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이후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 개인비리의 방패막이 되는 대표적인 비합리적 특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4일 진행한 여론조사(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명 대상으로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병행 RDD 자동응답전화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4.4%p)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폐지에 대해 찬성 의견이 전체 응답자의 68.6%가 나왔다. 이 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응답 역시 76.5%를 기록해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인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의 ‘주모자’ 입장일 수밖에 없는 새누리당은 자신들만 비난을 받는 상황이 억울하다면서도 위와 같은 여론을 감안해 불체포특권 폐지와 관련된 발언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일 “본인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고 해도 법으로 받을 수 없게 돼 있다”면서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발언했다. 같은 당 소속인 김태흠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의원이 구인을 거치지 않고도 자진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다만 방탄국회를 악용해 영장실질심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 체포동의요구서가 보고된 지 72시간이 지나도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처리된 것으로 간주하자”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새누리당과 유사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5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체포동의안 제출 후 72시간이 지날 때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부결된 것으로 간주되므로 일부러 국회에서 72시간을 넘겨 버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국회법을 개정해서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지 72시간이 지나면 가결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신의 체포동의안에 대한 표결 이후 개표가 끝나갈 무렵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찾아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상황과 같은 경우 72시간 내에 체포동의안 처리를 시도하더라도 부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위의 대안 역시 같은 한계가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방탄국회는 없다”고 호언장담할 때에는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한 우스운 꼴이 됐는데,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회는 체포동의안을 꿋꿋히 가결시켰다는 점에서 72시간 내의 처리를 강제한다고 뭐가 되는 일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반론을 예상한 것인지 임지봉 교수는 “체포동의안 처리에는 국회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처리가 되는데, 정족수를 더 낮춰서 체포동의가 쉽도록 만드는 방법도 있다”며 다른 대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국회의 의결정족수를 과반, 또는 3분의 2로 정하고 있는 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편의적으로 체포동의안 처리에 대해서만 의결정족수를 달리 적용하는 게 쉬운 일인지 장담할 수 없다.

애초에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표결처리 하도록 만들어둔 것 자체가 일종의 ‘안전장치’다. 불체포특권은 행정부의 부당한 탄압으로부터 의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무리 국회의원의 권한이 강하다고 해도 공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행정부이기 때문에 부당한 공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입법부에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비리 등의 혐의가 명백할 경우에는 국회가 불체포특권에도 불구하고 법의 집행을 가능하도록 알아서 결정을 해달라는 게 이 체포동의안 처리 절차의 취지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을 통해서 국회가 지킨 권한이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5일 1면 보도를 통해 국회가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이를 기획했을 가능성이 높은 청와대에 대한 반발로 이러한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괘씸한 얘기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는 검찰이 ‘높으신 분’들을 눈치를 보며 기획수사를 하고 국가정보원이 선거 기간 동안 인터넷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이를 SNS에 무차별로 유포하는 나라다. 이러한 ‘공작’들에 대한 근원적 거부감이 의회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에 더해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 관련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던 신계륜, 신학용, 김재윤 등 야당 소속 의원 중 김재윤 의원만 구속수사에 들어간 상황은 검찰의 ‘기획성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큰 맥락에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할 정치적 판단의 필요성을 야당 의원들에게 느끼게 했을 수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4일 평화방송 라디오의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헌법정신에도 불구속 기소 재판을 받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저희도 반성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갖는다”라고 밝힌 것은 이러한 맥락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불체포특권의 부당함을 제기하려면 검찰개혁 등을 같이 요구할 필요가 있다.

▲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뒤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좀 더 정치공학적 관점의 추론을 제기해볼 수도 있다. 송광호 의원은 자민련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대표적인 ‘친박 중진’에 속한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도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최근에는 19대 국회 부의장 후보에 출마해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에게 패배하기도 했다. 박지원 의원은 위의 인터뷰에서 “법무부 장관도 체포동의안 국회에 설명하면서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적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국회에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제출하면서 “검찰은 송 의원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 등 구속할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체포동의요구서를 정부에 제출함에 따라 정부는 국회법 제26조에 의해 송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통상 구속수사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 실시한다. 따라서 황교안 장관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 등”이라고만 설명한 데에서 국회의원들이 어떤 ‘싸인’을 읽어낸 것 아니냐는 추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냉소적인 관점이지만 좀 더 세속적인 이유를 들어볼 수도 있다. 송광호 의원 정도의 철도납품비리는 국회의원이라면 정치자금을 음성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누구라도 손을 대는 것이다. 검찰이 문제를 삼으면 범죄고 문제를 삼지 않으면 인간사회에 다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체포동의안 처리 당일 국회에 삼삼오오 모여 “검찰이 국회를 뭘로 보고……”류의 잡담을 나눴다는 건 이런 맥락이다. 아마 이 관점이 가장 현실에 들어맞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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