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풀리는가 싶었는데 세월호특별법 정국이 다시 어려워지는 양상이다. 새누리당 주요 인사들이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측과의 협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만한 발언을 연거푸 내놓으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9일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청년취업 토론회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배후조종 세력들이 유가족들에게 잘못된 논리를 입력시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때만 되면 꺼내드는 ‘배후세력조종론’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 문제는 유가족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불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배후조종의 실체가 ‘야권’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김무성 대표가 제기하는 배후세력조종론은 이미 보수언론이 먼저 꺼내든 바 있어 보수적 유권자들의 불안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제기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29일 지면을 통해 유가족들을 사실상 측면지원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주요 인사들이 과거 민감한 현안마다 구성되는 시민단체들의 연대기구에 늘 등장했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유가족들이 좌경세력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무성 대표가 말하는 ‘잘못된 논리’란 세월호특별법으로 인해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도 말을 보탰다. 김재원 부대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의 3차 협의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31일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위에 수사권,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위헌적 수사기관을 창설해달라는 요구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그간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단과의 협의에서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방안에 전혀 수긍도 동의도 할 수 없어 진척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원 부대표는 “내일 협의에서 수사권, 기소권을 조사위에 부여하는 수준의 새 제안으로 유가족이 특별검사 선임권을 행사하게 해달라는 제안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공정, 투명, 객관적 수사기관 설립이란 특별검사 제도도입의 근거에 따라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발언해 특별검사후보추천위의 여당 측 위원 추천권의 양보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김재원 부대표의 이러한 일련의 발언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의 협의가 진행되기 하루 전에 나온 것이며 그간 언론 등에 보도된 내용마저도 전부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새누리당이 이런 태도로 일관하면 3차 협의에서도 유의미한 결론은 내려질 수 없고 세월호특별법 정국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를 증명하듯 유가족 측은 즉각 강력하게 반발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재원 부대표의 발언에 대해 “새누리당이 ‘기존 여야 합의안이 최대한 양보한 부분’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더는 면담을 지속할 생각이 없다”고 발언했다. 기자회견 직후 유가족 측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비대위원장과 비공개로 면담했다. 여당과의 협의가 장기화 될 경우 등에 대해 논의했다는 언론 보도 등이 나온다.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세월호특별법 국면이 장기화되는 것은 여야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여론에 ‘유가족들이 무리한 주장을 한다’는 논리로 쐐기를 박으려 할 수 있겠지만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이 문제가 두고두고 야권에 빌미를 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는 어쨌든 근본적 차원에서 체제의 모순이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에 야당을 비롯한 각 시민단체들이 결집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 사건이다. 이전의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등과는 다르다.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세월호특별법으로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 기소권을 주는 방안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 기소권을 갖더라도 검찰과 사법부가 모두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만큼 실제 진상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당 일부에서 “대통령을 기소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내곡동 특검 등의 전례를 봤을 때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현재 야당은 쓸 카드가 없는 입장에서 어정쩡한 장외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강경한 태도 덕분에 그간 여당과의 직접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택해왔던 유가족 측은 다시 야권과 거리를 좁히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야당은 잃었던 명분을 되찾고 장외투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비록 국회선진화법 덕분에 연말의 예산국회 정국이 절대적으로 정부 여당에 유리한 상황이지만 국회에서 야권이 강경한 태도로 정부 여당과 적대하는 것은 집권여당의 입장에서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장외투쟁이 길어지면서 새정치민주연합 내에 노선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상황에서는 집권여당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장외투쟁에 반대하고 있는 15인의 의원들에 대해 “건전한 세력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나왔는데 꼭 관철되기를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주말 동안 당 내 원로 일부가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사퇴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과 다른 여권 인사들의 표정은 야권의 분열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의회정치에는 결국 상대가 있는 것이라 야당이 분열에 휩싸이면 여당도 답답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야당 지도부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여당도 어떤 것이든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이다. 야당 지도부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여당과의 협상 결과가 보장되지 못하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곤란한 것은 결국 국가를 통치해야 하는 쪽이다.

이런 어려운 지경에서는 결국 대통령이 나서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 된다는 건 ‘마지막 희망’이다. 지난주만 해도 특검후보추천위원의 양보 등을 언급하던 새누리당 인사들이 주말을 경유하면서 강경한 톤으로 돌아선 것은 청와대의 의중을 확인한 결과가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청와대가 여당의 양보로 유가족 측과 합의를 이루는 방안을 거부했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곤란한 처지에 빠진 사람 중 하나인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현재 국면이 이를 만회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해볼 필요가 있다. 국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대통령이 정리해주는 것만큼 지금 대통령의 위상과 권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여기서 잘만 처신하면 인사 실패 등으로 계속 유실돼왔던 국정운영동력을 다시 확보하고 정국의 고삐를 쥘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정국을 조율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항상 나쁜 결과로 이어졌으나 이번 경우는 대통령이 그게 어떤 것이든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예가 그대로 반복되는 비극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추석 전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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