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자 <동아일보>엔 <박원순 시장의 개 세 마리를 왜 세금으로 키우는가>란 제목의 준엄한 비판의 사설이 실렸다. <동아일보> 사설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진돗개 3마리를 기르며 2012년부터 훈련비 사료비 예방접종비 등에 세금 2346만 원을 썼다. 2013년에는 ‘청사 방호견’으로 지정해 서울시 돈으로 전문기관의 훈련을 받게 하고 총무과 7급 직원이 매주 월, 토요일 공관을 찾아 개 훈련을 시키게 했다. 지난해 12월 공관을 혜화동에서 은평뉴타운의 아파트로 옮긴 뒤에는 두 마리를 애견훈련원에 맡겨 매달 위탁비 110만 원, 사료비 10만 원씩 예산을 쓰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4인 가구의 현금 급여기준 월 132만 원과 맞먹는 비용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보도는 <동아일보>의 단독 기사였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세 마리 진돗개가 방호견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해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해명은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 이전의 혜화동 공관과 새로 옮긴 은평뉴타운 아파트 두 군데가 하필 방호견을 필요로 하는지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우연도 가능은 하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희소한 확률일 수밖에 없다. 특히 새로 옮긴 아파트에는 개 세 마리를 다 기를 수 없어서 한 마리만 데려갔는데 나머지 두 마리를 애견훈련원에 맡긴 상황은 우습기까지 하다. 서울시의 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과 별개로, 이 사안은 충분히 보도될 만한 것이었다.

▲ 5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
그러나 보도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이 사안이 중앙일간지의 사설 한 편에서 집중 성토되어야 할 만큼 엄중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 사안을 ‘세금 2천여만원의 낭비 가능성’이라고 정리했을 때, 대한민국에 그런 일은 차고 넘친다. 이런 사안들은 뉴스 한 꼭지를 장식할 수 있지만, 해명을 듣지도 않은 상황에서 쉽게 사태의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기에 보통 엄중하게 취급되지는 않는 것이 정상이다.
<동아일보> 사설도 보도의 공익성의 크기를 입증해야 한다고 여겼는지 마지막 문단에서 하나의 맥락을 깐다. 인용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박 시장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무상보육을 계속해야 하는데 재원이 없어 지방채 2000억 원을 발행한다고 밝혔다. 1일엔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만나 노후 지하철 교체 등을 언급하며 재정 지원을 부탁했다. 최 부총리는 ‘지자체도 과감한 세출 구조조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개 예산처럼 허투루 쓴 세출 구조조정부터 하기 바란다.“
▲ 5일자 동아일보 10면 기사
여기서 <동아일보>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무상보육을 계속해야 하는데’와 같은 표현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등 진보성향 지자체 단체장들의 정책지향에 대해 시비를 건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적은 맥락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부족했던 최소한의 재원도 2000억 원이며, 서울시의 한해 예산은 언론보도에 따르면 20조가 넘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지내던 시절에도 삽살개를 시비로 길렀다는 서울시의 해명에 굳이 동의해야 할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이 그랬다 해도, 두 사람 모두 잘못한 일일 수가 있다. 하지만 삽살개의 밥값이 과도했다는 논점이 그의 청계천 복원에 시비를 걸 수 있는 합당한 논거일까? 청계천 복원은 어리석은 정책이었을 수 있지만, ‘이명박 삽살개’는 그 정책을 비판할 논거로는 미달이다.
▲ 3일 저녁 <채널A>의 방송 화면 캡쳐 사진
마찬가지로 ‘박원순 진돗개’의 복리후생이 과도했다는 논점은 그 금액이 2년간 2천만원에 그치는 한 한해 수십 조원을 운용해야 하는 서울시의 정책방향과, 지자체 중심으로 추구되는 복지정책을 지원하지 않는 중앙정부의 행위를 찬동하는 논거로 사용되기는 어렵다. 실개천이 모두 모여 바다를 만든다지만 적어도 실개천의 사례를 서너 개는 들어야 바다의 수질을 걱정할 수 있는 법이다.
<동아일보>의 사설 마지막 문단은 그들이 자신들이 제기한 소소한 문제의 공익성의 맥락을 키우기 위해 어떤 거대한 부분들을 억지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이는 보수언론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의 예산이 생활인의 관점에서 과도하게 느껴진다는 점을 활용해, 그 수천억 예산이 적어도 수십조 예산을 쓰는 우리나라 경제에 ‘망국적 포퓰리즘’이 될 거라고 우기는 식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해도 너무한다. <동아일보> 기자 평균 연봉의 반도 안 될 금액의 세금 누수를 제기하면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시행되는 무상보육에 시비를 건다. 서두에 “기초생활수급자 4인 가구의 현금 급여기준 월 132만 원”을 끌어들인 것 자체가 본인들의 민망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 3일 저녁 <채널A>의 방송 화면 캡쳐 사진
<동아일보>가 왜 억지로 흥분했는지 여부는 <채널A>의 3일 저녁 방송을 봐야 비로소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보수언론이 그간 억지를 썼다지만 신문이란 인쇄매체의 특성상 지켰던 금도는 있다. 전통적으로 신문은 방송에 비해 ‘쿨’(cool)한 매체로 구분된다. 물론 한국의 보수언론이 마치 서구의 황색지처럼 원색적인 말의 성찬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름의 자제를 거친 것이란 건 그들 언론이 운영하는 종합편송채널의 시사 관련 프로그램을 십분만 청취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3일 저녁 <채널A>의 <박정훈의 뉴스 TOP10>은 해당 사안을 소개하면서 <강아지> 동요를 BGM으로 깐다. 방송 화면에 “우리집 강아지는 예쁜 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우리친구 반갑다고 멍멍멍”이란 자막이 깔리고 노래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진다. 그 후 십 여분 간 <동아일보>의 정치부 기자란 양반들이 출동하여 진돗개에 투입한 세금이 적절한지 여부를 ‘하하호호깔깔’ 거리면서 논의한다.
▲ 3일 저녁 <채널A>의 방송 화면 캡쳐 사진
물론 이는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관련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퀄리티’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채널A>의 자극적 보도를 위해 <동아일보>란 ‘90년 묵은 언론사’가 동원되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의 선정성은 ‘빤스’를 집어 던진지 오래지만, 그 이유가 ‘돈 잡아먹는 방송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란 사실은 종편 채널 4개를 허용한 언론 정책의 후과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은 개를 사랑하는데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개를 싫어해 힘들겠다고 생글 거리며 말하는 정치부 기자들의 모습은, 삽살개와 진돗개가 함께 뛰노는 한국 사회의 현재 언론 지형도가 어떠한지를 웅변하는 듯하다. 한 마디로 말해, ‘개판 5분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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