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설날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주먹쥐고 소림사>가 추석을 맞아 <주먹쥐고 주방장>으로 돌아왔다. 김병만을 비롯한 연예인들이 중국 무협의 본산 소림사를 찾아가 소림 권법을 직접 사사받는 과정을 리얼리티로 다루었던 <주먹쥐고 소림사>는, 이번에는 무예 대신 중국 요리 기구인 웍과 칼을 들었다. 월드컵 경기장보다 큰 중국 최대의 식당 '서호루'에 신참 요리사로 들어간 연예인들의 리얼리티이다. 첫 시리즈에 함께했던 김병만, 육중완에 헨리, 강인, 빅토리아가 새로이 합류했다.

직원이 600여 명이 넘는 중국 최대의 식당 '서호루'의 신참 요리사로 찾아간 이들에게는 요리사 복장을 전달받는 순간부터 위기가 시작된다. 청결을 제 1요건으로 하는 요리사에게 락커 육중완의 흩날리는 머리칼과 거뭇거뭇한 수염, 기타를 치기 위해 기른 손톱은 천적이었다. 당연히 이들을 책임진 최고 주방장은 육중완에게 다음 날까지 이를 요구한다. 바로 락커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그것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 데 장애가 되자, 육중완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하지만 당장 그만 두고 중국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서 결국 육중완은 수염을 민다. 그리고 오랫동안 다듬으며 길러왔던 손톱도 자른다.

비록 예능 프로그램이고 잠시 잠깐 머무르는 중국의 식당이지만, 육중완은 자기에게 맡겨진 새로운 요리사라는 직책에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달라진 그의 모습에 주방장은 감동을 받는다. 그저 독특하게 생긴 가수, 웃긴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넘어 육중완이라는 캐릭터를 지속시킬 수 있는 성실성을 <주먹쥐고 소림사>를 이어, <주먹쥐고 주방장>에서 다시 한번 보여준다. 가장 대충할 것 같지만 한결같이 자신이 처한 처지에서 한껏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육중완이 머리에 비닐을 쓰고 손톱을 자르고 수염을 밀어도, 김병만의 진정성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다. <에코 빌리지>에서 하루 안에 땅을 파야 한다니까, 화장실 한번 가지 않고 9시간 내내 포크레인을 떠나지 않았던 김병만의 지독한 성실함이 <주먹쥐고 주방장>에서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한다. 남들보다 키가 작아 중국 전통 주방기구인 웍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었던 김병만은 출연진이 철수한 주방에 홀로 남아 웍을 손에 익히기 위해 고심한다. 작은 키를 보완하기 위해 깔판을 가져다 깔아보기도 하고, 주방에서의 연습이 미흡했던지 웍을 직접 방으로 가져와 화투장을 담아 연습을 지속한다.

심지어 첫 번째 대결에서 허락된 늦잠마저 미룬 채 일어나자마자 웍을 잡는다. 그런 김병만에게 묻는다. 대결 과정에서 누가 김병만의 라이벌이냐고. 앞서 헨리가 키 작은 형 김병만을 자신의 라이벌로 꼽은 후 이어진 질문이다. 하지만 김병만의 답은 다르다. 그 누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의 한계라는 것이다. 그의 중단 없는 도전이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달인'이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김병만의 도전은 단지 그의 한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첫 번째 <주먹쥐고 소림사> 편과 달리, 출연진 대부분이 특정 기획사 소속 연예인들로 채워진 이번 <주먹 쥐고 주방장> 편은 아쉽게도 흔쾌한 웃음을 줄 수 있는 여지가 한껏 부족했다. 제 아무리 육중완이 캐릭터 자체로 웃긴다 해도, 그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 김병만은 아낌없이 자신을 던진다. 일찍이 <개그 콘서트> 달인에서 류담에 낚여 자신을 학대하듯이 너무 웃음기가 없다 싶자, 머리로 마늘을 깐다하고, 강인이 옆에서 부추기자 감자도 무도 머리로 자른다. 600 명의 직원들 앞에서 물구나무서기쯤이야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먹쥐고 주방장>이란 프로그램은 재밌는 육중완과 제 한몸 아낌없이 던지는 김병만 대신, 요즘 인기 있는 '천재 소년' 헨리를 이번 특집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런데 군대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군대보다도 더 살벌한 요리의 현장인, 그것도 이방인 중국 식당에서 '천재 소년' 헨리가 요리사로 적절한 '에티듀드'를 보였는지는 의문이다. 애초 천재 소년에게는 요리사로서의, 혹은 이방의 식당의 신참으로서의 '에티듀드'가 필요하지 않다 제작진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자유분방함이 예절과 기본적 예의를 뛰어넘을 매력이 있다고 보았을 듯하다.

