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제11회 EBS국제다큐영화제(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가 최근 막을 내렸다. 올해 EIDF는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으로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콜렉션과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학살국 이스라엘의 이미지 세탁에 기여할 수 없다는 한국의 영화인과 관객 등 시민사회의 반대로 이스라엘 콜렉션과 컨퍼런스 그리고 이스라엘 대사관 후원이 모두 철회된바 있다.
이스라엘 콜렉션 등 철회됐지만…이스라엘 감독, 독캠퍼스 참여
독캠퍼스 첫 번째 강의는 이번 EIDF 상영작 <사랑을 믿나요?>의 댄 바세르만(Dan Wasswerman) 감독이 [기술 문명의 시대에서의 진정성 탐구]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강의는 사실 속에서 진실을 찾는 어려움과 인간의 고통을 이해해야 다큐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부터 불교적 인식론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려 노력해 온 개인적 경험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올해 EIDF에서 이스라엘 문화 보이콧 액션이 있었는데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이런 액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댄 바세르만 감독은 다소 난감한 그러나 예의 바른 태도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 그런데 이건 매우 복잡한 이슈이다.” 라는 짧은 말로 답변을 마치고, 다른 참가자의 질문을 받았다.
독다큐 마지막 날엔 텔아비브 국제 다큐 영화제의 시나이 압트(Sinai Abt) 예술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의 핵심 요소 : 갈등과 변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는 이스라엘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활발한 공공 자금 투자나 영화인들이 공영 방송에서 일정 시간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도록 하는 다큐멘터리 보호 특별법을 만들어 낸 성과 그리고 이스라엘 다큐멘터리가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해온 내용 등을 소개했다. 강의 주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이라, 이번 보이콧 운동으로 취소된 바 있는 [컨퍼런스: 세계 다큐멘터리의 최전선, 이스라엘] 내용으로 강의를 한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드디어 질문 시간, 지난번 댄 바세르만 감독 때가 생각나서 보다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였다. 우선 수업시간에 보여준 <바시르와 왈츠를>과 이전 EIDF에서 상영했던 <9성 호텔>등의 이스라엘 다큐를 인상 깊게 보았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올해 EIDF에 대한 이스라엘 문화 보이콧 행동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었다. 감독은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 개인으로 이곳에 왔다며, 해당 액션에 대해 들었으나 문화 보이콧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어떤 문화를 보게 됨으로써 작은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데, 보기도 전에 그것을 막으면 그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스라엘 다큐, 공격할 마음은 없다
그날 시나이 압트 감독 답변을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나는 그를 공격할 마음이 없음을 여러 번 표했으나, 감독은 이미 동료 감독까지 방어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시나이 압트 감독이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고 있거나,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단지 이스라엘 국적자라는 이유로 그런 질문을 받는 것에 억울한 마음이 들거나, 팔레스타인 이외의 다양한 문제들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고 투쟁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는 게 속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본다.
나는 그의 답변을 들으며 예전에 이스라엘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여러 이슈로 대화를 할 때, 진보 혹은 좌파적인 입장으로 이야기하던 이들이 팔레스타인 이슈만 나오면 급작스레 이전에 보이던 합리적인 태도를 잃어버리고, 주장만 있고 논리는 없는 수구 정치인처럼 말하거나 흥분을 해서 대화가 불가능 한 모습을 보이던 이들.
이스라엘은 유태인 국가라고 불리지만 유럽, 미국, 아프리카, 러시아, 아시아 등에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살아온 이들이 몇 십년 사이 한 곳에 모여 살아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묶어 주기 위해 팔레스타인이라는 공동의 적이 필요한 것일까? 무엇이 사람들의 논리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것일까, 무엇이 저들이 저토록 강력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게 하는 것일까?
좀 엉뚱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급작스런 비논리적 태도 앞에서 느끼던 답답함을 한국에서도 느낀 적 있다. 그중 하나가 어떤 남성 노조 활동가들과 여성주의 관련 이야기를 할 때 였다. 논리적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유심론 신봉자가 되어, 가족이라는 숭고한 집단성 주장하고 있었다. 난 그 얘기가 마치 우리 모두 한국인으로 뭉쳐서 위기를 넘자는 주장, 즉 모든 계급과 차이를 한국인이라는 집단성으로 무화시키는 얘기와 비슷하게 들렸고,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섬뜩함을 느꼈다. 한국에서 가족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논리적 사고와 분석이 불가능한 헌신, 사랑, 어머니 등 여러 감정이 엉켜 있는 영역이다. 또한 자신이 가해자거나 기득권자임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권력차나 억압과 같은 단어는 '가족' 앞에서 모두 휘발시킨다. 가족은 그런 단어를 들여 놓고 싶지 않은 영역인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이 문제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그런 영역인 것 같기도 하다. 홀로코스트 피해와 팔레스타인에 의해 죽어간 민간인에 대한 감정에 젖어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거나, 논리적 사고로는 이스라엘 국가 존재성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적 상태에 머물러야만 존재성을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폭력에 침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해자에 힘을 실어 주는 꼴이 될 때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댄 바세르만 감독이나 시나이 압트 감독에게 단지 이스라엘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팔레스타인 점령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와 다른 입장을 가진 시민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때로 우린 의도하지 않았으나, 폭력적 현실 앞에서 침묵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권력자(가해자)에게 힘을 실어 준 꼴이 될 때가 있다.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5대 5의 눈길을 보내며 객관을 가장한 판관 짓을 함으로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현실에 동참하게 될 때가 있다. 어떤 현실에 적극적으로 옹호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 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객관이나 중립이 아니라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동’이 될 수 있음에 대한 확인. 물론 우리가 현실의 모든 문제에 개입해서 목소리를 낼 수 없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무엇보다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정치적 행동임을 선명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번에 취소된 EIDF 컨퍼런스 제목대로 이스라엘 다큐멘터리가 세계 최전선이라면,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점령국 이스라엘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스라엘 문화 보이콧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야만 할 것 이다. 다큐멘터리는 시대의 진실과 진정성을 담지 하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댄 바세르만 감독과 시나이 압트 감독이 이번 한국의 EIDF 보이콧 액션을 접함으로써 그런 고민을 조금이라도 확장할 수 있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