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를 한 손에 틀어쥐고 싶어하는 이명박 정부와 그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의 싸움이 치열하다. 어느 정권치고 그런 욕심 없었겠는가만, 이 정부의 방식은 너무도 노골적이고 전방위적이라 닭살이 돋을 지경이다.

언론이 가진 위력 때문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언론의 위력과 관련해 얼마 전 YTN의 한 아나운서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돌아다니는 ‘낙하산사장 반대집회’에서, 그는 대략 이런 말을 했다.

“언론이라는 건 잘 드는 칼날과도 같다. 누구 손에 들리느냐에 따라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쓰일 수도 있고, 반대일 경우 해를 가할 수 있다.”

평소 공감하는 말이었지만, 그가 발언했던 상황과 너무도 잘 들어맞아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최근 광주지역 한 신문을 보다가도 그날의 ‘칼날’ 발언을 떠올렸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실린 이 기사는 지역의 한 대형백화점을 겨냥한 것으로, 팩트는 이 백화점 직원들이 간식 바자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관할 구청에 성금으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사의 시각은 곱지 않았다. “이 백화점은 지난해 매출 천억원대를 올렸으면서도 회삿돈은 보태지 않고 직원들이 모은 돈만으로 생색을 냈다”는 요지였다. 백화점 직원의 불만 목소리도 실어 백화점측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사 말미에 붙은 백화점 측의 해명을 보곤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매년 6억원 상당을 지역 불우이웃 돕는 데 써왔고, 이번은 직원들의 기부문화 형성 차원이 컸다”는 것.

결국 기사에 담긴 불만은 직원들의 모금활동에 기업 측이 함께 부담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두 명의 기자이름이 붙은 이 기사의 제목은 “(해당 백화점), ‘직원 주머니 털어 이웃돕기’”였다. 회사 측은 이 기사로 꽤 곤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 들렸다. ‘시각에 따라 이렇게 달리 볼 수도 있나 보구나’ 싶기도 했고, ‘뭔가 백화점 측에 불만이라도 있었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우연히 해당 백화점 관계자와 대화하던 중, 문제의 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신문사 측은 기사가 나가기 얼마 전 광고단가를 높여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백화점 측이 신문사 측의 광고단가 인상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이다.

광고 압박용이었을 가능성을 드러낸 대목이었다. 사실 언론계에서 광고 안준다고 기사로 압박하거나 화풀이하는 사례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만큼 재정상황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같은 인과관계가 맞다면 문제의 기사는 ‘생계형’에 속하는 셈이다.

하지만 생계형보다 더한 사례도 있다. 지난 19일 전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구속된 이 지역 한 일간지 주재기자 A(43)씨의 행보가 꼭 그렇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전남 진도의 한 양식장을 찾아가 곳곳을 카메라로 촬영한 뒤 ‘고발성 기사를 싣겠다’고 협박해 3차례에 걸쳐 1200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군청 공무원과 농협 간부 등에게 ‘여행경비를 지원해 달라’며 500여만원을 뜯어내는가 하면 군청 공무원이 운영하는 가구점에서 160만원 어치 가구를 사고도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쯤 되면 그에게 쥐어진 ‘언론이라는 칼’은 망나니의 칼과 다르지 않겠다. 한쪽에선 언론이라는 칼의 ‘사명’을 지키겠다며 거대 권력을 상대로 싸우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조폭식 칼부림을 일삼는 두 장면의 간극이 너무 크다.

그러고 보면, KBS노조의 ‘황당한 1박2일’은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광주지역 일간신문 광주드림 행정팀 기자입니다. 기자생활 초기엔 지역 언론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주로 했는데, 당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많이 절감했구요. 몇 년 전부턴 김광석의 노래가사 중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진다"는 말을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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