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돈 빌려준다는 이메일이 더러 들어오곤 했다. 요즈음은 급전 쓰라는 문자 메시지가 전에 없이 뻔질나게 들러온다. ‘당일 대출가능’, ‘30분내 통장입금’, ‘무방문 대출가능’, ‘급전필요시 전화요망’ 등등이 말이다. 상담원이 나와 돈 쓰라고 아양을 떨기도 한다. 케이블 TV에서도 대부업 광고가 더욱 극성을 부린다. 이것은 가계부채 부실실태가 정부나 언론이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소리다.

물가가 뜀박질을 멈출 줄 몰라 실질소득이 줄고 있다. 금리도 뛰고 있어 이자부담이 갈수록 더 늘어나 감당하기 어렵다. 봉급의 절반쯤을 사교육비로 털어 넣어도 모자라는데 교육제도는 사교육을 부추기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빚내서 내 집을 마련했더라도 빚 갚을 길이 막막하다. 집을 팔래도 살 사람이 없다. 빚내서 빚 갚아야 할 사람이 많으니 고리채를 쓰라고 유혹하는 손짓이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가계부채가 지난 6월말 660조원이다. 이것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9월말의 186조원에 비해 무려 3.5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 수치는 가계대출에다 신용카드 외상구매를 합친 것이다. 가구수로 나누면 3,960만원 꼴이다. 빚이 많다보니 적자가구가 크게 늘어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2/4분기 농어민을 제외한 2인 이상 가구의 28.1%가 적자가구이다. 국민의 1/4 이상이 빚내서 먹고 산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이유를 주택담보대출로 보고 있다. 거치기간이 끝나 이자에다 원금까지 갚는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기 때문이란다. 지난 7월말 주택담보대출은 231조8,901억원로서 올 들어 10조2,501억원이 늘어났다. 문제는 금리가 계속 오른다는 점이다. 가계대출평균금리가 7.4%로 1년전에 비해 0.8%포인트나 올랐다. 이에 따른 추가부담만도 6조2,000억원이나 된다.

거치기간이 만료되는 주택담보대출이 올해는 21조8,000억원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내년에는 48조6,000억원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원리금을 함께 갚아야 할 빚이 2배 이상 늘어난다는 소리다. 고물가, 고금리로 실질소득은 줄어드는데 원리금 상환부담은 커지니 가계파산이 늘 수밖에 없다. 빚을 못 갚아 법원경매로 넘어가는 주택물건이 급증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수도권 법원경매물건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1만364건이나 된다.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미국 금융시장 관련 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던 중 피곤한 듯 눈가를 비비고 있다. ⓒ여의도통신
미국발 금융위기가 가계대출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세계적인 신용경색으로 은행의 국내외 자금조달 비용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곧 바로 시중금리 상승을 압박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엉뚱하게도 부동산 경기부양에 몰두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고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공급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돈이 있어야 집을 살게 아닌가? 지금도 미분양아파트가 넘쳐나는데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다 그만 두고 주택담보대출 거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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