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이길영 이사장의 사퇴 직후, MB 정부 이후 뉴라이트 성향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는 역사학자 이인호 교수가 KBS이사회의 새 수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방송 공정성과 제작자율성을 훼손한 길환영 사장이 떠난 후 새 출발을 기약했던 KBS를 제자리로 돌리는 것과 다름없는 인사에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 진보 언론이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겨레>가 비판의 선봉에 섰다. <한겨레>는 1일자 2면 <“문창극 강연에 감명 받았다”는 뉴라이트 성향 이인호 교수 KBS 이사장 내정 논란> 기사에서 이인호 신임 KBS 이사장의 과거 논란을 자세히 다뤘고, ‘박근혜 정부가 KBS를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 1일자 한겨레 2면

원로 역사학자이자 서울대 명예교수인 이인호 이사장은 2006년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한 교과서 포럼과 이를 주축으로 2011년 설립된 한국현대사학회의 고문이다. <한국 근현대사>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교과서’라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 이사장은 또한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을 제정해 기념하자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의 공동준비위원장을 지냈고, 지난해 3월에는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에 대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했다. 이런 역사 왜곡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때 박근혜 대통령이 이인호 이사장의 발언을 일일이 메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인호 이사장이 일관적으로 보여 온 ‘뉴라이트’ 성향뿐만 아니라, 한국기자협회에서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 등 3개 상을 휩쓴 KBS의 문창극 보도에 대해 문제 삼은 점에 주목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6월 TV조선에 출연했을 당시 “(문씨의) 교회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 “(문씨가) ‘아베 같은 사람’이라며 낙마한다면 이 나라 떠날 때라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 강연 내용에서 노출한 역사관, 가치관 등이 총리 후보자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보도를 결정한 KBS와는 상반된 입장을 취한 것이다.

<한겨레>는 “합리적 보수라고 부르기 어려운 편향된 인식을 가진 인사를 공영방송의 주요 자리에 두는 건 정권의 방송 장악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의 발언과 “박효종 방심위원장에 이어 공영방송에 뉴라이트 인사를 배치하는 건, 정권 차원에서 방송을 검열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는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의 말을 통해 ‘박근혜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를 지적했다.

<한겨레>는 같은 날 사설로도 이인호 이사장 인사를 다시 한 번 비판했다. <한겨레>는 <공영방송 훼손하는 KBS 이사장 인사>에서 “지금 KBS에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이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과 독립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편향의 노골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이씨의 이사장 내정은 최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권과 유착한 보도와 인사 등이 문제가 되어 물러난 길환영 사장 이후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KBS 구성원과 이를 지지하는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라고 질타했다.

<한겨레>는 “편파를 업으로 하는 종편이라면 모를까 공영방송에 이런 사람을 이사장으로 내정한 것은 한국방송뿐 아니라 한국 언론의 불행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우편향 인사를 회장과 경영위원에 임명한 뒤 망가지고 있는 NHK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라며 깊은 우려를 전했다.

▲ 1일자 한겨레 사설

‘노사 대립 격화’ 강조 <경향>-방통위 야권 추천위원 반대에 초점 <한국>

<경향신문>은 KBS 노사 대립을 더 심화시킨다는 데 점을 맞춰 이인호 이사장 인사를 다뤘다. <경향신문>은 1일 12면 <이인호 KBS 새 이사후보 놓고 노사 대치 격화>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 노조) 등 내부 구성원들이 “정권의 방송 장악을 위한 음모”라고 강력 반발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경향신문>은 “이 교수는 청와대가 개입해 기획한 낙하산 이사”, “KBS 이사회에 청와대 심복을 심어 서서히 KBS 목줄을 쥐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새 노조와 “특종상을 휩쓴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KBS 보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진 분이 이사장이 되면, 공영방송의 보도와 프로그램에 편향된 이념을 강요받을 우려가 크다”는 김철민 KBS기자협회장 등의 발언을 통해 내부 구성원의 우려를 상세히 전달했다.

<한국일보>는 <한겨레>와 <경향신문>보다는 비판 강도가 낮았으나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신임 이사장 인사에 대한 ‘논란’이 안팎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어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6면 <KBS 이사장에 뉴라이트 사학자 이인호 내정 논란> 기사에서 “7월 조대현 KBS 사장 취임으로 봉합 국면에 들어선 KBS 내부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KBS 이사 추천권을 지닌 방송통신위원회의 야당 추천 위원들이 이인호 이사장 임명에 반대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는 점을 짚었다. <한국일보>는 “김재홍, 고삼석 상임위원은 이 교수의 이념적 편향과 공정성 훼손 가능성을 이유로 이 교수의 이사 추천안을 강력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방통위 야당 추천 인사들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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