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당시 37일째 단식 중이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영오씨에게 자신이 대신하겠으니 단식을 중단해달라고 권유했으나 거절당하자 김씨 옆에서 동조 단식에 돌입했다. 김영오씨는 46일째까지 단식을 지속하다 28일에 단식을 중단했다. 함께 9일을 버틴 문재인 의원 역시 이날 단식을 중단했다. 문재인 의원은 건강 상태 체크를 위해 잠시 입원한 후 31일에는 진도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유가족을 위로했다.

문재인 의원은 단식에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김영오 님을 살려야 합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남겼다. 문 의원은 "교황님이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킨 위로와 치유의 감동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는 왜 우리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지 못하는지 자문하고 반성을 하게 됩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 특히 37일째를 맞는 유민 아빠 김영오 님의 단식은 당장 중단돼야 합니다”라고 썼다.
또 문 의원은 "그들의 극한적인 아픔을 우리가 깊은 공감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해주기는커녕 고통을 더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이루고자 하는 특별법 제정으로 진상규명,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거기에 고통이 요구된다면 그 고통을 우리가 짊어져야 합니다"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문 의원은 "그러기 위해 저는 단식에 들어갑니다"면서, "김영오 님을 비롯한 유족들의 단식 중단을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김영오 님을 살려야 합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오른쪽)이 지난 8월 28일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에서 '유민아빠' 김영오 씨와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문 의원은 지난 19일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김 씨와 함께 단식 농성을 하다 이날 김 씨의 단식 중단에 따라 자신도 단식을 멈췄다. (연합뉴스)
문재인 의원의 동조단식에 대해 여권이 아닌 야권에서도 일부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거물급 정치인이 나서서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리더십을 흔드는 행위는 무책임하다”, “입법에 힘써야 할 국회의원이 시위를 한다”, “부산 사상구 물난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등 비판의 논거도 다양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비판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들에게 닥친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 스스로는 왜 우리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지 못하는지 자문하고 반성”했다는 문재인 의원의 고백은 소중하지만 때늦은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참사 이후부터 팽목항에 있어야 했다. 거기서 유족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그들의 요구를 취합하고 정치적 언어로 번역해서 정부 여당에 전달해야 했다. 그랬다면 유족들의 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의 합의안 정도로도 그들의 신뢰와 동의를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는 정부 여당을 더 효과적으로 압박하여 유족들이 원하는 수준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참사를 정쟁에 이용한다’는 역풍을 우려하여 뒤로 숨는 순간, 유족들은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었다. 국가권력과 피해당사자 사이에 아무런 매개도 존재하지 않는 정치의 진공상태가 펼쳐졌다.
▲ 지난 8월 28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중이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와 면담을 하던 중 외부 방문객과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오씨의 단식은 고립무원에 놓인 이들이 그 진공상태를 헤쳐 나가기 위해 펼쳐낸 애절한 투쟁이었다. 그리하여, ‘정쟁을 일삼는 이’란 평가를 두려워하여 뒤로 숨은 야당은 그야말로 ‘삶의 문제를 외면하고 정치투쟁에만 골몰하는 이’란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져들었다.
‘문재인의 만시지탄’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반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사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직접 투쟁에 나설 필요가 없도록 대의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것은 ‘정치인 문재인’이 ‘바보 노무현’의 계승자이자 정치적 상속자의 위치를 넘어 처음으로 독자적인 정치적 역량을 발휘한 사건이었다고도 평할 수 있다.
정치적 지향은 같았을지 모르나, 치고 나가야 할 때를 알았던 ‘승부사 노무현’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공감의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간 투쟁의 수단으로 단식을 선택한 적이 없었고 이와 거리가 먼 이미지였던 문 의원이었기에 더욱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1만 여명이 동조단식에 나서고 김영오씨가 단식을 접게 된 상황을 그만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공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 지난 8월 16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 앞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 씨로부터 편지를 전달받고 있다.(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연합뉴스)
돌이켜보면 문재인 의원은 정계입문 후 이러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대선 정국에서의 행보는 그야말로 무난했고 결과적으로 무난하게 패배했다. 평가해본다면, ‘이기고 있는 여당 후보’처럼 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SNS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 역시 성숙하지 못했다.
특히 ‘NLL 대화록’ 정국에서 ‘대화록을 확인해보자’고 제안하여 야당이 그 수렁에서 훨씬 오래 머무르게 한 것은 결정적 실책이었다. 대선후보까지 지낸 거물 정치인이 당 지도부와의 협의 없이 정견을 발표하고 그 결과 당의 방침을 뒤흔드는 모습을 보인 것은 바른 처신이 아니었다. 정치의 역할보다는 ‘죽은 친구의 명예’에 더 집착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재인 의원은 대화록 확인을 제안했을 때에도 단식에 돌입했을 때에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측근이나 참모들은 그의 돌발행동을 막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매사 진심인 이는 친구로서는 훌륭하지만 정치인으로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인의 진심은 소중하지만, 그의 행동은 종종 예측가능한 형태로 연출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문 의원은 대부분의 행동은 기획과 연출은 따르되, 이번처럼 정치의 본령이 필요한 부분에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는 식으로 다듬어져야 한다.
▲ 정기국회 첫날인 1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본회의를 마치고 나서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2월, 혹은 당 사정상 그보다 일찍 치러질지도 모르는 전당대회에 문재인 의원이 출마해 박지원·정세균 의원과 함께 당권을 겨룰 거라는 예측이 있다. 냉소적인 이들은 ‘지역구에서 재선을 노리기 힘들어서 그런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소위 친노세력은 문재인 의원이 당 수습을 위해 조기 등판했다가 상처입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들은 문재인 의원이 다음 대선후보로 상처 없이 나서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상처 없는 문재인’에 집착한다면 문재인 의원은 다음 대선후보가 되더라도 2012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정치인 초년생’의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주주가 여전히 친노세력일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그들이 염두에 둔 대선후보인 문재인 의원이 직접 나서 당의 혼란을 수습하는 리더십을 펼쳐 보여야 한다. 이를 통해 문 의원이 다듬어진다면 비로소 그를 통한 정권교체의 희망이 생기는 것이고, 그가 그 고난을 극복할 수 없다면 다른 이에게 대권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옳다.
문재인 의원의 동조단식은 ‘정치인 문재인’의 가능성과 과제를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를 아끼는 이라면 이 가능성과 과제를 바르게 보고 그에게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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