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논란 등에 대해 특별법으로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적절치 않다고 직접 주장한 다음날인 17일, 평소 대통령과 정부에 협조적 태도를 보여왔던 보수언론들은 이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보수언론들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균형을 맞추듯 세월호특별법 정국에 대한 사실상의 출구전략 실행에 몰두하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

17일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상 세월호 정국에 대한 종료를 선언한 것이라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경향신문은 이날 1면 <박 대통령·여당 ‘세월호 끝났다’ 선언>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진상조사 대상이 진상규명을 하지 않겠다고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것”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 측 비판을 전했다. <한겨레> 역시 이날 <침묵 깨고 강공…박대통령 ‘세월호법’ 걷어찼다> 제하의 기사를 통해 “3개월간여 침묵하던 박 대통령이 결국 유가족들의 요청을 모질게 거절한 것”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논조의 신문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점은 보수언론마저도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것에서 더욱 드라마틱하게 드러난다.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17일자 1면.

상대적으로 보수적 논조를 선보여온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이날 마찬가지로 1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다뤘다. <조선일보>는 차분히 박근혜 대통령 발언 자체를 보도하는데 중점을 뒀지만 <중앙일보>의 경우 세월호특별법 관련 발언 보다는 법안 처리 등 일정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에 대한 비판 발언에 중점을 뒀다.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 세월호법 선긋다>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 대통령이 세월호특별법 협상과 관련해 여당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사실상 협상의 여지를 더 좁혔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박근혜 대통령 발언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피력했다.

이 신문들의 사설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 표명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사회적 갈등과 이견이 심한 사안일수록 대통령은 시기와 장소를 가려 때론 하고 싶은 말도 참고, 내지르고 싶은 소리도 누를 줄 알아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발언이 지금 정국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조선일보 17일자 사설 중 일부.

<동아일보>도 대통령의 발언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 법과 원칙만을 고수하는 박정한 정치로 맞선 것이라는 점, 야당의 입장에선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세월호특별법에 관한 입장을 당사자들이나 국민들을 향한 자리가 아니라 장관들이 모인 국무회의에서 해 진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 국회의원들을 질타하는 발언은 행정부 수장이 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점 등의 근거를 들어 비판했다.

▲ 중앙일보 17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이들 신문 중 가장 점잖은 태도로 대통령을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요구가 외부세력에 휘둘린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지켜야 하는 원칙에 맞다”고 평가했다. 또, 일부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연애’ 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데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인신공격의 피해자로서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에 대한 모독을 중단하라고 발언한 것 역시 국가원수로서 할 수 있는 문제제기이자 경고라고 규정했다. <중앙일보>는 국회 역시 대통령이 지적한대로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기존에 여야가 합의한대로 처리해야 한다면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중앙일보>는 대통령이 보다 빨리 입장을 밝혔으면 혼란을 줄일 수 있었고 야당이 내홍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발언을 내놓은 것은 지나친 정치적 계산으로 보일 수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신문들은 각기 사설과 이런 저런 칼럼 등을 통해 대통령의 발언에 발을 맞추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한 사설 바로 하단에 <야 내분에 막혀 더 이상 국회가 멈춰 서 있을 순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배치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단독으로 국회의사일정을 결정한 데 대해 야당이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조선일보>는 논설위원 칼럼을 통해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에 대한 교묘한 인신공격을 내놓기도 했다.

▲ 동아일보 17일자 사설 중 일부.

<동아일보>는 <전교조는 아이들을 ‘세월호대책회의 홍위병’ 만들려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전교조의 ‘학생들과 함께 하는 세월호특별법 바로 알기 공동수업’을 문제 삼으면서 해당 수업 내용이 야당의 일방적 주장을 담고 있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현행 법령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이러한 입장은 결국 세월호특별법 정국이 장기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거나 야권에 불리한 여론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작삼 발언’에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훈수를 두면서 자신들이 직접 세월호특별법 정국에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개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굳은 일은 언론이 할테니 대통령은 품위를 지키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것이 언론의 정도인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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