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0일 넘게 단식농성을 벌였던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결국 단식을 중단했다. 노모를 포함한 가족들의 걱정과 세월호특별법 관련 정국의 장기화를 염려한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정치권의 호사가들은 그게 전부가 아닐 거라는 식으로 말한다. 새누리당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면담 결과에 대한 일정한 평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새누리당 지도부, 성의 보이고 있긴 한데...

김영오씨는 27일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여당이 전향적인 협상 태도를 보일 경우 단식을 중단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러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27일 새누리당과 유가족측의 면담에서 특검후보추천위원회의 여당 몫 추천위원에 대한 일정한 양보안이 논의됐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유가족들이 주장하고 있는 세월호특별법으로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는 것이지만 기존의 협상 태도에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여당으로서는 다시 오지 않는 기회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여당은 한 때 ‘그로기’ 상태에 몰릴 정도로 혹독한 여론의 비난을 받아왔다. 비록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선거를 방어해내긴 했지만 그건 야당이 못해서지 여당이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그게 해결되지 않는 이상 두고두고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을 이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도 그것으로 야당에 어떤 이득이 돌아갈 지 알 수가 없으므로 여당으로서는 골치를 썩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아주 고맙게도 야당이 알아서 협상 테이블에서 퇴장했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협상 테이블에서 퇴장하며, 헌정사에 남을 '무능' 보인 야당

아마도 헌정사에 남을 만한 장면일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자면 소외받는 약자들을 대변하면서 야당은 정치적 명분을 얻고 여당도 통치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를 수용해 서로 대의를 이루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애초 안대로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새누리당이 수용하고, 남은 부분은 특검 임명이나 특검팀 구성의 부분에서 나중에 풀어보자는 제안을 야당이 유가족 측에 제안해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협상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래도 큰일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여당은 협상을 잘못했다가 혹여나 큰일이 나버릴까 두려워 벌벌 떨고 야당은 자신에게 모처럼 주어진 약자를 대변해 볼 기회를 보기 좋게 날려버리는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다. 양당에 주어진 거대한 권력을 생각하면 이는 그야말로 의회정치의 파탄이다.

▲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6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온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28일 단식을 중단했다. 이날 김영오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연합뉴스)

의회 정치의 파탄 상징하는 김영오 씨의 45일 단식

김영오씨의 45일 단식은 이러한 파탄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오히려 이 모든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현명했던 것은 유가족들이었다.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부터 “정권에 해를 입히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유가족들은 여야의 합의가 진행되기 전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세월호특별법안을 만들었다. 야당이 그들의 관점에서 부족한 내용의 합의를 해오자 이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협상의 주체로 나섰다. 그리고 어찌됐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망언이나 늘어놓던 새누리당과 이제 3번째 면담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앞으로 상황이 진전될 가능성은 어쨌든 이전보다는 크다.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데 김영오씨의 단식이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음은 물론이다.

물론 성급하게 의회정치 무용론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대한 협상은 협상일뿐이고 이후의 입법 과정에서 야당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 또, 야당의 역할 없이는 세월호특별법 제정 이후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이나 특검 수사 등을 제대로 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이 국면에서 적어도 우리의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조정 해결하고 상대적으로 약자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주장을 정당정치의 틀에서 소화하는 등의 행위에서 분명히 실패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김영오씨의 45일 단식은 바로 그러한 파탄을 상징하는 것이다.

모른척 여당과 대리 못하는 야당...대중의 직접 정치가 경고하는 진짜 문제

이러한 파탄의 징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정치적 냉소주의의 팽배는 여러 차례 얼굴을 바꾸어 정치권을 덮쳤다.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여당의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야권에 표를 던지지 않았던 지난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의 결과 역시 이러한 현상의 한 종류이며 그 이전의 ‘안철수 열풍’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등의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분류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하지만 이번 국면은 이러한 냉소적 파탄의 현재와 미래가 매우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당은 그저 모른 척하고 야당은 우리를 제대로 대리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직접 나섰을 때에만 문제는 해결됐다’는 교훈을 체득하게 된 대중을 상대로 한 기성정치의 미래는 암울한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감당하기 위해 정치는 다시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현재의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의 구도도 이러한 변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미봉적’인 것에 그칠 경우 위기는 심화된 형태로 반복해서 찾아올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스스로를 독립적인 정치적 존재로 각성시켜 성과를 냈다. 이후에 올 위기에서 대중들은 더욱 정교하게 조직된 형태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할 수 있다. 정치적 지향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정당들의 의회정치 바깥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설적으로 이념의 전장이 될 것이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우리의 정치가 스스로를 어떻게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오늘의 정국은 그러한 물음을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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