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 혜리 애교, 호랑이 분대장도 녹았다

부드러움은 능히 강함을 이긴다, 이솝 우화에서 얻은 짧은 교훈 한 토막. 태양과 바람의 내기에서 나그네의 두꺼운 옷을 벗겨낸 것은 모질게 쌩쌩 몰아치는 바람이 아니라 태양의 뜨거운 열기였다. 저 사람은 표정이 없을 거야. 싶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터미네이터 곽지수 분대장을 봄바람 맞은 여고생마냥 환하게 웃게 만든 혜리를 보며 문득 떠오른 이야기다.

요즘 JYP, SM, YG보다 흡족한 사람은 아마도 걸스데이의 제작자가 아닐까 싶다. 엘레강스하게 유라유라한 멤버 유라의 ‘우리 결혼했어요’ 속 선전에 더불어, 깜찍이 혜리의 여군 체험은 네티즌으로부터 특급 칭찬을 받으며 연일 화제를 이어가고 있으니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 나태주. 도를 넘었던 섹시 콘셉트에 멤버 개인의 매력은 찾아볼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저 한 뭉텅이로만 인식했었던 걸스데이들. 리얼리티 쇼에서 자세히 비추어준 개개인의 매력은 그동안 몰랐었기 때문에 오히려 몸서리쳐지게 사랑스러웠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한준. 특히 무대 분칠을 대신한 위장용 깜장칠을 하고 대중 앞에 선 걸스데이 혜리의 매력은 퍼내고 퍼내도 끝이 없는 화수분과도 같았다.

군모를 쓰고 위협적인 총을 들었대도 토끼 같은 이목구비와 가냘픈 체구가 그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나 코스프레 하는 것처럼 귀엽게만 보이던 만년 막내 혜리. 혜리로 활약하는 걸스데이에서도 이혜리로 활동하는 부대에서도 막내 역을 담당하는 혜리는 살벌한 군 생활의 비타민이자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발군의 체력으로 에이스라 불리며 주목을 받았던 혜리지만, 잦은 실수는 그녀의 신변을 위협해 곧잘 난관을 만들곤 했다. 크게 넘어져 호랑이 소대장의 포커페이스를 무너뜨리게 하고 화생방 훈련에서는 정화통의 결합이 잘못되어 있어 시작부터 가스를 들이마시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야말로 튜토리얼에 가까웠던 여군 체험 첫 무대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막내 혜리의 처절한 육군 훈련소 생존기는 안쓰러움과 귀여움을 동반하며 시청자의 측은지심을 자아냈다.

진짜 사나이에서 발굴한 혜리의 진정한 매력이자 그녀의 필살기는 그 어떤 사람도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사랑스러움이다. 혜리의 사랑스러움에 호랑이 소대장과 기계 인간이라 불리었던 터미네이터 소대장은 하나씩 포커페이스를 붕괴하며 무너졌다. 무엇보다 리얼을 요구하는 시청자에게서 어린애 장난으로 비춰질 수 있었을 여군 체험을 그저 이해심 만연한 인자한 미소로 시청하게끔 이끌어준 것 또한 혜리의 무장해제 신공이 컸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먹는 제육볶음의 맛이야 꿀맛 같았을 테지만 그럼에도 어찌나 달게 밥을 먹는지. 입에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은 주먹만 한 쌈을 싸서 거의 우는 얼굴로 우걱우걱 제육쌈밥을 먹는 혜리의 모습에 내 새끼 밥 먹이는 것 같은 충만함이 밀려온 것은 필자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제가 먹어본 제육 중에 최고입니다.”

그 와중에도 다나까 말투를 고수하며 맹승지를 꼬여내 두 번째 식판을 받아오는 명랑소녀 혜리. “여러분이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도 배가 부릅니다.” 소대장의 한마디가 그토록 고마웠던지 여중생처럼 꺄르륵 눈이 휘어지게 웃고 나선 다시 크게 한 쌈을 싸서 먹는 이 소녀의 사랑스러움이라니.

“식사 부족한 인원은 배식대에 더 남아있으니까 여러분들. 자율 배식해서 먹습니다.”라는 소대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쌈을 싸던 모습 그대로 화색이 되선 “알겠습니다!”를 우렁차게 외치는 혜리를 보며 배가 아프게 웃어댔다.

혜리 무장해제 신공의 정점을 찍은 것은 훈련소 퇴소를 앞둔 작별인사의 시간이었다. 냉정하고 엄격했지만 그 침착한 와중에도 숨길 수 없었던 소대장의 크나큰 사랑과 배려. 훈련병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활약을 기억해서 상처까지 어루만져주는 어머니 같은 사랑에 울음을 터뜨린 혜리는 터미네이터 분대장이 등장하고 웃음이 터진 분위기에서도 홀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고 있었다.

“7번 후보생.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수고하셨…” “말 바로 합니다!” “수고하셨…” “울음 그칩니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울음에 뒤섞여 웅얼거리는 혜리를 끝까지 냉정하게 대하자 처음으로 터져버린 혜리의 앙탈. 혜리는 분명 훈련을 받는 내내 꾀쟁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헤어지는 순간만큼은 정든 사람들과 사무적인 태도로 작별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울음 그칩니다!”는 한마디가 야속했던지 “이이잉.”하고 앙탈을 부리며 도리도리 고개를 흔드는 찐빵 같은 혜리가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사람이 아닐 거야…싶게 냉정하기 그지없었던 터미네이터 분대장의 심장 또한 녹아버렸다. 혜리의 폭풍 애교에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차가운 남자 분대장의 싱그러운 미소라니.

방송이 끝나고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이지만, 사실 이것 이상으로 내가 큰 감명을 받은 막내 혜리와 선임의 교감은 따로 있었다. 선착순 달리기에서 마음이 급했던 에너자이저 혜리가 크게 넘어진 순간, 충격을 받은 소대장의 얼굴. 상황이 마무리되었음에도 아직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던 것인지 군모의 턱 끈을 제대로 매지 못해 시간을 끌고 있었던 혜리.

“언제까지 시간 끌 겁니까!” 벼락같은 소대장의 호령이 떨어지고 혜리는 물론 분대장 또한 긴장한 일촉즉발의 순간에 무슨 큰 사단이라도 낼 것처럼 저벅저벅 걸어와 혜리에게 내밀어진 손은 그녀를 야단하는 것이 아니라 턱 끈을 메어주는 자상함과 배려였다. “소대장은 원래 절대로 해주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도 한 마디 덧붙였지만 다정한 손길만큼은 매정하지 않아 혜리를 놀라게 했다.

놀란 토끼 같은 눈을 하고 소대장을 올려다보는 혜리의 천진한 얼굴이 마치 영화 같아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이다. 훈련의 고통은 견딜 수 있어도 교감 없는 고독만큼은 버티기 어려운 군대라는 공간. 무엇보다 인간군상의 다양한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이곳에서 누군가는 호평 받았고 누군가는 비난 받았지만, 그럼에도 누구 하나 겹치지 않은 캐릭터를 제대로 소개해낸 진짜 사나이 – 여군 체험 특집 1탄은 성공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인간 비타민 혜리의 무장해제 비기, 체력을 뛰어넘은 정신력으로 영화 이상의 감동을 안겨주는 리얼 히어로 김소연과, 비난으로 초석을 다진 그녀였기에 오히려 차후의 성장으로 안겨줄 드라마가 더 기대되는 맹승지의 활약에 가슴 설렌다.

드라마와 예능 연예계 핫이슈 모든 문화에 대한 어설픈 리뷰http://doctorcall.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