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가 추진하고 있는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이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현행법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거세다. 최근에는 개인정보보호위가 사실상 만장일치로 “재검토하라”고 권고했지만, 방통위는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15일 국회에서 <빅데이터가이드라인이 개인정보 보호라고?> 토론회가 개최됐다. 시민사회와 새정치민주연합이 공동으로 주최한 ‘국감 이슈 연속 토론회’ 중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은 세 번째 주제로 선정돼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빅데이터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추상적인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만을 위해 현행법에 위배되는 것을 알면서도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많았다. 특히, 주민번호 사용이 폭넓게 허용된 상황이 먼저 해소되어야 한다는데 다수의 패널들이 입장을 같이 했다.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은 수정이 아니라 철회돼야”

발제를 맡은 김보라미 변호사(법무법인 나눔)는 방통위의 <빅데이터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빅데이터는 사실상 네티즌들의 신상털이”라면서 “신상털이를 정부와 기업의 고도화된 기술로 활용한다면 어떨까. 이용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기업들의 영리목적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은행의 예를 들며 “보험 등 계열사들에까지 한 개인이 통장잔액이 공유되고 그것으로 텔레마케팅에 활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9월 15일 오후4시 국회의원회관에서 '국감이슈연속토론회' 세번째로 '빅데이터가이드라인의 개인정보 보호라고?' 토론회가 개최됐다ⓒ미디어스
방통위의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에 대해 김 변호사는 “‘공개된 개인정보’라는 규정을 통해 사전동의권을 회피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면서 “공개된 개인정보를 개인정보와 다른 것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법체계상 바람직한가”라고 반문했다. 또, 제3자 제공 조항에 대해서도 “개인정보 주체의 이익이 우선될 경우로 한정돼 있다. 그런 점에서 해당 조항은 현행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은 조문들이 현행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조항들과 충돌된다. 공개된 개인정보가 사전동의 대상이 안 된다는 전제가 틀렸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은 수정이 아니라 철회되는 게 맞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번호가 폭넓게 활용돼 왔다는 점에서 빅데이터 논의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민번호가 빅데이터와 결합됐을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주민번호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지만, 법률을 통해 예외규정을 뒀는데 관련 법률만 800여개”라면서 “우선 주민번호부터 폐지하고 빅데이터 활용 논의로 가는 게 순리”라고 강조했다. 토론자서 나선 진보넷 신훈민 변호사 또한 “국민들의 주민번호가 공공재가 된 상황에서 아무런 대안 없이 빅데이터 활용에 중점을 둔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같이 했다.

또 다른 토론자 이은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법무법인 지향)은 “빅데이터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아도 이미 기업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통위의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은 생뚱맞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는 정보에 대한 자기통제권 보장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방통위의 빅데이터는 친기업 중에서도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대기업에 적합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은우 위원은 “공개된 개인정보라는 개념으로 사전 동의를 받지 않도록 한 것은, 공개된 개인정보의 경우는 개인정보로 보지 말자는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빅데이터 산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아마존’에 대해서도 이 위원은 “(취향을 고려해 보여주는 책광고는)편리하긴 하다”면서 “하지만 해당 정보들이 다 기록으로 남는다. 그리고 문제는 네트워크 힘을 이용해 가공하면서 소비자 선택권을 심각히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함께하는시민행동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공개된 개인정보와 관련해 “공개된 개인정보라고 해서 해당 개인에게 소유권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날 강도 같은 시각”이라고 쓴 소리를 던졌다.

국회 입법조사처 심우민 조사관은 “방통위가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사업자들이 요구가 있는지 가이드라인으로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지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기본권이다. 이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며 가이드라인이 아닌 입법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방통위, <빅데이터 가이드라인> 개인정보‘보호’도 균형 있게 들어가?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을 추진하는 방통위의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날 방통위 엄열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이 토론회 패널로 나왔지만 제기된 문제들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엄열 과장은 ‘공개된 개인정보가 현행법과 배치된다’는 주장에 대해 “그동안 ‘공개된 개인정보’에 대한 명시적 법상 규정이 없었다”며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된 정보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이 가능하다. 정보 제공자 입장에서 동의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개된 개인정보는 개인정보로 볼 수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부족했다.

엄열 과장은 또한 “공개된 개인정보라고 하더라도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식별화 조치 등 개인정보보호 역시 균형 있게 담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은우 위원은 곧바로 “방통위가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감독기능과 빅데이터 산업 진흥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기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토론회 사회를 본 양문석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은 “현행법상 빅데이터 산업이 현실적으로 활용되고 있고 그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지도 않은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 동력 찾기라는 무리한 일정을 잡고 가이드라인을 만들다보니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현 정부의 조급함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 이사장은 시민사회에 대해서도 “빅데이터가 처리·활용되는 단계에서 불법이 만연한 것은 사실”이라며 “일정한 합법화를 통해 양지로 끌어내 규제할지 아니면 방치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도 필요하다”고 당부하며 토론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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