하지만 한 시간여 동안 보여진 헨리의 모습은 자유분방함보다는 무례나 불손에 가깝게 느껴졌다. 육중완과 한 방을 쓰게 된 헨리는, 락커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수염과 손톱을 가지고 고민할 때 대놓고 가위질을 손가락으로 해대며 머리를 자를 것을 종용한다. 친한 사이라 해도 조심스러운 영역인데, 한참 어린 가요계 후배 헨리에겐 도무지 그런 개념이 없다.

자신과 요리 대결을 벌이는 김병만에게는 대뜸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으르렁거린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것보다는 김병만을 이기지 못하는 데 어쩔 줄 몰라 한다. 심지어 김병만을 '키 작은 형'이라 지칭한다. 그 좋은 이름을 놔두고 '키 작은 형'이라니.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헨리처럼 다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존 박 등의 연예인을 보면 보수적이다 할 만큼 깍듯하고, 서로간의 거리가 느껴질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분명한고, 외국에서 살다온 교포가 아닌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는 외국인들만 봐도 헨리와는 다르다. 하지만 헨리의 경우는 자유분방함이라기보다는 '천방지축'이나 '안하무인'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를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외국인들의 자유로움으로 느낄까 우려될 만큼.

그런 헨리의 천방지축이 선배 연예인들에 대한 '천진한' 모습에서 그치면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의 그런 모습이 <주먹쥐고 주방장>의 주된 재미 요소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헨리는 요리사로 들어간 주방에서 다짜고짜 주방에 만들어 놓은 찐방을 그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집어 든다. 그 다음 요리사로 처음 배정받은 양파를 써는 코너에서 제대로 양파를 썰지 않는다. 김병만이 만두를 빚는 걸 부러워하다 요리를 하고 싶다며 주방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심지어 만들어 놓은 음식을 이것저것 맛본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불을 사용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요리사들이 그득한 그곳에서 말이다. 허락도 없이 웍을 잡고 요리하는 헨리를 보고 주방장은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법규를 위한 것이라며 헨리를 데리고 나온다. 결국 주방장 두 명이 그를 지키고 서있는 지경에 이른다. 과연 이것이 요리사를 하겠다고 중국 최고의 식당에 간 한국의 연예인들이 보여줄 모습일까. 과연 '헨리'가 아닌 우리나라의 다른 아이돌들이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걸 '자유분방함'이라고 흔쾌히 넘어갈 수 있을까? 외국 국적의 연예인에 대한 이 여유로운 잣대의 근저에 놓인 건 무얼까?

그래도 헨리는 요리라도 열심히 하겠다고 하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를 제외한 강인과 빅토리아는 다른 출연자가 열심히 해서 분량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내보낼 내용이 없는 것인지, 어눌한 빅토리아의 통역 분량 외에는 그다지 기억에 남을 것이 없다. 아니다. 식용으로 들어온 도살된 양과 거위, 닭을 보며 '맛있겠다', '삼계탕 먹고 싶다' 등 제 아무리 식탐이 있다 하더라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반응을 보인 것도 활약이라고 해야 할까?

산만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소림사의 권법을 익히려고 고군분투하던 개성 강한 연예인들의 분전기를 다루었던 <주먹쥐고 소림사>와 달리, <주먹 쥐고 주방장>은 천재 소년 헨리 밀착 취재기이에 양념으로 김병만, 육중완이라는, 전편에 비해 뻔한 혹은 심심한 구도가 되어 버렸다. 마치 <진짜 사나이>의 주방 버전이랄까. 하지만 주방에서 헨리는 천재라기보다는 악동에 가까웠으니, 악동이 휘저은 주방은 불안하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김병만의 진정성과 육중완의 수염까지 깎은 고군분투가 아깝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