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격투 스포츠 단체인 로드FC가 공식경기에서 내려진 판정을 번복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연출했다.

지난달 30일 서울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로드FC 018’ 대회에서 나온 판정결과를 심판진 스스로 경기가 끝난 지 만 하루도 더 지난 시점에서 비디오판독을 통한 재심사를 통해 번복한 것.

지난달 31일 ‘로드FC 018’ 박상준 임시 심판 위원장은 로드FC 공식 SNS를 통해 “로드FC 018의 심판진은 판정 결과를 번복한다”며 “로드FC 018 대회 제2경기 장덕영 선수와 이레이 노부히토의 판정 결과는 '이레이 노부히토' 선수의 승리다. 이번 판정오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이레이 노부히토 선수와 장덕영 선수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문제의 경기가 끝난 이후 심판진 내부에서도 판정 결과의 심각성이 제기돼 당시 심판진 전원이 모여 비디오 판독을 실시했고, 그 결과 부심 판정의 문제점을 발견, 긴 회의와 고심 끝에 장덕영이 아닌 이레이 노부히토의 승리로 결론을 냈다는 것.

박 위원장은 “심판진의 미숙한 운영으로 혼선을 빚은 점. 종합격투기 팬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 장덕영 Ⓒ로드FC
이번 판정 번복 사태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이 된 일이다.

장덕영과 이레이 노부히로의 경기가 끝난 직후 후속 경기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로드FC 정문홍 대표가 SNS에 강한 유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장덕영 선수가 열심히 싸운 건 인정하지만 진짜 말도 안 되는 판정이다. 이건 최악”이라며 “이런 판정은 열심히 싸워준 상대선수도 허무하겠지만 이건 장덕영 선수와 로드FC, 나아가 한국 격투기 어느 쪽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강한 어조로 판정 결과를 비판했다.

그리고 정 대표의 유감 표명 이후 하루 만에 판정은 번복됐다.

장덕영과 이레이 노부히로의 경기 내용을 되돌려 보면 장덕영의 근소한 열세가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심판에서 다시 선수로 복귀한 장덕영은 상대 선수의 날카로운 펀치를 허용하면서도 강한 맷집을 앞세워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고,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은 접전을 벌였으나 수년간 선수로 뛰지 않았던 데서 오는 경험 부족 내지 경기 운영의 미숙은 어쩔 수 없이 노출됐다.

그 결과 경기가 끝났을 때 경기를 중계한 중계진도, 그리고 인터넷 채팅창에 올라오는 팬들의 반응도 일본 선수의 우세를 점치는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신판의 손이 올라간 쪽은 장덕영 쪽이었다.

판정결과가 경기를 지켜본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나왔고, 심지어는 선수들도 그런 결과에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연히 판정결과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도 격렬했다. 정문홍 대표가 대회가 진행되는 도중 격앙된 반응을 쏟아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이와 같은 비난 여론으로 공식 대회 공식 경기에서 내려진 판정이 번복된 것은 로드FC가 그동안 쌓아온 여러 업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판정을 내린 것보다 비판 여론에 쫓겨 이미 내려진 판정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것은 분명 프로답지 못한 결정이다.

로드FC는 앞으로 대회가 종료된 후 48시간 이내에 선수 측에서 판정이의 신청을 할 경우, 심판진이 3일 이내에 사후 비디오 판독을 통해 판정에 대해 재심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규정상의 변화는 일단 다음 대회부터 적용하면 된다. 이런 규정이 없었던 상황에서 열린 장덕영과 이레이 노부히토의 경기결과는 논란의 판정 그대로 뒀어야 한다.

▲ 경기가 끝나자 이레이 노부히토 선수의 손을 들어주는 장덕영 선수 Ⓒ로드FC
만약 장덕영의 경기에 대한 판정이 잘못됐다면 같은 선수들끼리 재경기를 성사시키면 될 문제다. 장덕영은 괴거 자신이 결코 실력에서 뒤지지 않았음을 경기에서 증명하면 되고, 이레이 노부히토 역시 장덕영과의 재대결을 통해 자신이 장덕영보다 더 강한 선수라는 사실을 경기를 통해 증명하고 앞서 당한 억울한 패배를 설욕하면 되는 것이다.

두 선수의 재경기가 성사될 경우 경기 자체가 좋은 대회 마케팅 소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번 판정 번복 이후에도 재대결을 추진할 수 있겠지만 이미 판정 번복으로 논란의 상당 부분을 해소시킨 상황에서 두 선수가 설령 재경기를 벌인다고 해도 그 경기는 김빠진 맥주 같은 맛을 줄 수밖에 없다.

프로 격투스포츠에서 논란의 판정은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 판정에 대해 비판을 받는 것은 프로 격투 단체로서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비판을 수용해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사후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로드FC가 팬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프로 스포츠 단체라면 공정한 판정 못지않게 지니고 있어야 할 부분이 바로 마케팅적인 마인드다.

WWE 프로레슬링이 왜 인기가 있는지 보면 안다. 각본에 의해 경기가 이뤄지지만 선수들의 움직임은 리얼 매치를 의심할 정도로 화려하고 실감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WWE에 출연하는 선수, 매니져, 중계진 등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선수간의 대립과 갈등이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레슬리매니아 같은 대형이벤트를 통해 최후의 승자가 가려지는 스토리는 매번 똑같아 보이지만 결국 그런 과정이 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로드FC는 앞으로 스스로의 판정에 대해 뻔뻔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감 있는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설령 논란의 소지가 있는 판정이 내려졌더라도 또 다른 흥행을 위해 판정의 번복은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기본 전제는 최대한 공정하게 판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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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훈의 스포토픽 http://sportopi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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