugoboza.net/bbs/ezboard.cgi@db=main008.htm) 그리고 박무직이 일본 경험을 토대로 한 주장을 펼친 2012년에서도 크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웹툰의 경우 빠른 속도로 출판 만화를 따라잡은지 오래고 오히러 특정 조건의 경우 웹툰이 출판만화의 고료를 역전하는 경우도 생겼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하지만 여전히 기존 출판 만화에 익숙한 작가나 팬에게 있어 웹툰은 쉽게 정을 붙일 수 있는 장르가 아니었고, 그런 상황에서 박무직의 주장은 많은 이들을 매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무직이 그러한 주장을 펼친 바로 그 해 일본에서 몇몇 만화가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가가 바로 <해원> <헬로우 블랙잭>으로 잘 알려진 사토 슈호이다. 그는 2012년 자신의 블로그에 출판사로부터 받는 원고료 수입만으로는 생활비에 어시스턴트 비용을 지급하느라 적자가 나서 단행본 인세가 들어와야만 비로소 생활이 가능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남긴 바가 있다. 사토 슈호는 <드래곤볼>의 토리야마 아키라 수준으로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대표작인 <해원>은 여러차례 영상화가 된 전력이 있고 이후 연재한 <헬로우 블랙잭> 역시 꾸준한 인기를 얻었던 작가였다. 다른 무명 작가도 아닌 그가 원고료 생활의 어려움을 토해냈다는 것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퍼져 큰 파장을 낳았다. 잠시 논쟁이 되었지만 곧 일본이 한국보다 그래도 낫지 않냐, 그래도 단행본 수익으로 어떻게든 살 수 있지 않냐는 주장에 밀려 이야기는 더 이상 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폭로는 여전히 한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해서 한국보다 마냥 나아질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최소한 출판 만화에 있어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한일 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가 비슷한 원인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사토 슈호의 폭로에 몇몇 이들이 볼멘소리로 '일본은 그래도 만화 단행본이 잘 팔리잖아'는 말을 뱉었지만 이것은 다시 말하면 사토 슈호 같은 인기 작가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거나 더 무명의 위치에 있는 일본 작가들은 생존에 더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뜻도 된다. 이미 2009년 고단샤의 성인대상 만화잡지 <모닝 2>에 작품 <군청>을 연재하던 작가 나카무라 친은 자신의 블로그에 자신이 한 달에 약 40페이지를 그리고 약 38만 엔을 받지만, 생활비와 작품 준비 비용, 어시스턴트 비용 등으로 적게는 1만 엔부터 많게는 65만 엔까지 적자가 나고 있음을 밝힌 바가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이 대체 이 작가가 누군지 모르듯이, 일본에서도 이 작가는 그렇게 유명한 작가는 아니다. 당연히 그의 단행본은 사토 슈호 만큼 많이 팔리기도 어려울 것이고 인세 수입이 그녀를 지탱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기 작가를 제외한 대다수 평범한 인지도, 또는 무명의 작가들의 생존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단지 한국에서는 자국보다 크고 세계적으로도 월등히 큰 만화-서브컬쳐 시장을 지닌 일본의 이미지에 휩쌓여 이러한 지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렇게 사토 슈호 같은 작가마저 생활고를 표하는 상황에서 대체 일본의 3대 메이저 만화사(슈에이샤, 고단샤, 쇼카구칸)에 연재하는 것도, 월등한 단행본 판매부수를 기록하는 것도 아니었던 박 작가는 대체 무엇을 믿고 자신이 외제차를 뽑으면서 어시스턴트를 충분히 대우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일까. 스캔들이 터진 이후 그가 방사 카페에 남겼던 해명에는 외제차 두 대를 아내에게 선물하느라 재정적으로 어려웠고, 그러한 부분이 어시스턴트에 대한 대우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말이 나온다. 이 부분이 후에 문제가 되자 '중고' 외제차를 선물했다고 재차 해명했지만 그가 자신의 생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외제차나 명품을 구입했다는 점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면서 다시 그것을 이유로 어시스턴트를 혹사시켰다. 그가 왜 이러한 자가당착에 빠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그는 자신의 일본 활동이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많은 이들은 그의 주장을 믿었다. 비록 이번 스캔들이 발생하기 전에는 그 뒷면에 어두운 부분들이 잔뜩 있을 것이라고는 거의 몰랐을 것이나.

