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역사교과서다. 10년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저들이 KBS와 YTN에 낙하산을 타고 착륙해서 <PD수첩>을 짓밟으며 얍삽한 눈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리다 다음 먹잇감을 찾은 것이다. 불온서적 리스트로 일찍이 시대착오 개그의 최고봉으로 올라선 국방부가 나섰고, 그 이름도 거추장한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 교과서포럼이 합작하며, 한나라당이 뒤를 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참, 공정택을 비롯한 전국의 교육감 나리들도 빼먹으면 서운해 할 것이다. 교육감 나리들은 일선 학교들에서 좌편향 교과서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제 세상 만난 것처럼 서로 안달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아이들의 머릿속까지 똥칠을 하려고 설치는 형국이다.

▲ 22일치 조선일보 3면.
저들의 주장은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경우 지난 6월 교육기술과학부에 공문을 보내 제주4.3사건과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대한 평가를 문제삼아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체복무제도도 뒤집고 불온서적 리스트도 작성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는지, 아무래도 전문지식과 상식이 달리는 역사교과서까지 참견을 하시다 보니, 솔직히 반박하거나 비판할 만한 내용조차도 부족한 이야기들을 야심차게 발표한 것이다. “공산당 조직이 배후에 있고 경찰 발포는 군중 투석에 따라 시작됐는데, 발포 사실만을 지적해 사건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국방부의 주장을 보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도 문제지만 국방부가 가지고 있는 시각에 덜컥 겁이 난다. 공산당이 배후이고 투석을 한 사람들은 무조건 쏴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다니.

교과서포럼의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특히 일제시대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후 인식)을 극복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후 재인식)이 출간된다고 했을 때, 내심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1980년대라는 시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식>은 사실 그 대단한 의미와 가치만큼이나 한계 또한 명확했고, 1980년대라는 시공간을 벗어난 지금에는 어쩌면 굉장히 낡은 인식의 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인식>이 보는 세계는 <인식>의 세계보다 더욱 뒤떨어져 있었다. <인식>이 가지고 있는 한계-‘민족’과 ‘민중’의 과잉 대신 택한 것이 ‘국가’였던 것이다. 근대가 낳은 거대한 괴물 ‘근대국민국가’를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 <재인식>의 시선이었다. 교과서포럼의 주장은 <재인식>의 되풀이 주장이다.(<재인식>의 편집자 이영훈 교수가 교과서포럼의 상임대표다.) 민족적인 감정만을 앞세워 일본을 무조건적으로 적대시하는 것은 분명 큰 문제이지만 그것의 극복은 식민지배의 인정이 아니라, 근대라는 틀거리에서 ‘식민지’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근대라는 역사적 시기의 생성물임을 파악하면서 ‘근대’ 자체를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

한나라당에서는 나경원 의원(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교과서포럼 관계자들을 만나서 교과서가 이념편향적 기술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구체적으로 검토해서 교육과학기술부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뒤가 구린 것은 아는지 당이 교과서 수정안을 직접 내지는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역사교과서가 과연 그렇게 좌편향일까? 대답은 아주 단호하게 “아니오”다. 물론 북한사람은 다 뿔난 돼지로만 알고 있던 시절의 교과서를 그리워 한다면 지금의 교과서는 지나치게 좌편향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경우 6차 교육과정까지는 국사(상)(하)로 구성되었던 것이 7차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근현대사가 선택과목으로 분리되어 전체적으로 분량이 풍부해졌다.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면 북한의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것이 틀림없다. 뉴라이트계열이 좋아하는 역사인식의 방식인 실증주의로 보자면 오히려 우편향에 가까울 것이다. 좌익계열의 독립운동이 그나마 소개는 되고 있지만 여전히 김일성이나 박헌영 등 민감한 부분은 비중이 아주 작거나 이야기되지 않기 때문이다.

▲ 교과서포럼 홈페이지.
사실 저들이 좌편향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자신들보다 왼편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위치가 얼마나 오른쪽인지 생각해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몰상식한 인식이다. 버클리대학의 스칼라피노 교수와 펜실베니아대학의 이정식 교수가 쓴 <한국의 공산주의>(한국에서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라는 책도 한국에서는 금지도서의 목록에 이름을 올린 반면, 미국에서는 지나치게 우편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역사는 결국 사관의 해석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역사에서 이념성을 따질 때, 철저히 자신의 이념을 잣대로 평가를 하는 것은 역사학에 대한 모독이다. 혹은 가장 악질스런 정치적인 공작이다.

교과서가 이념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된다는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다. 교과서는 근대교육의 생성물이다. 노동과 삶을 통해 후대로 이어지던 예전의 교육이 근대에 들어서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과서를 매개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한계 또한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교과서를 특정 정치 세력이 전유하려는 시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근대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국가의 입장에서는 말 잘듣고 애국심 강한 ‘국민’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지만, 사실은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들에 대해서 스스로 비판하고 판단하고 생각하고 몸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교과서를 좌편향(실상은 좌편향도 아니지만)이라고 비판하면서 우편향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그래서 반교육적이다.

역사교과서의 이야기를 하자면, 개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의 시각과 인식 또한 과거 <인식>이 가졌던 지나친 ‘민중중심’과 ‘민족중심’의 역사관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를 강조하고 자본주의를 찬미하는 <재인식>의 역사관은 아니다. ‘근대’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역사해석이 필요하다. ‘근대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고취시켜 줄 수 있는 역사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한 이분법으로 좌익과 우익을 가르고 상대편에 대한 증오만을 키워가며 자신의 이데올로기만을 주입시키려고 하는 이 몰지각한 모리배들에 누군가 굳이 비판 글을 쓰지 않아도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혹시나 저들의 반동적인 교과서 뒤집기가 성공이라도 한다면 우리 모두 키팅 선생님(죽은 시인의 사회의 선생님)의 외침과 함께 교과서를 찟어버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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