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장으로 지목된 ‘뉴라이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한 임명 반대 여론이 뜨겁다. 논란은 ‘친일사관’으로 낙마한 문창극 전 국무총리 때와 유사하다. 임명권은 박근혜 대통령 손에 달렸다.

뉴라이트 출신인 이인호 교수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친일독재 미화 행보는 낙마한 문창극 전 후보의 수준을 뛰어 넘는다. 이 교수는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맡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에 앞장서고 있다. 역사 다큐 <백년전쟁>을 둘러싼 논란 또한 이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에 “역사 왜곡이다. 국가 안보차원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이 교수는 지난해 ‘우편향’, ‘친일미화’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서도 “교육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샀던 건국절 제정에 앞장섰던 이 또한 이인호 교수이다.

반면 이인호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는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체제를 반대한 사람”이라고 폄훼하는 행보를 보였다. 문창극 전 후보가 교회강연에서 “일본 식민지배는 하느님의 뜻”이라거나 “우리 민족의 DNA는 게으르다”, “4.3 폭동 사태는 공산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한 것보다 그 발언 수위나 영향력은 월등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당시와 지금 언론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문창극 보다 더한 이인호…‘진보성향 매체’만 비판, 왜?

<경향신문>은 2일 <이인호 KBS이사장, ‘제2의 문창극’ 아닌가>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KBS이사장으로 거론되는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문창극 전 후보와 대동소이한 역사관과 현실 인식을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면서 “문창극 씨가 그랬듯 이 씨도 스스로 물러나야 마땅하다. 이 씨가 사퇴를 거부한다면 방통위는 이사 추천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9월 2일자 경향신문 사설 캡처
<경향신문>은 “문창극 파동 당시 ‘대한민국 총리가 아니라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에서 일해야 할 인물’이라는 우스개도 나왔다. 이번에 ‘이씨는 KBS가 아니라 일본 NHK로 가야할 사람’이라는 비아냥까지 쏟아진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라고 꼬집으며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파동이 남긴 것 가운데 하나는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따위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가진 인물은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또한 “편향되고 비뚤어진 역사관을 가진 이 씨가 공영방송 최고의결기구 수장이 된다는 것은 청와대로 상징되는 정치권력과의 유착으로 사장이 불명예퇴진한 뒤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KBS 구성원들에게 ‘이제 조용히 하라’는 일종의 협박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인호 교수에 대해서는 이미 <한겨레>와 <한국일보>가 ‘뉴라이트 사관’을 가졌다는 점에서 어제(1일) 부적절한 인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1일 <공영방송 훼손하는 KBS 이사장 인사>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 교수는) KBS가 단독보도해 논란을 일으킨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민족 비하 및 외세 추종의 주장이 담긴 교회 강연에 대해 ‘실제로 보고 감동을 받았다. 이런 나라에 살기 싫다’고 말했다”며 “한국방송 이사장이 될 사람이 한국방송 보도에 가장 진저리를 친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겨레>는 “편파를 업으로 하는 종편이라면 모를까 공영방송에 이런 사람을 이사장으로 내정한 것은 한국방송 뿐 아니라 한국 언론의 불행”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또한 “7월 조대현 KBS 사장 취임으로 봉합 국면에 들어선 KBS 내부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조중동, 이인호 교수 친일독재 미화 논란 축소…문창극 경험 탓?

‘낙마’한 문창극 전 후보 보다도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이인호 교수에 대한 언론매체의 태도는 문 전 후보 때와는 사뭇 다르다. '조중동' 지면에서는 친일독재 옹호 등 이 교수를 둘러싼 논란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일보>는 2일 10면 하단에서 “방통위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KBS이사장 선임이 유력한 신임 이사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추천했다고 밝혔다”고 단신처리했다. 해당 기사를 통해서는 대략의 의결과정과 그의 임기가 2015년 8월까지라는 정보밖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 중앙일보 17면 캡처
▲ 동아일보 31면 기사 캡처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17면(종합)에 ‘방통위, KBS 이사장 후보에 이인호 추천’ 단신 박스기사로 처리했다. 해당 기사는 ‘이병헌 협박 50억 요구한 여성 2명 조사’, ‘동기간 불륜 사법연수원생, 간통 혐의 기소’, ‘고종 궁술터 활쏘기 체험장’ 등을 제목으로 한 기사의 박스 크기와 같았다. <동아일보> 또한 31면(인물)에서 ‘방통위, KBS 이사에 이인호씨 추천 내년 8월까지 이사장 맡을 듯’이라는 제목의 박스기사로 처리됐다.

문창극 전 후보에 대한 검증보도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KBS의 단독보도는 매체의 영향력과 파장으로 조중동 역시 문 후보의 친일사관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이인호 교수의 KBS이사장 선임 문제에 지상파3사는 거의 침묵하다시피 하고 있다. 오로지 진보성향의 매체들만 소수의 목소리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 조중동의 보도행태를 보면 반대로 ‘친일 논란을 키우지 말자’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 될 정도다. 이 교수의 역사왜곡 논란에 눈 감은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 역시 ‘검증보도했다가 귀찮은 일 만들지 말자’라는, 언론의 본령과는 한참 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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