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총사>는 아직 절대왕권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않은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뒤마의 소설이다. 이 소설 속에서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루이 13세는, 실권은 쥐고 있는 리슐리외 추기경과 대립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소설 속 삼총사와 달타냥은, 왕에 충성을 바치는 총사대원으로 리슐리외와 그의 근위대원들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왕을 흔들기 위해 리슐리외 추기경은 프랑스와 앙숙이던 영국과의 갈등을 부추겼으며, 결국 영국군이 프랑스로 침입해 오는 사태까지 이르게 된다.

바로 이 지점, 아직 왕권이 확립되지 않은 프랑스와, 그런 프랑스를 위협하는 영국이라는 외적의 위기가 드라마 <삼총사>에서 명청 교체기의 풍전등화와 같은 17세기의 조선으로 절묘하게 되살아난다.

8월 31일 방영된 <삼총사>에서 소현 세자(이진욱 분)는 말한다. 자신은 세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왕이 되는 바람에 세자가 되어 버린 사람이라고. 그렇다. 소현 세자의 아버지 인조(김명수 분)는, 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으로 옹립되었다. 드라마에서 김자점은 이미 그런 인조를 왕이 될 깜냥이 아니라고 규정 내린다. 왕이 될 깜냥이기 이전에, 인조는 그 자신이 왕이었던 광해군을 밀어내고 신하들에 의해 옹립된 왕이기에, 평생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산 인물이다. (후에 그의 이런 불안감은 아들 소현 세자에 대한 질시와 의심으로 이어진다) 그런 불안감은 통치 능력으로 증명되지 못한 채 그의 치세에 두 번의 호란을 겪게 된다. 그렇게 아직 절대왕권을 지니지 못한 루이 13세의 허약함은, 신하들에 옹립되어 그 위치가 불안한 인조로 대응된다.

드라마 속 <삼총사>는 정묘호란 이후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1627년 아직 청이라는 국호를 내세우지 않은 후금이 조선을 침공한다. 아직 임진왜란의 상처를 채 극복하지 못한 조선은 후금의 침략에 당황했고, 역시나 임진왜란 때처럼 각지의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 그나마 황해도까지 내려온 후금에 대항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당시 후금은 이제 막 중국 대륙에서 그 세력을 키워가던 중으로, 중원의 명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친명 사대정책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조선을 본보기삼아 치려했던 것이었기에, 조선과 후금 사이에 쉽게 화의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왜에 의한 상흔이 채 마르기도 전에, 오랑캐라 낮잡아 보던 후금에 의해 국토를 다시 한번 유린당한 상처는 조선에 깊게 드리워졌다. 드라마 <삼총사>에서 매일 밤, 후금의 장수 용골대에 의해 시달리는 인조의 심약한 정서는 그런 조선의 트라우마를 반영한다. 하지만 정묘호란 이후 신하들의 눈치만 살피는 인조와 달리, 후금은 명을 밀어내고 중국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고 조선에게 형제의 나라가 아닌, 중국 대륙의 패자로서 군신 관계를 요구한다. 김자점 등 시류에 민감한 무리들은, 벌써 그런 청의 강력한 세력을 감지하고 청과 은밀하게 손을 잡을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마치 소설 속 리슐리외 추기경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국과의 전쟁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세자를 다치게 한 적을 뒤쫓다 사신으로 온 용골대 무리에게 쫓기게 된 박달향에게 최명길은 말한다. 하필 입신양명의 꿈을 안고 무과에 급제한 박달향이 맞닥뜨린 조선이, 조만간 전쟁을 다시 한 번 치르게 될지도 모를 풍전등화의 상황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런 최명길의 안타까운 정의에 대해 이제 막 벼슬길에 들어선 박달향이 어떤 입장인가, 혹은 어떤 생각인가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처음부터 세자 무리에 휩쓸려 불의를 제압했던 그 활약처럼, 소설 속 달타냥처럼 그저 의협심이 강한 인물 정도로 그려질 뿐이다. 아니, 아직 그를 휘말아 감싼 정치적 격변에 어리둥절해 있을 뿐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드라마 <삼총사>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주된 캐릭터는 소현 세자이다. 그의 말처럼 애초에 세자로 태어나지 않아 궁 밖이 더 편한 그는, 그의 익위사들과 함께 밤이슬을 맞으며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소현 세자와 그의 익위사 두 인물 역시, 이제는 강대해진 청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김자점 등의 권신들의 전횡에 대해 왕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로운 인물로 그려질 뿐이다.

이제 3회를 맞이한 드라마 <삼총사>는 소설 속 17세기의 불안정한 왕권으로 인해 내분과 외환이 분분했던 프랑스 정가를 절묘하게, 허약한 왕권, 외침의 위협이 극대화되어가는 17세기의 혼란기 조선으로 등치시킨다. 하지만 등치의 절묘함을 넘어선 극적 긴장감은 회를 거듭할 수록 배가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주 1회 방영의 모험을 하며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극을 지향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한 회 분량의 내용이 흡족치 못하다. 만약 내일 또 방영되는 주2회라 해도 조금은 처지는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미령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와 용골대와 얽힌 사연은 궁금하지만, 이미 2회에서 그에 대한 궁금증을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뿌려놓은 상황에서 3회는, 다시 한 주를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회차였다. 12부작 씩 총 3개의 시즌제라는 기획 하에 매주 방영하겠지만, 시청자의 조바심은 과연 그걸 감내할 수 있을지 갸웃해진다.

아마도 그것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진정한 주인공인 소현세자임에도, 삼총사라는 고전의 틀을 빌려와서 박달향이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설정됨으로 인한 자중지란 같아 보인다. 더구나 많은 제작비를 고려한 듯한 박달향의 방방의 같은 건 주 2회 방영시에나 용인되는 애교가 아닐까 싶다. 주1회로 시청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소설 <삼총사>의 형식적 캐릭터 배분은 조금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미 시대적 배경의 절묘함만으로도 드라마 <삼총사>의 터전은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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