▲ 2012년 3월, 한창 웹툰에 대한 심의가 문제가 될 때 일군의 작가들은 웹툰에 대한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에 대한 반대 운동을 했고,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의 MOU를 통해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만화가의 생존과 더욱 직결되는 원고료나 복지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러한 모습이 요구될 것이다. (사진출처=방심위 심의 반대를 위한 범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

이렇게 한 시기를 풍미했던 작가가 추락하는 모습은 한편으로 지난 시기에 자주 볼 수 있었던 책임론 위주의 담론에 대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예전에 <미디어스>에 기고했던 글에서 밝힌 것처럼(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43) 한국 만화계의 담론은 어떤 한 존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책임론'의 형식으로 자주 전개가 되어 왔다. 박무직 작가는 이 중 청보법 책임론과 대여점에 대한 책임론을 전면에 걸었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 두 존재를 없애야만 한국 만화가 살아날 것이라 주장했던 그는 이후 자신의 주장을 약간 변형해 자신처럼 한국 작가들이 일본에 진출하는 것만이 한국 만화가 사는 길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그의 일본 활동에 어느 정도 과장이나 거품이 섞여있는 것과 별개로 이러한 주장들이 진지하게 먹혔다는 것은 많은 만화가들이나 팬들이 만화계에서 겪는 어려움의 문제를 어떤 한 존재의 타파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을 함께 보여준다. 물론 이들이 이를 갈았던 청소년보호법, 만화 대여점, 스캔본 등에 문제가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 존재들에는 분명 만화가나 팬들이 분노할 수 있는 요소가 어느 정도는 내재되어 있으며 화를 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측면도 있었다.

문제는 이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화를 내는 것은 결국 지금 만화계에 놓인 모순을 은폐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청보법과 대여점에 화를 낼때 실질적으로 고료를 인상하지 않고 오히려 고료 체불을 일삼았던 만화 출판사들에 대한 문제는 빛을 받지 못했다. 동시에 사회 구성원에게 전반적인 복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 자체에 대한 문제 역시 주목받지 않았다. 대신 한때 어시스턴트에 대한 문제가 화두가 될때 임시방편으로 2005년경 정부에서 추진한 '문하생이나 어시스턴트를 고용하고 있는 작가의 경우 소득에서 10퍼센트의 부가세를 내야 한다'는 정책에 가뜩이나 못 사는 작가들을 잡아먹는다고 집단적으로 반발을 했을 뿐이다. 물론 이미 정책이 사장된 마당에 과연 이러한 정책이 실질적으로 어시스턴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신들을 어렵게 만드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식 없이 벌어지는 분노는 결국 제대로 된 논의를 이끄는 대신 거대한 흐름에 쉽게 쓸려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제 모두들 한국 만화는 웹툰이 대세라 칭하며 신인, 원로 가리지 않고 모두 웹툰 형식으로 만화를 그린다. 그리고 분명 작가에 대한 처우는 예전 출판만화 시절에 비하면 월등히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만화가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 거의 손을 놓고 있던 만화가 단체들도 한국만화가협회 등을 중심으로 불공정 계약에 대한 제보를 받고, 문제가 될 경우에는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있다. 분명 예전에 비하면 상황이 좋아진 것이지만 단지 예전보다 책임론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을 뿐 여전히 시장과 불공정 계약의 문제로 귀결되는 책임론은 여전히 존재한다. 더 이상의 비극적 희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계약이라는 협소한 지점에서 노동이라는 관점으로,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인식하며 적극적인 연대를 시도해야만 하지 않을까. 그러한 움직임만이 이번 사건과 같이 한 유명 작가에게 도저히 씻기 어려운 오명을 낳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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