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부의 시대에 등장한 민선 진보교육감들은 대체로 교육부와 보수언론과 마찰을 빚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다. 2010년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되었으나 후보단일화 대가 현금 지원 논란으로 2012년에 교육감직을 상실한 곽노현 전 교육감에 대한 보수언론의 ‘흔들기’ 보도는 곽 전 교육감이 법정투쟁을 하며 교육감직을 수행하던 시점에 절정에 달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현재 자립형사립고 일반고 전환을 둘러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교육부의 대립, 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9시 등교 지침에 대한 논란은 그런 면에서 그 전임자들인 곽노현과 김상곤의 고난에 포개지는 측면이 있다. 일선 기자들은 “행정부가 시행령을 내리면 지방자치단체를 얼마든지 견제할 수 있는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구조적인 문제가 교육청 행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 시점의 교육부 역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기준 점수를 넘지 못한 8곳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말하자, 자사고를 비롯해 특성화중, 특목고를 지정하거나 지정 취소할 경우 교육부 장관의 ‘사전협의’가 아닌 ‘사전동의’를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 2일자 조선일보 16면 기사
그러나 갈등의 양상이 다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곽노현과 김상곤이 겪은 갈등은 상당 부분 정치적인 문제로 여겨졌다. 당시 진보교육감의 정책 중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체벌금지 등은 유권자의 정치성향에 따라 분절되는 문제였다. 보수언론의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그들 신문이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보수적 중년층을 주요 독자로 한다는 것을 즘명한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김상곤의 혁신학교가 성공하고 진보교육감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이제 우리 사회에서 교육정책에 대한 갈등양상은 달라진 측면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 문제는 공적 담론이기 이전에 자원분배 원칙과 기준을 둘러싼 사적 쟁투의 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학교 지정이나 자사고 폐지와 같은 문제는 정치상황과 상관없이 자녀를 둔 학부모의 이해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분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보수언론의 비판에 맞서 진보언론이 조희연 교육감을 열심히 옹호하는 상황을 낳았다.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언론보도의 양상을 보면 보수언론이 자질구레한 문제를 열심히 키우면 진보언론은 대체로 침묵하다가 사태가 급격하게 커지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조희연 교육감에 대해서는 교육정책이 쟁점이 되었기에 상황이 다르다. 보수언론이 자사고와 황우여 교육부장관의 입장을 옹호할 때, 진보언론 역시 조희연의 입장을 옹호하는 상황이 됐다. 정책적 쟁점이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었기에 ‘맞불’이 가능해진 것이다.
▲ 2일자 중앙일보 10면 기사
2일자 <한겨레>는 <교육부, ‘불량 자사고’까지 감싸겠다는 말인가>란 제목의 사설을 쓰면서 조희연 교육감을 옹호하고 나섰다. <한겨레> 사설은 “교육부가 이번에 사전 협의를 사전 동의로 바꾸겠다는 건 결과적으로 그동안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인정한 셈이다. 사전 협의가 사전 동의의 뜻이라면 번거롭게 시행령을 개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교육부의 조치를 비판했다.
이어서 <한겨레> 사설은 “또 교육부의 이런 방침은 어떻게 해서든 진보교육감의 자사고 폐지를 무력화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미 교육감에게 있는 권한을 빼앗는 것인 만큼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지 따져볼 만한 사안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 사설은 “우리 국민은 이미 선거를 통해 자사고에 대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최근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찬성하는 쪽은 60.7%였고 반대는 22.9%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더이상 민심에 역행하지 말기 바란다”라면서 조희연 교육감의 조치가 여론에 편승한 조치란 것임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실제 교육현장에서도 자사고 폐지에 대한 여론이 좋을 거라는 해석이 많다. 교육계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사실 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하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둔 학부모는 환영할 것이다. 자사고 입시를 준비할지 말지 갈등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당장에 보이는 것은 자사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의 완강한 반발이지만, 이해관계 때문에 그 정책에 찬성하는 이의 숫자가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 2일자 한겨레 3면 기사
그 관계자는 이어서 “조희연의 정책이 소송을 이겨내고 성과를 낼지는 모르겠지만 이 갈등만으로도 효과는 있을 것이다. 자사고에 자녀를 보내려던 학부모들이 도중에 일반고 전환될 가능성을 보고 마음을 접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물론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9시 등교가 여론에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이와 매우 다르다. 교육현장을 아는 관계자들은 학부모는 자녀가 늦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을 매우 불안해하며,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말만으로도 조기 등교의 논리에 설득된다고 전한다. 청소년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신체 리듬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충분한 잠을 자는 것이 학습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 과학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이나 이는 아직까지 학부모들에게 상식으로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역시도 어쨌든 구체적인 정책 이슈에 관한 찬반에서 갈린 여론이다. 이는 비록 신문 지면에선 보수와 진보라는 정파에 의해 입장이 갈렸지만, ‘진보교육감 시즌 2’의 시대엔 정치성향이 아닌 삶의 문제에 접속하는 구체적 정책에 대한 호불호가 교육감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이처럼 ‘조희연 시대’와 ‘곽노현 시대’의 거리는, 일견 과거와 흡사하게 보이는 ‘진보교육감의 불화’가 한국 사회에 던질 파장을 예상하게 한다. 이는 진보교육감 뿐 아니라 개혁을 내세우는 야권 정당들 역시 ‘친일’ vs ‘친북’으로 특징지울 수 있는 한국적 정파 구도에서 벗어나 정책적 쟁점으로 유권자를 분절할 때 진보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겨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공약만큼 급진적이지 못했다는 논란이 있지만, 조희연의 분투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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